민정기, 변해버린 도시 풍경에서 잊힌 기억 되살려
서용선, 인왕산풍경 아래 주택은 삶의 공존 이야기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한 민정기(67) 화백과, 30년 가까이 단종과 세조, 안평대군으로 이어지는 역사화를 그려왔던 서용선(65) 화백. 각각 2006년과 2014년 나란히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양평의 두 화백이 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개인전을 열고 왕성한 창작열을 뿜어냈다.

 

민정기, 9년 만에 금호미술관 개인전

민정기 화백은 2007년 이중섭 미술상 수상 기념전 이후 9년 만에 연 개인전의 주제는 ‘도시’다. 지난 13일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끝난 그의 개인전에는 임진나루에서 시작해 홍지문을 지나 홍제동과 경복궁 어귀를 그린 신작 위주의 도시 풍경 27점과 55점의 판화 작이 걸렸다.

그의 화풍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한 1980년대 미술을 지나 리얼리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인문·역사학적 풍경화에 주목하면서 변화를 보였다. 30년 가까이 지냈던 서종면 서후리를 벗어나 얼마 전 고양시 삼송동으로 작업실을 옮긴 뒤부터는 임진강부터 경복궁까지 구석구석 답사해 서울의 현재와 과거를 엮어내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세검정의 요즘 풍경을 합쳐 그린 유(遊) 몽유도원도( 캔버스에 유채, 209.5×444㎝, 2016).

민 화백은 “변해 버린 도시 풍경을 보여주면서 잊힌 기억을 되살려보고 싶었다”며 “인간이 터를 잡아 사는 기운을 느끼려고 애썼고, 실제 그 풍경을 사실적으로 옮기기보다 땅과 인간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임진강에 닿을 수 없도록 굳게 닫힌 철문과 군사구조물을 그린 ‘임진리 나루터’(2016)와 현재의 모습에 전통적 모습을 겹쳐 담아낸 ‘임진리 도솔원’(2016) 등 임진나루 주변의 어제와 오늘을 고스란히 담았다.

홍제동에서 창의문으로 올라오는 길에서 보이는 정경을 담은 ‘북악 옛길’(2016),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길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북악산을 바라보면서 그린 ‘홍제동 옛길’(2016), 그리고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현대적 시선으로 유랑하며 그려낸 ‘유(遊) 몽유도원도’(2016) 등은 개발된 도시와 전통적 모습이 혼재하는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다.

민 화백이 포착한 1980년대 사회 전반에 깔린 어두운 정서는 2016년 여전히 가로막혀있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상기시킨다.

 

서용선, 겸재처럼… 인왕산에 빠지다

서용선 화백이 올해 여름 시작한 개인전을 가을을 지나 소설(小雪)을 이틀 앞둔 이달 20일까지 잇따라 열며 왕성한 창작열을 뿜어내고 있다.

서 화백은 지난달 2일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전’에 이어 10월6일∼11월5일 서울 북촌 누크갤러리에서 ‘서용선 인왕산 초대전’을 열었다. 지난달 12일 개막한 코엑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전시장에서도 그의 인물화와 목조각이 전시됐다.

인왕산,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91×116.7㎝, 2016. 인왕산 자락 아래 주택의 풍경을 그려 삶의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도시 속 익명의 인물을 주로 그렸던 그가 인왕산 자락에 푹 빠졌다. 강렬한 원색과 거침없는 붓 터치는 서용선만의 트레이드마크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인왕산은 선이 굵다. 원시적이면서 투박한 선은 강렬한 에너지로 화폭을 휘어 감는다. 인왕산을 그린 9점의 작품을 포함해 자화상과 서종면 문호리 작업실 숲속 풍경 등 30여 점이 전시장에 걸렸다.

서용선은 “인왕산을 그릴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겸재 정선이 워낙 뛰어난 그림을 그리지 않았느냐”면서 “그래도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무엇보다 내 체험과 감성은 또 다르니까”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왕산이 품고 있는 역사와 삶을 그리고 싶었다.” 시각예술의 역사적 사실 전달에 고민하고, 회화의 역사성과 인문학적 태도를 추구하는 그가 인왕산을 그린 이유다. 그는 “인왕산 골짜기 안이 안평대군의 집터”라며 “겸재가 풍경만을 그렸다면 나는 풍경 아래 주택도 그려 삶의 공존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투박한 조각도 눈길을 끈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에서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색과 공-서용선전’에는 그가 지난해 일본 와카야마현 고야산사에 초대받아 석 달 가까이 체류하며 만든 대형 목조상이 전시된다. 높이 2∼3m 크기의 목조상은 두 손을 모으거나 앞으로 내밀어 마치 무엇인가를 묻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금강경의 첫 장면에서 깨우침을 구하는 장면을 담았다”는 게 서 화백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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