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개들은 언제 목욕시켰냐는 듯 다시 흙먼지들이 털 속에 고이고이 쌓이고 집안에서 폴폴 날리던 고양이털도 공기 중 밀도가 현저히 떨어져가고 있다. 한마디로 목욕한 지 벌써 몇 주가 흘렀다. 장마도 왔다고 하니 아무리 꼬질꼬질해도 해 쨍할 때까지 한동안은 네발로 다니는 식구들의 목욕은 잊고 있어도 될 듯하다.

그럼에도 고무장갑을 끼고 마당에 나가면 개들이 신나서 달려오려다 주춤하며 뒤로 슬쩍 물러나서는 모른 척하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린 빼꼼이만 ‘혹시 목욕은 아니겠죠?’라며 집으로 쏙 들어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개들이 내 계획을 어찌 알겠나? ‘얘들아 목욕은 좀 지나야 할 수 있어~ 오늘은 아닌데?’ 아무리 말하고 텔레파시까지 보내도 보이는 반응은 ‘믿을 수 없어요~ 장갑을 끼었잖아요. 이번에도 속일지 몰라’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개들은 아무리 불러도 오질 않는다. 저렇게 성질 죽인 목소리로 불러서 자기네들에게 이익 된 적이 없다고 학습된 것 같다. 불러서 가보면 약 바르거나, 약 먹이거나, 귓속 쑤시거나, 게다가 목욕까지…. 그러니 개들은 ‘아 놔~ 왜 또 불러?’ 정도의 반응. 그리고 비닐봉지 소리를 내며 부르면 ‘오 예~ 간식?’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단, 진돌이는 예외다. 진돌이까지 싸잡아 이야기 하면 상황판단에 능한 진돌이가 엄청 화날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은 다르지만 개들이 보이는 반응에 나는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알 수가 없다. 목욕시키고 난 그 순간부터 내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애교를 부려 대서 맘 놓고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다.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예쁜 목소리로 울어대고, 간절한 눈망울로 다리를 휘감으며 쳐다보는데 뭘 해달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애꿎은 사료만 자꾸 주니까 흑미는 ‘그게 아니예요옹~’하며 냄새만 맡고 그 사료는 보리가 다 흡입한다. ‘사료 바라기’ 보리도 집안일을 하던 내가 잠시라도 멈추면 바로 앞에서 발라당 누워서 ‘냐아옹~’거린다. 비비적거리며 니야옹거리는 애교세트에 내 콧속은 근질거리고, 하던 일은 진척이 없다. 게다가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보고 있으면 굳이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책 위에 앉거나 모니터를 가리고 앉아 사팔 눈이 되도록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큰 눈동자를 하고 니야옹거린다. 설거지를 해도 음식을 만들어도 그 옆에 있어야 하고 화장실에서 일보고 나오면 두 마리가 나란히 기다리고 있다가 이중창의 ‘니야옹’을 불러준다.

무슨 심리일까? 누우면 몸 위로 올라앉아 가르릉거리며 집착을 보이는 요놈들을 보니, 개들과 달리 ‘이렇게 귀찮게 하면 다음에 목욕 안 시키겠지’라는 전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동물님들께서 심리를 이용한 전략까지 세우겠나만 어느 정도 내게 통한 거 같기도 하다. 목욕시킨 후 반복적으로 보이는 우리 집 냥이들의 행동으로 내가 학습되기 시작했다. 음… 다음엔 개들만 목욕시킬까? 요놈들 좀 피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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