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인터뷰> 뮤지컬 배우 조재국·김명희 부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는 뮤지컬이 아닐까. 춤과 노래가 연출하는 격정적인 무대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뮤지컬 배우들. 하지만 그들도 무대 밖에선 한 명의 소박한 생활인이고 학부모고 시민일 뿐이다. 예술인에게 양평은 어떤 곳일까. 그들의 양평살이는 어떨까. 뮤지컬 배우 조재국·김명희 부부의 솔직한 이야기를 전한다.

 

중심에서 멀어진 소외감에 때론 우울
그래도 자연속에서 금세 자신감 회복
용문에 집 짓고 교인들과 공동체생활

 

 

▲ 현역 뮤지컬 배우가 서울을 떠나 양평으로 이사 왔으니 중심에서 밀려나는 듯한 소외감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자신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부부는 때론 극복하고 때론 포기하며 양평살이에 적응하고 있다.

양평에 참 많은 예술가들이 산다. 내로라하는 화가, 감독, 작가들이 양평 이곳저곳에서 영락없는 촌사람 모양을 하고 재미나게 살고 있다. 1년 전 용문면 덕촌리에 슬그머니 이사 온 뮤지컬 배우 조재국, 김명희 부부도 그들 중 하나다. 남편 조재국씨는 극단 ‘하늘연어’ 대표로, 아내 김명희씨는 뮤지컬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 이 부부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뮤지컬 배우는 공연 준비가 시작되면 낮밤 없이 연습해야 할 텐데 무슨 마음으로 용문까지 들어왔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양평에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요?

“서울서 살았는데 아이들 교육문제를 고민하며 홈스쿨링을 해볼까 생각했어요. 또 공동체에 대한 생각도 있어서 처음엔 서울서 한번 시도해볼까 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더라고요. 마침 덕촌리에 살고 있던 지인이 마을을 소개해 주셔서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이사를 왔죠. 이사를 와보니 마침 근처에 좋은 초등학교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홈스쿨링 고민은 해결했죠. 비슷한 시기에 여섯 집이 이사 와서 공동체로 살고 있어요.”

-여섯 집이면 제법 많은데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요?

“서울에 있는 나들목교회 교우들입니다. 교인이 많아 그룹으로 모임을 하는데 여섯 집이 전부 다른 그룹이었어요. 친하거나 그런 사이는 아닌데 뜻이 맞아 오게 되었죠. 교회 목사님의 가르침이 영향을 끼친 것도 있고요. 공동체로 살면서 좀 더 급진적으로 살아보자.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보자. 좋은 영향력을 끼쳐보자 뭐 이런 취지랄까….”

▲ 서울에 살던 전셋집을 빼고 대출을 받아 새로 지었다는 아늑한 집에서 부부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처음 함께 살 때 저희 둘째에게 원형 탈모가 심하게 왔었어요. 다른 집 엄마들은 다 집에 있는데 제 엄마만 일을 가니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에요. 부모로서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도 저희도 자랐지요. 공동체에서는 서로 룰을 정해서 지내고 일주일에 한 번은 반상회처럼 모임을 해요. 조만간 수요일에는 하루 더 모여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역사공부를 할 예정입니다. 아직까지는 좋은 게 대부분이고 흠이라면 음… 맛있는 걸 사올 때 우리만 먹기는 맘이 걸리고 다 사오기는 부담이 된다는 것 정도?(웃음)”

-삶의 만족도는 그렇다 치고 일하기는 어떤가요?

“양평에 와서 제일 큰 단점이 그 부분이죠. 서울서는 둘 다 일을 했는데 여기서는 오가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애초에 한 명이 일을 하면 한 명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로 합의를 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더 잘 나가서 제가 주로 집에 있다 보니 정체성의 혼란이 오더라고요. 40대 후반이면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인 것 같은데 내가 주부인지 운전기사인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또 물리적으로 서울과 멀다보니 사람들과 멀어지고 일에서도 소외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다른 이웃집 남자들은 다 일하러 갔는데 저만 있으니 함께 사는 어머니 눈치도 보이고요. 그러다 오늘처럼 서울에 가서 일을 좀 보고 오거나 하면 금세 회복되기도 하고요.(웃음)”

-마을에 여럿이 떼로 오셔서 이웃들이 접근하기 부담되겠는데요?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가급적 마을행사에 다 참여하려고 노력합니다. 풀베기를 한다 뭘 한다 그러면 되도록 갑니다. 또 마을에 공동밭이 있어서 분양을 해주시는데 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저희는 거기에 농작물을 심어서 가꿉니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지나가시다가 말도 걸고 가르쳐주기도 하고 또 저희가 집으로 초대해 차를 마시기도 하죠. 마을 속으로 들어가려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행인 건 제가 평양조씬데 여기가 평양조씨 집성촌이더라고요. 따져보니 제가 항렬이 좀 높은 거예요. 그런 덕도 보고 있습니다.(웃음)”

-오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양평에서 조금씩 활동하고 계시다고요?

“세월호 참사가 있고 양평에서 바람개비들이 꿈꾸는 세상(이하 바꿈세)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더군요. 바꿈세에서 한 달에 한 번 양평역 앞에서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집회를 여는데 거기서 같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양평공부방이 있는데 거기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조만간 공동체 식구들 전부 매주 수요일에 역사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초반에 양평에서 어린이 연극 공연을 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과 여건 등이 많이 다르더군요. 그래서 좀 더 주변 상황들을 파악한 뒤 기회가 되면 배우들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 지역민들을 배우로 해서 연극을 올려보고 싶기도 합니다. 공동체조합을 만들어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네요.”

▲ 조재국씨는 서서히 양평에서의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배우가 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

-아내 김명희씨에게 양평살이란 무엇인가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요! 여자 배우에게는 성형을 ‘관리’라는 명목으로 요구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부분에 갈등이 없을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양평에 와서 어느 날 낙엽을 보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낙엽이 이렇게 예쁜데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면 그게 과연 예쁠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러움에 역행하는 일을 하지 싶지 않다 결심했죠. 혹 저의 이런 결심으로 일이 끊긴다면 까짓 거 청소라도 하고 살지 뭐! 그럴 체력이나 기르자! 이런 배포가 생겼어요. 그리고 이전에는 받는 걸 참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여기서 기쁘게 받는 걸 배우고 있어요. 공연 연습 막바지에는 서울 친정에서 지내는데 그때는 남편이 집안 모든 일을 하죠. 물론 어머님이 계셔서 든든하지만요. 공동체 이웃이 아이들을 함께 돌봐주고 있어 다 가능한 일들이죠. 저는 양평살이에 아주 만족합니다.”

 

 

조재국, 김명희 부부를 만나러 간다고 하자 듣는 이들마다 알 수 없는 지지와 환호를 보냈다. 참 좋은 사람들이라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포털 검색을 했더니 공연수익금 기부, 노숙자들을 위한 바하밥집 봉사 등의 기사들이 딸려 나온다. 집을 방문했을 때도 2층 올라가는 계단에 세계 각국에 있는 후원 아동들의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이 좋은 사람들의 객관적 근거라면 처음 보는 이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진실함과 선하고 맑은 눈빛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주관적 근거쯤 되시겠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10여 년 전 이들 부부가 출연한 뮤지컬을 몇 편을 본 적이 있다. <더 플레이>, <미스사이공> 등. 그리고 그들 책장에는 소싯적 내가 첫 책임편집한 책이 꽂혀 있었다. 처음 만났어도 낯설지 않은 까닭이 다 있구나 싶다. 머잖아 양평읍에서 누군가 연극 단원을 모집합네 뭐하네 하면 믿고 지원해 보시길 바란다. 여기 물 맑고 공기 좋은 양평에 좋은 부부 한 팀 추가요!

 

글=이경희 객원기자 imbeing@hanmail.net · 사진=이대호 기자
이경희 객원기자는 소싯적 의상디자이너, 출판기획편집자, NGO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경남 산청 시골출신이라 서울서 늘 흙을 그리워했다. 4년 전 양평으로 이사해 놀멍쉴멍 글도 쓰고 책도 만들며 남편과 두 딸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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