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이주 5년째 맞은 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

“성실·절약·정직, 가나안의 변하지 않는 핵심가치”

지평면 옥현리 칠보산 기슭에서
자연과 더불어 마음 다스리는 곳

 

▲ 가나안농군학교 입교생들이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는 교내에서 입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나안농군학교가 하남시 풍산동에서 양평군 지평면으로 이전한 지 올해 5년째를 맞으며 양평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이끌고 있다. 

60년 세월의 유서 깊은 교육지는 보금자리 주택지구 개발로 헐값 보상을 받고 이전해야만 했다. 2011년 옥현리 양평수목원 땅 6만㎡를 매입해 김평일 교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근 4년 동안 거의 매일 양평과 하남을 오가며 개간에 매달렸다. 부지는 풍산동보다 훨씬 넓은데다 깎아지른 산비탈에 학교를 짓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 교장과 직원들의 땀은 2014년 10월 문을 열고 ‘양평 농군학교 시대’의 개막이라는 결실을 이뤘다.

가나안농군학교는 고 일가(一家) 김용기(1909∼1988) 장로가 1931년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나라의 독립과 농촌부흥을 위해 ‘이상촌’(理想村) 건립활동을 시작한 게 출발점이다. ‘한손에는 성경을, 한손에는 괭이를’을 외치면서 복민사상을 확립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삼각교회와 농장 건설, 1950년 복음고등농민학원 설립 등의 과정을 거쳐 1954∼55년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현 하남시 풍산동)에 가나안농장과 가나안교회를 세우고, 1962년 지금의 제1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했다.

1960∼70년대 한국 정신개혁운동의 중심이었던 가나안농군학교는 ‘하면 된다’, ‘가난을 싸워 이긴다’ 등이 새마을운동 구호가 됐고, 새벽 5시에 울리는 농군학교의 상징 ‘개척종’은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를 만들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일가 선생은 제1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한 1962년 2월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이 학교를 찾아와 “내가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묻자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시는 겁니다”라며 도움을 거절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이후 가나안농군학교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됐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정·재계 인사 중 이곳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일가 선생은 농촌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6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사회공익부문)을 받으러 갈 때도 양복에 구두를 신고 가시라는 자녀들의 권유를 마다하고 깨끗한 삼베옷에 고무신을 신고 갔다. 그는 수상연설에서 “이 지구상에 핵폭탄이 있는 한 인류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인류에게 빈곤을 몰아내자, 평화를 수립하자, 영생을 얻자는 세 가지 구호를 높이 외치고 싶습니다”라고 역설했다. ‘노동의 종말’을 얘기하는 21세기 살고 있지만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는 김용기 장로의 주장은 아직도 유효하다.

세월이 지나 일가 선생의 삼남인 김평일(74) 교장이 지금의 가나안농군학교를 이끌고 있다. 김 교장은 “시대가 급변하고 있지만 열심히 일하고 최대한 절약하고 진정한 행복을 맛보자는 것이 가나안농군학교의 변하지 않는 핵심가치”라고 말했다. 근로, 봉사, 희생의 이념과 알도록 배우고 몸 바쳐 일하고 겸손히 섬기자는 교훈은 교육생들에게 참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된다.

지난해 6월 4·29 재보선 참패 후 내홍을 거듭하면서 벼랑 끝까지 내몰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들은 가나안농군학교에서 1박2일 과정의 워크숍을 가졌다. 오전 6시 기상 후 아침 산행에 이어 가나안농군학교의 프로그램인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에 참여하고 농사체험을 하며 어려움에 빠진 당을 살려내기 위한 정신무장에 나섰다. 

워크숍 첫날 자녁, 안민석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교육연수원장이 일과를 마친 뒤 국회의원들의 단합을 위해 막걸리 한 잔 정도만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김평일 교장은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혁신은 멀쩡한 정신에서 해야지 술 먹으면 싸움이나 더하고 말지 않겠느냐”고 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도 박근혜 대통령의 당 대표시절인 2006년 3월 성추행 파문 등으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도덕 재무장’을 하겠다며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워크숍을 한 적이 있다.

▲ 경북 상주시 이장 및 통반장 90여명이 지난 19일 가나안농군학교 단기과정에 입교해 김평일 교장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교육생들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개척’ 구호를 외쳤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예전의 교육방식에서 탈피해 변화된 시대에 맞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성실, 절약, 정직, 효 사상 등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체성은 지켜가면서 직장인,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의식개혁을 할 수 있도록 교육내용을 바꾼 것이다. 예전에는 보름간의 합숙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요즘은 의식개혁 및 미래설계과정(2박3일)과 단기과정(1박2일)만 운영한다. 강의만 하지 않고 농장견학과 등산 등 내용을 다변화해 호응을 얻고 있다. 단체나 기업의 요청에 따른 맞춤 프로그램도 짜주고 있다.

김 교장은 농군학교 일 말고도 30년째 탈북자들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명절마다 탈북자를 초청해 잔치를 열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한 평화통일탈북인연합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70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된 이 단체는 ‘평화통일예술단’ 등을 통해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예술단 공연은 교육과정에도 들어가 있다. 

김 교장은 “양평군 공무원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분들이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양평의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자연과 더불어 새롭게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지난 세월보다 양평에서 더 많은 땀을 흘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말했다.

  

가나안농군학교 건물 철거 후 복원

새마을운동 발상지 고려,
‘역사공원’ 관리방안 수립

  

하남시 풍산동 가나안농군학교 옛 건축물의 이전 문제가 국민권익위원회 중재로 해결됐다.

하남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미사지구 A20블록 입주 예정자 등 30여명은 지난 2월18일 LH 미사사업본부에서 국민권익위 중재로 현장조정회의를 열었다.

합의내용에 따르면 LH는 노후한 가나안농군학교 옛 건축물을 철거한 후 인접한 공동주택의 조망 및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지반 높이를 낮춰 건축물을 복원하기로 했다. 또 하남시는 LH와 협의해 역사성이 부각될 수 있는 역사공원 관리방안을 수립하고 경기도는 하남선 복선전철사업이 지연되지 않도록 조속히 공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는 역사성을 고려해 이전하고 남은 풍산동 가나안농군학교 본관 건물과 교회는 현대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역사공원으로 결정됐다. 이날 합의로 철거 후 복원되는 농군학교 옛 건축물은 본관(265㎡)과 큰 교회당(284㎡), 작은 교회당(43㎡) 등 총 3개 동이다.

이번 조정안은 여러 차례 실무 협의와 조율을 거쳐 마련됐으며 민법상 화해의 효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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