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자연③ 개군면 선사유적지

 

▲ 개군면 앙덕리 25-4번지에 소재한 양평군 향토유적 제39호 ‘앙덕리지석묘(고인돌).’ 군은 1998년 발굴 후 앙덕리 마을회관 앞에 방치돼 있던 고인돌을 2003년 ‘앙덕리소공원’을 조성하며 이동·복원했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웠던 선사시대 고인돌이 내가 사는 동네 어딘가에 있다면? 개군면 상자포리·앙덕리, 양서면 양수리·대심리, 서종면 문호리·수능리, 강하면 전수리, 강상면 대석리·병산리, 양평읍 회현리에서 고인돌이 발굴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이를 알고 있는 군민은 많지 않다. 양평중 이상수·김창환 교사와 함께 고인돌이 다수 발굴된 개군면을 찾아 선사시대 양평역사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1974년 팔당·소양댐 수몰지구 조사 때 첫 발굴
고인돌·자전거길 연계한 문화콘텐츠 고민 필요 
 
남한강 유역은 터전을 잡고 살기에 좋은 자연조건을 갖춰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에 유적이 널리 분포돼 있다. 남한강 하류유역 발굴조사는 지난 1974년 팔당·소양댐 수몰지구에 대한 조사 일환으로 이뤄졌는데, 양평에서는 상자포리·앙덕리·양수리·문호리 등에서 고인돌이 발굴됐다. 
 
▲ 상자포리 남한강 자전거길에 인접한 인가에선 고인돌의 흔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뜰이나 석축에 쓰인 것부터 정원석까지 쓰임새도 다양하다. 고인돌은 외부에서 옮겨온 암석인 탓에 지역에서 흔히 보는 암석과 종류가 다르다.
당시 개군면 앙덕리에서는 고인돌 1기가 확인돼 연세대 박물관으로 옮겨졌는데, 구멍쪼으개·뗀돌도끼·갈판·긁개 등의 석기와 고인돌 축조에 대한 의식행위를 살펴볼 수 있는 새 모양을 새긴 예술품도 함께 발견됐다. 상자포리에서도 고인돌이 다량 확인돼 국립중앙박물관이 5기, 이화여대 박물관이 5기, 단국대 박물관이 6기 등 16기를 발굴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한 고인돌은 가족무덤, 단국대 박물관이 발굴한 고인돌은 친연관계 무덤으로 추측됐지만 현재는 대부분 멸실 또는 이동돼 남아있지 않다. 
 
 
두 번째 발굴조사는 지난 1998년 앙덕·창대제방공사 시행 전 단국대 박물관에서 시행했는데, 앙덕리에서 4기의 고인돌을 추가로 발굴 조사했다. 이들 고인돌은 대부분 상면이 편평한 개석 아래에 자갈돌로 부분적인 받침을 한 형태였다. 발굴 이후 앙덕리 마을회관 앞에 방치돼 있다 지난 2003년 조성된 ‘앙덕리소공원’으로 이동해 복원·전시돼 있다. 
 
 
앙덕리 일대는 1998년 발굴당시 다량의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유물산포범위가 넓고 퇴적 상황을 고려할 때 지하에 신석기~원삼국시대 유구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잦은 홍수범람에 의한 층위교란이 심해 유구와 유물이 많이 소실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도 집을 짓다 유물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지만 주민들의 자발적인 신고가 없이는 사실여부 확인이 불가능해 소문만 무성하다. 
 
상자포리에서도 우연찮게 유물이 발견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김영기(75) 씨는 “연도는 기억이 안 나지만 부친이 밭을 갈다 돌칼과 활촉을 발견해 단국대에 기증한 적이 있다. 1960년대 중후반 대학에 다닐 때 고향인 양평으로 농촌봉사활동을 2~3차례 왔는데, 당시 함께 왔던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동네를 둘러보더니 보통 지역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며 “그 일이 단초가 돼서 유적발굴조사가 이뤄진 게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 이상호 씨가 상자포리 집 앞 도로에 있던 고인돌을 20여년 전 도로포장을 하며 집안으로 옮긴 과정과 당시 한 사람이 정원석으로 사용한다며 40만원에 고인돌을 팔라고 찾아온 이야기 등을 이상수·김창환 교사에게 들려줬다
개군면에 고인돌 유적은 남한강자전거길을 따라 분포돼있다. 앙덕리 25-4번지에 위치한 ‘앙덕리소공원’에서 앙덕리 고인돌을 관람한 후 자전거길을 따라 상자포리까지 30분 정도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민가 곳곳에서 고인돌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내표지판도 없고, 여름철이라 수풀이 무성해 전문가와 동행하지 않았다면 고인돌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고인돌 탐사를 해보니 자전거길과 연계한 문화콘텐츠, 지역축제 프로그램, 초·중학교의 교육프로그램,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사업 등 마을 문화자산으로서의 쓰임새나 개발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마을만들기사업으로 고인돌 안내지도나 표지판을 설치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양평지역 지질층 보여주는 흑천 반려암노두
트라이아스기 관입암으로 유일 
문화재 보존과 활용 방안 과제 
 
▲ 중앙선 전철 원덕역 앞 흑천 바닥에 노출된 반려암 노두. 모두 5곳 정도에서 관찰되는데 큰 것은 15m×7m 정도 크기다. 반려암 위에 흰줄처럼 보이는 것이 양평지역의 기반암인 편마암이다.
중앙선 전철 원덕역 앞 흑천 바닥에 노출된 반려암 노두. 약 2억4000만년 전 중생대 초기인 트라이아스기에 관입한 암석으로, 학계에 보고된 암석으로는 남한에서 유일하다. 흑천 바닥에 노출된 노두 5곳은 지난 2004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펴낸 ‘한국의 지질노두 150선’에 소개돼 있다. 2008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펴낸 ‘한국의 지질유산 정보 구축 및 관리방안’에 한국의 지질노두 목록(p182)과 보존가치가 있는 지질유산 심성암 분야 목록(p202)에도 등재돼 있어 학술적 연구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반려암 노두는 양평지역의 지질층 형성과정을 보여준다. 20억년 전 형성된 기반암인 하얀색 편마암 위로, 2억4000만년 전 마그마 폭발로 생성된 까만색 반려암이 덮였다.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으로 반려암이 깎여나가자 덮여있던 하얀색 편마암이 여기저기 줄 모양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또 마그마가 암석 사이에 끼여 굳어진 관입과정에서 형성된 포유암·장석·각섬석·휘석 등 중·고교 과학교과서에 소개된 광물을 직접 관찰할 수 있어 지역의 살아있는 자연사 학습장으로도 의미가 크다. 
 
하지만 지역의 자연유산인 반려암 노두에 대한 관심과 적절한 보존대책은 부족한 상태다. 지난 2008년 공세-원덕리 342번 지방도 확·포장공사 설계 시 다리교각이 반려암 노두 일부를 통과해 훼손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 2012년 양평교육지원청의 교과연구모임 ‘융합과학교육연구회’의 민원으로 다행히 설계가 변경됐다. 다리교각 설치로 인한 파손은 면했지만 지난달 29일 현장을 방문해보니 반려암 노두 설명이나 출입제한 안내문 설치 등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다리 완공으로 그늘이 드리워져 행락객들의 출입이 더 잦아진 듯 했고, 암석 주변으로 쓰레기가 쌓여있는 등 잠재적 훼손 위험은 여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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