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될 무렵 한차례 비가 시원하게 쏟아진 후 게으른 주인의 텃밭에 호박이 얼마나 열렸나 보러갔더니 기특하게도 알아서 조랑조랑 둥근 호박과 애호박 몇 개가 열려 있었다. 바로 어제 남편이 주변 풀을 깎아서 호박잎들 사이로 숨은 호박들이 잘 보인다. 마침 저녁에 친정식구들이 모인다 하니 호박이나 따다가 시골 사는 생색 좀 내어보려고 발을 드는 찰라, ‘어라! 낯선 막대기, 저건 뭐지?’ 막대기가 둥글게 휘어 있다. 게다가 빤질빤질해 보이는 저 느낌… 익숙하다. 으~ 뱀이다!

좀 거리가 있어 일단 발을 굴러 내 존재를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굵기가 좀 되니 빠르게 움직이면 이쪽으로 쏜살같이 올 것 같은 상상력이 발동돼서 발을 구르다 멈칫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막대기도 없고 작은 돌들만 보인다. 만만한 돌 하나를 집어 뱀을 향해 던졌다. 그럼 그렇지 던지기엔 소질 없는 내가 명중을 어찌 시키랴. 두 번째는 그래도 비교적 가까이 돌이 떨어졌는데 뱀이 꿈쩍도 안한다. ‘죽었나?’ 움직이지 않으니 일단 내 주변에 있는 호박을 따려는데 스르르 움직임이 느껴졌다. 얼른 허리 들어 뱀을 확인하려는데 이놈이 안 움직인 척 가만히 있다. 순간 슬리퍼 신은 내 발가락이 보이면서 달랑 호박 두 개만 따가지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날 가보니 역시 뱀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 멀리 갔겠지. 그래도 호박 심은 위치와 마당은 5미터이상 떨어져 있고 개들이 짖고 뛰고 하니 마당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2주 정도 지났나? 두 번째 장맛비가 제대로 왔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볕이 달아오르기 시작할 때 작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와 마당 개들의 인사를 받으며 마당일을 하는데 두 마리가 데크에서 내려오지 않고 한쪽 구석을 응시하고 있다. ‘너네 또 쥐 잡아 놨니?’ 혹시나 끔찍할까 슬금슬금 가보니 이런! 밭에서 본 얘랑 색깔, 무늬, 크기까지 똑같은 놈이 얼굴과 꼬리는 데크 아래 넣은 채 가장 굵어 보이는 둥근 부분만 밖으로 내밀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일단 사진을 찍어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어쩌지?’ 얼굴은 안보이지만 뱀 무늬 선명한 사진을 보고 회사에서 남편은 기겁하며 ‘뭐야~ 우리 집 아래 뱀이 산다는 거 아냐?’ 작은 아이는 수업중일 테고 큰 아이는 날래게 검색하더니 ‘누룩뱀’이란다. ‘독이 없고 비교적 순하다’고 알려준다. 물려도 뭐 죽지는 않는다는 말에 안심을 했지만 그래도 물리면 기분 좋지는 않을 것 같으니 어찌하나 궁리하는데 데크 밑으로 스르르 들어간다.

개들은 내 주변에 다 같이 모여 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으려는 걸 내가 소리소리 지르며 난리 쳤다. 응급처치로 연기를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 모기향을 주변에 잔뜩 피워 놓은 지 한 시간쯤 후 외출준비를 하고 나와 보니 모기향 바로 옆에서 약간의 자세만 바꾼 채 다시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움직임도 느리고 독도 없다니 그새 용기가 생겼는지 이번엔 우산으로 구부러진 뱀 몸통을 ‘톡톡’ 쳤다. 단단한 느낌이 느껴진다. 뱀은 내 뜻을 알아챘는지 아주 천천히 데크 밑으로 들어간다. ‘음? 좀 귀여운데?’ 뭐 내가 초대한 건 아니지만 자기가 들어와서 살겠다는데 무슨 수로 막겠나. 데크 아래 떨어진 개 사료 먹는 쥐들은 누룩 뱀이 다 소탕해 주겠지. 그런데 혹시 솔로 누룩뱀이 아니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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