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옥 시인

▲ 안정옥 시인

‘손님은 왕이다’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리츠칼튼호텔의 창업자인 세자르 리츠로 알려져 왔지만 내 생각엔 그의 정확한 뜻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식물이나 혹은 동물에 관해서도 얼마나 많은 오독이 자리 잡고 있는 줄 미처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사람에게는 어떤 정보가 한번 입력되면 여간해서는 다시 바로 잡아지지 않는다. 구조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사람의 뇌는 컴퓨터의 회로보다 더 복잡하게 수백억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한다. 그런 사람의 뇌를 어떻게 쉽게 수정할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내 마음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생겨났겠는가. 그러니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노화하는 자신의 뇌에도 활력이 될 것이다. 그럴 때 새롭게 다가오는 사물도 있고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호흡하며 살아가다 보면 그나마 거친 삶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즐거움 또한 분명히 있다.

예전 세자르리츠 호텔의 주 고객은 왕이나 귀족들이었다. 이런 손님들은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을 것이니 그 호텔은 아무나 묵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이름이 붙은 호텔은 왕들이 돈을 쓰는, 그래서 손님은 왕이었을 밖에. 어째든 우리말로 그 말을 직역하면 ‘손님은 왕이다’로 기막히게 번역되었고, 희한하게 맞아떨어지는 말이 되고 말았다.

이 호텔의 제1원칙은 ‘고객은 항상 옳다’이기도 하다. 쉽게 상상이 안 되는 고품격,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한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 당시 안으로 밀폐되고 억압되었던 여성문화를 밖으로 끌어낸 공로도 있었다. 파리의 리츠호텔 내 캄봉바(bar)는 남자들에게만 개방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남장을 한 여배우가 대담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후 호텔 측은 여성들의 바 출입을 허용했다고 한다. 그게 8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나 역시도 ‘손님은 왕이다’, 이 말 하나에만 집착해 그 뒤에 도사린 나머지의 전체적인 맥락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말을 오독해왔다. 어찌할 건가. 호텔에서 한껏 어떤 대접을 받든 우리는 결코 왕이 되지 못하는데, 귀족조차 될 수도 없는데, 어찌하여 그토록 왕이 되고 싶어 하는가. 그러나 방법이 있긴 하다. 왕과 비슷한 품위를 우리는 갖출 수는 있다. 그 한 예로 나는 양승훈을 본보기로 삼는다.

그는 국립공주대학을 졸업하고 양평 근교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ROTC장교다. 작년에 문을 연 나의 카페 ‘조르쥬 상드’의 말하자면 그는 손님이었다. 가끔 핸드드립으로 내린 케냐커피를 시켜놓고, 그 냄새를 오래 남겨가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잠깐의 휴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어머니와 다정하게 통화하기도 했다. 커피가 식어가도 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서 한 번도 찡그린 것을 본적이 없었다. 큰 소리 내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물론 ‘조르쥬 상드’만 들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가본 카페의 커피 맛과 주인들의 분위기를 익히 들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1년, 겨우 장사꾼 흉내를 낸 나로서는 아직 손님들에 대해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손님들은 마치 연인 같기도 하다. 변함없이 올 것 같이 하다가도 어느 순간 발을 뚝 끊어버린다. 그러다가 다시 들리는 사람도 있고 드문드문, 혹은 영영, 뭐 그런 사이인 것 같다. 마치 돌아선 연인에게 찾아가 돌아오라, 다시 돌아와 달라, 울고불고해도 소용이 없듯, 한때는 신파 같은 그런 추억과 같으리.

양승훈, 그는 내가 보기엔 한결같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삶 전체를 한 순간에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른 이들이 그를 바라보는 느낌, 내가 바라보는 느낌 또한 한결같을 것, 그런 매순간이 녹아 있을 그의 삶이라는 것, 그는 자신을 열심히 당당하게 그러면서 명징하게 풀어낼 것이다. 양평에서 군 복무를 마치는 32살이 될 때까지 가끔, 드문드문, ‘조르쥬 상드’에서 커피가 식어가도 긴 편지를 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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