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인복지재단-2015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엄희권·김동연·고대훈 작가 참여, 6개월간 활동
김미남 서양화가, 프로젝트 제안… 조력자 역할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예술인 손길 필요한
지역·기업에 스며들어 사회·경제적 가치 높여”

▲ 공연예술작가 고대훈이 아신갤러리에서 드럼이 중심이 된 유니파이(UNI-FI) 밴드의 탭댄스 콜라보레이션을 공연했다. 유니파이는 서로 다른 것이 모여 새로움을 만든다는 의미로 고대훈이 2008년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사진·영상작가 엄희권(미디어아티스트)과 동화·일러스트레이트 작가 김동연(서양화가), 공연예술작가 고대훈(드러머·drumer) 등 3명의 예술인이 양평텃골 광장에 모였다. 이들 작가가 지난 6개월간 펼쳐 보인 예술 활동은 텃골 광장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옥천면 아신리 양평텃골 광장과, 광장에 자리한 아신갤러리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묘사한 것처럼 ‘광장’과 ‘밀실’의 상호관계와 균형이 어떠해야 하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텃골 광장은 예술인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사회 구성원 공통의 사회적 삶의 공간으로 거듭났고, 아신갤러리는 작가들의 창작물을 전시·발표함으로써 관람객과 작가 자신들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이 됐다.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가치를 조화롭게 구현해 나갈 수 있는 삶을 추구했다. 이명준은 남한이 독재를 위장하는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으로 가득 차서 진실한 광장은 없고 밀실만이 존재하는 곳이며, 사람들은 함께 광장을 일구는 것이 아니라 광장으로부터 훔쳐온 것들로 자신의 밀실을 가꾸는 데에만 열중하는 부도덕한 사회로 규정한다. 그래서 월북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북한은 혁명을 외치지만 진정한 혁명은 존재하지 않고 혁명의 화석만이 존재하는 광장, 허위에 가득한 광장일 뿐, 그곳에는 밀실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영위하는 공간인 ‘광장’과 개인적인 공간인 ‘밀실’이라는 두 개념을 통해 남과 북의 당시 정치 현실(소설 광장이 나온 당시는 4·19혁명이 성공을 거두고 새로운 민주화가 시도되던 때)을 비판하고 있다. 남한에는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와 밀실만이, 북한에는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무자유와 신념 없는 광장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사진·영상작가 엄희권의 미이어아트 작품이 아신갤러리에서 선보였다. 행위예술가의 몸짓이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별안간 밀실과 광장, 남과 북, 이데올로기 따위가 등장해 당황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2015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양평에서의 예술 활동은 양평텃골 광장과 갤러리가 갖는 의미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지난해 첫 사업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참여한 예술인들이 자신이 지원한 지역과 기업·기관 등에 파견돼 6개월간 예술 활동을 펼치는 사업이다. 

지난해 300명의 예술인들이 참여했고, 올해는 파견 예술인 455명과 60명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전국 각지에서 활동했다. 퍼실리테이터는 이 사업에서 파견 예술인과 지역·기관,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긴밀한 소통이 되도록 매개 역할(촉진자)을 하는 예술인을 의미한다. 엄희권·김동연·고대훈 작가가 양평텃골 광장을 지원했고, 김미남 작가가 퍼실리테이터를 맡아 이번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미디어아티스트 엄희권 작가는 KO-MAL Art Project, 세계미술작가교류회전, 대한민국회화대전, 대한민국신미술대전, BETTER IMAGE전, DIMA Photo Exibition 등에 참여했고, 단편영화 ‘MY PAPA’ 감독을 맡았다.

▲ 서양화가 김동연의 그림책 ‘넌 정말 소중해’ 표지. 쓰레기장을 뒤지는 중국 어린이, 차별받는 인도 어린이,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이라크 어린이…. 두려움과 외로움, 배고픔 속에서 살아가는 세계 어린이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안겨준다.

서양화가 김동연은 랑카위 아트비엔날레, Fountain Art Fair, 서울오픈아트페어, Exibition of Children's Picture Book Illustration(하슬라미술관 개인초대전), The Wall(개인전),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그림책 창작에도 전념해 김동연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넌 정말 소중해’(열린책들 별천지), ‘미시게의 약속’(주니어 김영사)은 보는 이를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공연예술작가 고대훈은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마칭데이, 계룡시 국군의 날 문화축제, 여수 국제마칭쇼, 사천시 세계타악축제, 이태원 지구촌축제, 어반 애슬론 마라톤 축하공연 퍼포먼스 등에 참여했다. 프로젝트 밴드 ‘유니파이’(UNI-FI)의 리더이자 드러머로 활동 중이다. 

퍼실리테이터 김미남은 25회의 개인전과 600회가 넘는 국내외 아트페어 및 단체·초대전에 참여한 중견 서양화가다. 서울시설공단이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상상마을에 조성한 나비조형작품 ‘행복한 날개’는 김미남 작가가 지난해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해 만든 작품이다. 얼마 전까지 양평미협 사무국장을 맡아 일했고, 올해 강원도 원주시에서 강원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중앙시장 레지던스 사업에 참여해 시장에서 버려진 한복 조각으로 나비를 설치미술로 제작해 상인과 주민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 서양화가 김성일(왼쪽 두 번째)이 아신갤러리에서 김동연·김미남 작가 등과 함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진행 상황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 작가는 지난 5월부터 양평텃골 광장에 모여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일환인 프로젝트형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6개월간의 활동을 마친 지난달 30일 아신갤러리에서 자신들의 결과물을 전시하고 또 공연을 선보였다. 지역 예술인들과 양평군청 문화예술팀 공무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품과 공연을 관람했다.

김미남 작가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두 배로 늘어난 1000여명의 예술인들이 전국 각 지역에 파견될 예정이어서 양평지역 예술인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며 “작가들이 양평 각 지역 혹은 기관과의 협업으로 예술인들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활발한 예술 활동으로 더욱 풍요로운 양평의 문화예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인 공동프로젝트… 활동비 지원

기업문화·지역사업 긍정적 변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인실태조사(2012)에 따르면 예술인의 66.6%는 예술창작 활동에 따른 수입이 월평균 100만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많은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예술과 무관한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을 병행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예술인이 자신의 예술 역량을 발휘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서브-잡(부업·sub-job)을 개발하기 위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대표 박계배)이 지난해부터 시작한 시범사업이다. 재단이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가 있는 기업·기관·지역과 예술인을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이들의 공동프로젝트에 대한 예술인의 활동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 엄희권, 김동연, 고대훈 작가(왼쪽부터)가 양평텃골 광장에 파견돼 6개월간의 예술 활동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결과물을 발표했다. 오른쪽은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한 김미남 작가.

그러나 단순히 예술인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인큐베이팅 사업만은 아니다. 예술인이 기업과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 예술 역량을 펼치는 과정에서 기업문화와 지역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문화예술이 사회전반에 스며들어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제고시키기 때문이다.지난해 참여한 ‘아모레퍼시픽’ 사례가 좋은 예다. 기업 측은 화장실 이용문화를 바꾸고 싶은 욕구가 잠재돼 있었다. 이에 기업 담당자와 멘토, 예술인이 머리를 맞대고 소통과 조율을 시작했고,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변기가 생명체로 꽃 피우는’,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도 우리 어머니’ 등의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사내 인트라넷에 소개하고, 함께 그리는 오픈 스튜디오를 만들어 임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재료가 소진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고, 자연스럽게 기업구성원 스스로 환경미화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이용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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