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주민자치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11

 

 

물길이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한 곳이 또 있다. 후쿠오카(福岡)현의 야나가와(柳川)시다. 이름 자체가 그런 것처럼 예부터 버드나무가 흐드러진 물길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 곳에서 태어난 유명한 일본시인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는 “내가 태어난 물의 고장 야나가와야말로 나의 시가(詩歌)의 모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물길이 아름다운 야나가와가 현재까지 그 모습을 지키며 아름다움을 자랑하기까지는 깊은 사연이 있다.

야나가와는 바다에 접해 있는 습지인데다가 그물처럼 뻗은 물길로 물과의 공생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온 도시다. 물길은 수해방지용이기도 했으며, 아이들이 헤엄치며 물고기도 잡고 심지어 흐르는 물에는 식기를 헹굴 수 있을 정도로 맑았다. 그런데 도시화와 현대화의 물결이 이 물의 고장까지 밀려왔다. 도로와 택지가 필요해졌고 수로의 일부가 매립되거나 복개되기 시작했다. 수도가 보급되어 더 이상 개천의 물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 반면, 수돗물과 합성세제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배수되는 오염수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개천 바닥을 준설한 흙을 농지의 비료로 사용했지만 편리한 화학비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물의 오염이 갈수록 더해졌다. 이제 야나가와의 물길은 사람과 공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단순한 배수로나 웅덩이로 전락했다. 그럴수록 오염의 악순환은 계속됐다.

▲ 후쿠오카현(福岡県) 야나가와(柳川)시 수로의 나룻배놀이. 시의 한복판을 흐르고 있다.

드디어 1977년 시의회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제책으로 대부분의 개천을 매립하거나 복개하여 도시하수화 하자는 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의회에서 통과되고 현 당국의 승인을 얻었으며 200억원이 넘는 중앙보조금도 결정됐다. 시장은 야나가와를 근대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시청에는 이 거대한 공사를 실시하기 위해 새롭게 도시하수부서가 신설되었는데, 그 계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그 때까지 상수도를 담당해오던 히로마쓰 쓰타에(広松伝)였다. 행정조직이 절차를 거쳐 결정하고 중앙정부에서도 통과된 사업이었다. 히로마쓰는 그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임명된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공무원이라면 의문 따위가 있을 수 없었다. 실행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의 의무이기도 했다.

그런데 히로마쓰는 달랐다. “뭔가가 잘못됐다….” 의문이 밀려왔다. “물의 고장 야나가와에서 물길이 사라지는 것이 근대화인가.” 히로마쓰는 깊이 고민하고 몇몇의 주민들과 고민을 나누었으며 시장에게 간절하게 호소했다. 일단 3개월 정도 사업의 유예기간을 얻어냈다. 그러나 3개월 안에 매립이나 복개가 아닌, 개천을 살리는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다른 도시의 사례 등을 최선을 다해 연구했고, 마침 기타하라 시인을 기리는 야나가와 축제의 전날인 11월1일 ‘향토의 강에 맑은 봄을 되찾자-야나가와 시민을 향한 호소’라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 야나가와(柳川) 수로(水路)

시민들이 합세하기 시작했고, 합세한 주민들이 스스로 물길 살리기의 원칙들을 만들고 실천에 나섰다. 오염수 배출 줄이기, 준설, 쓰레기 치우기 등등. 드디어 시장도 결단했다. 매립과 복개의 프로젝트 대신 다시 한 번 야나가와의 아름다운 물길로 되돌려 놓기 위한 ‘하천정화계획’이 발표됐다. 의회도 승인하고 하천살리기 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편리한 생활에만 익숙해져가던 야나가와 시민들의 마음 속 깊이 잠자던 ‘아름다운 물의 고장’이라는 향수와 자긍심이 깨어났다.

야나가와 하천정화계획의 전문에는 ‘우리는 강이 오염되면 뚜껑을 덮어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 오염되면 맑게 만들고 파괴되면 고칠 것이며, 더 이상 오염시키고 파괴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야나가와는 흐드러진 아름다운 물길로 전국에서 유명하며 뱃놀이 여행객으로 철마다 붐빈다. 그러나 단지 물길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물길을 살린 한 공무원의 힘과 주민들의 자긍심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나아가 도시의 물길을 살린 대표적인 연구사례로 학자들에게도 유명하다. 

야나가와의 물길이 살아난 뒤 어느 공개 심포지엄 석상에서 한 방청객이 히로마쓰에게 물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당신은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히로마쓰가 머뭇거리다가 아주 나지막하고 느릿한 어조로 대답했다.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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