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에세이> 김창환 양평중 교사

1990년대 초 국내 화장품 광고계는 ‘산소 같은 여자’를 내세우며 산소처럼 되고픈 여성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하지만 원시지구에서 산소는 골치 아픈 오염원이었다면 믿을까? 

원래 산소는 다른 원소와 반응하는 것을 좋아해 물질을 분해하고 산화시키는 독성이 강한 기체다. 물질이 부패하고 열에 타며 금속이 천천히 녹스는 부식과정도 모두 산소에 의한 산화과정이다. 활성산소로 알려지고 있는 산소의 산화적 성질은 세포를 손상시켜 노화와 암세포를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세먼지도 산소가 결합하면 2차 오염물질로 변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화학적으로만 표현한다면 산소 같은 여자는 독한 여자의 상징인 셈이다. 

초기 지구에서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은 효소를 만들어 산소의 화학적 성질에 적응했지만 다른 세균에게 산소는 매우 치명적인 기체였다. 원시세균들은 산소를 만나면 세포막이 분해되어 터져 죽었다. 지금도 메탄균이나 황세균은 산소를 피해 어두컴컴한 해저나 늪지대의 밑바닥에서 생존해나가고 있다. 

산소는 단단한 암석도 그냥 두지 않는다. 30억년 전의 암석 속에는 산소에 의해 쉽게 부식되는 철, 망간 등의 원소가 부식되지 않고 함유되어 있다. 이는 해양에 산소가 풍부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후 원시 해양에는 물의 순환으로 바다에 퇴적된 철이 산소와 결합하여 해저에 가라앉아 층층이 쌓여갔다. 

▲ 호상철광층(사진=서호주박물관)

이렇게 형성된 붉은철 퇴적물을 호상철광층(Banded iron formation)이라고 한다. 25억년에서 20억년 사이에 대량으로 형성된 호상철광층은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오늘날 대부분의 철광산으로 개발된다. 망간, 구리, 니켈, 우라늄 등의 산화된 퇴적층도 이 시기에 처음 나타난다. 

그랜드캐년의 붉은 바위도 철이 산화한 것이다. 산소가 풍부하여 해양이 산화되어 있는 현대 해양에는 산화되지 않는 순수한 금속들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에는 호상철광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약 22억년 전에는 땅위에 퇴적된 붉은 사암층이 형성되어있는데 육지 표면에 있던 철이 산화된 것이다. 땅을 파다보면 붉은 황토층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는 대기에도 산소가 많아진 것을 의미한다. 

원시지구에서 산소는 남세균이 광합성을 한 결과 배출되는 쓸모없는 쓰레기였다. 하지만 산소는 지구를 바꾸어 놓았다. 원시지구의 해안가는 미생물로 가득해 끈적끈적한 보라색으로 뒤덮였지만 남세균이 번성하면서 지구표면을 붉은색으로 바꾸어 갔다. 이후 남세균의 후손들은 식물로 진화하여 지구를 초록빛의 행성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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