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어울림미술관이 열리던 날〉황재종(화가·평론가)

문화의 달 시월은 무명인사도 이래저래 바쁘다. 하늘이 열린 날을 기념하는 그 날에 특별히 초대를 한다기에 며칠 전부터 따로 날을 잡아 놨었다. 태초에 하늘이 열릴 때도 천지기운이 이렇게 조화로웠을라나! 과연 하늘은 맑고 공기는 달다. 서울 옆구리를 휘돌아 나와 차창 밖으로 비껴 스치는 양평 들판엔 곡식이 무르익는 향기가 새삼스럽다. 개벽 이후로 숱한 영욕의 역사의 퇴적물이 들판을 저렇게 황금빛으로 구워냈나 싶다. 

새벽부터 설쳐서 부산을 출발하여 산 넘고 물 건너 잰걸음에 당도한 그 곳, 어울림미술관. 짐짓, 초대한 이의 성향을 미루어보아 가우디의 미감과 바우하우스의 미학을 통달 했을 법한 현대건축가가 설계한 예술의 전당(殿堂)같은 미술관의 외관을 상상하며 먼 걸음을 재촉했거늘, 속았다! 

서울근교 저 너른 양평 땅에 명당자리가 그렇게도 없던가? 저 너르고 너른 대지 한 켠 논두렁 가에 옹색하게 터를 잡다니! 이 여자가 또 번지수를 헛짚었나? 공연히 네비게이션 안내양을 의심했다. 눈을 씻고 봐도 눈앞의 풍광은 초대장의 주소와 틀림없다. 

기대를 반쪽 접으니 위안이 배가 되었다. 그래, 내가 건축박람회에 온 게 아니라 미술관에 왔지. 기왕 나선 걸음인데 개관기념으로 통칙스님 목판화전이 특별하다는데 눈요기 하는 것만으로도 수지맞겠다 싶었다. 울퉁불퉁한 자갈마당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뜻밖이다. 

놀랬다. 마조개 껍질 같이 투박한 미술관의 외관이 놀랍고, 그 속에 깃든 사람들의 면면에 또 놀랬다. 전시실 안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신사숙녀 여러분들이 들어 차 있었다. 그윽한 다도(茶道)를 즐기는 그들 저 너머에서 이계진 아나운서가 태초에 하늘이 열릴 때의 그 일성(一聲)을 일갈하고 있었다. “두루 사람을 이롭게 하라, 그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어울림미술관 개관기념으로 열린 통칙스님의 판화는 법어(法語)의 말씀을 형상화 하고, 그 아래에 촌철 화두를 한 획 한 획 후벼 파 가슴팍에 뒤집어 찍어 놓은 듯하다. 용맹정진 하지 않은 불심으로서는 가당치도 않는 인고의 조판(組版)이다. 벽을 따라 한 점 한 점 판화를 눈도장 찍듯 읽어 나가는 사이에 전시장 밖 한마당에서는 개관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 짜임새 있게 조성해 놓은 작은 무대에 재단(齋壇)을 차리고 고사(告祀)를 지내는데, 비구스님의 행사진행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스님네 여럿이 북을 두드리고 징을 울리고 범패를 외면서 세상에 어울림미술관의 출범을 고했다. 비나리는 그 규모가 소박하지만 조화로운 형식과 밀도 높은 어울림으로 양평 들판으로 울려 퍼져 나갔다. 

 

▲ 원근각지의 스님과 불자, 주민들이 지난 3일 지평면 수곡리 어울림미술관 개관식에 한데 모였다. 축원의 마음을 담아 부르는 비나리 공연과 태평무, 승무, 시낭송이 이어져 조용한 농촌의 가을 들녘이 예술 마을로 변했다.

관람객들은 제 발로 나서 재단 앞에서 촛불을 켜고 축원을 했다. 그 사이 재단 위의 아담한 무대에서는 격조 높은 춤사위가 이어졌다. 세속의 아련한 정을 고깔 속에 접고 외씨 고운 버선발을 내딛으며 한을 풀어내는 승무는 묵음(黙音)의 시를 보는 듯하다. 나라의 태평성대 를 기리는 화려하면서도 고아한 왕비의 춤인 태평무를 보노라니 마치 어느 태평성대 왕조의 별궁에 초대된 듯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한마당에 현대식으로 마련된 뷔페 잔칫상은 뜰까지 깔렸다. 지역주민들도 이바지 잔치를 더불어 즐기니 말 그대로 도시와 농촌의 문화가 어우러지는 한마당이다. 라이브 통기타의 선율을 타고 흐르는 시낭송은 공연의 격을 한층 고아하게 수놓았으며,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유쾌한 퀴즈 경품행사와 대중가수의 흥겨운 노래로 뒤풀이를 마무리 짓는 일련의 총체적 구성에서 공영방송국 피디의 연출의 혐의가 묻어난다.

예로부터 집이 성스러운 것은 그 집이 웅장해서가 아니라 그 집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가늠된다. 핵심은 집의 규모가 아니라 그 집 주인의 성향이 아닌가. 무릇, 미술관은 단순히 예술작품들을 보관하는 물류창고가 아니다. 창의적인 소통과 교감을 전제로 하는 아카이브(archive·문서보관소)로써 작가와 대중이 시대의 정신사조와 궁극의 정신적 가치를 교류하는 플랫폼이고 시장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한낱 옛말의 허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에 적확하게 들어맞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의 변화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빠르고 다양하게 바꾸어 놓고 있다. 미술계의 풍속 또한 급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는데, 양평 땅에 어울림미술관이 자리 잡게 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필연적인 추이가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의 예술의 메카로 성황을 누려온 서울의 인사동에는 천민자본주의의 박해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림 같은 세상을 염원하는 순수 조형 예술가들의 그림자가 뜸해지고 숱한 갤러리들이 간판을 내리고 변방으로 나앉았다. 평생을 걸고 사투를 벌이며 그림 같은 꿈을 좇던 예술가들은 어디로 갔을까?

중앙 집중적으로 편중되어 유통되던 예술 산업은 IT시대에 즈음하여 개체화되고 세계화되었다. 이제는 하드웨어 중심의 규모 위주의 행태에서 소프트웨어의 가치 방식으로 문화 콘텐츠가 생성되고 교류되고 있다. 지방문화의 활성화와 SNS를 통한 1인 미디어 시스템이 시간과 공간적인 한계, 그리고 자본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서울 근교 양평에 자리 잡은 어울림미술관. 디지털 시대의 환경의 맥을 잘 짚으면 독이 아니라 덕일 수도 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한 두 시간 안팎 거리인 이곳은 도시인들에게는 힐링의 터전이 될 것이다. 문화적인 욕구를 해갈할 수 없어 갈증을 느끼는 숱한 문화인들을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서울 근교로 빼돌리기에는 오히려 양평이 맞다. 운영의 묘의 여하에 따라서 저비용 고효율의 문화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최적지가 아닌가 싶다. 

양평 주민들로서도 가시거리에서 문화예술을 일상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 셈이다. 개관기념식의 작으나 내밀한 행사의 구성을 미루어 짐작컨대, 어울림미술관은 문화적 콘텐츠가 아쉬운 지방자치 행정에도 효녀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 황재종 화가·평론가

디지털 시대의 생존전략의 핵심은 사람의 관계와 미학적인 콘텐츠다. 내가 어디에 있든 신심이 깊으면 신은 살아 있고 도를 틜게다. 과실나무는 말이 없어도 그 나무 아래로 절로 길이 난단다. 미술관이 서울 한복판에 있든 양평 논두렁 있든 기본적으로 미술관으로서 필요충분조건을 갖춘다면 아름답고 풍요로운 사람들은 깃들 것이고 문화는 알차게 배양될 것이다. 어울림미술관이 어떻게 하면 세상에 두루 이롭게 할 것인가는 정혜경 관장이 풀어가야 할 화두요 그의 성공을 이 시대 사람들이 간곡히 염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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