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에세이> 김창환 양평중 교사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스프가설이 의문시되고 있을 때 진화론을 탄생시킨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새로운 가설이 등장했다. 1976년 바이킹호의 두 번에 걸친 화성탐사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지 못한 인류는 생명탐사보다는 자원개발에 관심을 돌리고 심해탐사에 기술력과 재원을 투자하게 된다. 1977년 미 해군 심해잠수정 앨빈호는 수심 2700m에 270기압이나 되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저 화산지대로 내려가 지질조사를 실시했다. 

앨빈호는 높이 60m나 되는 굴뚝같은 구조물에서 35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검은색 연기처럼 솟구쳐 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이 구조물을 열수분출공(열수구)이라 하는데 메탄, 암모니아, 황화수소 가스를 뿜어대는 분출구 주변에 철, 황, 망간 등을 함유한 광물들이 침전되어 쌓인 것이다. 그런데 생명체가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고온고압의 열수구 주변에서 화학에너지를 연료로 생존하는 놀랄만한 생태계가 발견됐다. 

열수구 주변에는 황세균과 같은 미생물을 포함해 다양한 무척추동물들이 발견됐다. 눈과 소화관이 없는 새우, 길이 2m나 되는 관벌레, 25㎝ 조개, 흰색 게 등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이들은 몸속에 수십억 마리의 황세균을 길러 열과 영양분을 얻어 살아가고 있었다. 황세균은 황화수소에서 뽑아낸 수소를 이용해 열과 유기물을 만들고 있었다. 햇빛이 없는 어두운 세계에서 미생물들은 열수구에서 뿜어 나오는 광물을 산화해 에너지를 만들며 1차 생산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열수분출공(사진=동아사이언스)

이후 과학자들은 원시바다의 환경과 유사한 열수구에서 생명이 탄생됐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게 된다. 또한 실험실에서 고온고압하에 유기물 합성을 성공하면서 열수구는 생명기원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현재까지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에서 300개 이상의 열수구가 발견됐다. 

열수구에는 RNA나 DNA를 만들 수 있는 에너지와 영양분이 충분하다. 생명은 강렬한 자외선이 비치고 운석이 떨어져 위험한 원시지구의 육지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바다 깊숙한 곳인 열수구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온에서 생존하는 다양한 미생물을 옛 세균이란 뜻의 고세균(Achaea)이라 한다. 열수구는 고세균과 같은 원시생명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했다. 열수구 주변에는 황화수소와 철이 반응해 황화철을 만든다. 우리 피부에도 발견되는 황화철은 뜨거운 열수구 주변에서 탄생한 생명에 새겨진 오래된 유산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