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17

 

 

홋카이도 동북부에 작지 않은 도시 아사히카와(旭川)시가 있다. 서쪽으로 치우쳐 있는 삿로를 대신하여 홋카이도 북동부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아사히카와는 교통량과 상업적 기능이 상당한 도시다. 그 아사히카와의 기차역 위쪽 중심상업가 거리에 유명한 헤이와토리 쇼핑공원(平和通り買物公園)이 있다. 도로폭 20m, 총길이 약 1㎞의 일본 최초 보행자전용도로다. 일본에서 보통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보행자천국’이라고 부르는데 그러한 명칭을 낳게 한 시초다. 그런데 최초의 보행자전용도로라는 의의를 넘어 그것을 이루게 한 한 명의 시장의 뚝심으로도 유명하다. 

본래 헤이와토리(平和通り)의 이름은 시단토리(師団通り)였다. 1895년경 일본이 아시아대륙으로 위세를 확장하면서 청일전쟁을 앞두고 아사히카와역까지 철도로 수송되어온 사단급 군대가 항구로 이동하는 통로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시단토리가 일본이 패망한 이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헤이와토리로 이름이 변경됐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춥다. 특히 아사히카와시는 영하 30도를 밑도는 날도 상당하다. 아사히카와의 직장인들은 퇴근길에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서 헤이와토리의 이자카야(居酒屋)에서 하루를 녹이기도 한다. 1963년 아사히카와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이가라시 고조(五十嵐廣三)도 그 한 명이었다.

1960년대 들어 아사히카와시는 점점 그 규모나 차량 통행량이 증대했고, 시의 중심지로서 상점과 술집 밀집지역이었던 헤이와토리에서는 교통사고가 증대했다. 이가라시 고조는 시장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헤이와토리가 사람을 위한 거리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 아사히카와(旭川) 헤이와토리쇼핑공원 보행자전용도로

시장에 당선된 이가라시는 헤이와토리 주변의 상가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초반에는 모두 차량의 교통량이 감소되면 매출이 하락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상가조합 이사장인 야마모토가 이가라시 시장의 취지를 이해했으며 상인들을 설득해 나갔다.

시장과 상가조합 이사장의 끈질긴 설득으로 상인들이 점점 설득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에 부닥쳤다. 헤이와토리는 국도(國道)였기 때문에 도로청의 허가가 날 수 없다는 문제였다. 국도 폐지 결정은 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였기에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고민 끝에 시장은 꾀를 내어 아사히카와의 주요행사였던 여름축제를 위해 열흘 정도를 교통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로청을 설득했다. 도로청은 한정된 기간이었으므로 도로 점용을 허가했고, 아사히카와 시민들은 헤이와토리로 쏟아져 나와 교통이 완전히 통제된 헤이와토리를 12일간 밤낮으로 마음껏 즐겼다.

시장의 꾀는 성공했다. 보행자 전용공간을 마음껏 누린 시민들이 시장의 편이 되었고, 매출이 급상승한 상인들이 합세했다. 의회까지 합세하여 도로청을 설득했고, 결국 도로청은 헤이와토리 1㎞ 구간의 국도를 바로 옆 블록으로 옮겨 개설하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우선이었던 헤이와토리는 하룻밤 새 인간 중심의 공원으로 변신했다. 시민들은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결정된 헤이와토리를 기념함과 동시에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며칠 만에 화단을 만들고 3만 송이의 꽃을 심었다.

▲ 헤이와토리 쇼핑공원에 있는 조각분수대 ‘손의 분수(手の噴水)’

우리는 시가지의 중심도로를 설계하고 만드는 것은 당연히 행정청과 전문가의 일방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아사히카와 헤이와토리의 보행자전용 쇼핑거리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만들었다. 화단의 꽃을 직접 심었던 사람들은 대를 이어 지금까지도 꽃을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뚝심 있게 밀어붙인 이가라시 시장은 후일 추억담처럼 말했다. “당시 나는 시정(市政)에 관해서 완전히 아마추어였다. 그런데 그 점이 내게 오히려 행운이었다. 아마추어 정신이 없었다면 국도를 폐지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포기했을 것이다. 아마추어 정신이야말로 많은 관료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양평에도 곳곳에 인도가 넓어지고 일방도로가 시도되고 있다. 사람이 붐비는 거리는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마을이 살고 도시가 살고 공동체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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