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사진작가 김재영

기성언어 부정하는 ‘동심의 시각’…
물질·권력 구조 속 실체 파헤치기 
디지털미디어가 창조한 꿈의 나라

 

▲ The Legend, 70×70㎝, C-Print, 2009

어느 것이 가짜고 어떤 것이 진짜인지 헷갈린다. 대중매체는 뉴스와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더불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온라인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캐릭터와 함께 가상의 판타지를 유영한다.

김재영의 사진 작품에는 디지털 외눈박이(Digital Cyclops) 괴물이 등장한다. 미술평론가 박영택(경기대) 교수는 이 외눈박이를 ‘김재영의 아바타이며, 나라는 존재를 대신하는 디지털 존재(Digital-Being)’라고 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가 실제를 대신하고, 실제와 가상이 뒤범벅된 수수께끼 같은 불가사의한 존재인 아바타처럼 이 외눈박이 역시 가상의 것이다. 

 

▲ Go, 60.4×70㎝/123×142.2㎝, C-Print, 2008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김재영의 작품을 ‘매직 리얼리즘’(마술적 사실주의)이라고 평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인 그것과 시각의 차이가 있다.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무의식적인 꿈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그는 현실을 저버리지 않은 채 꿈과 환상을 덧입히려 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평범한 대상을 낯설게 표현하는 데페이즈망(Depaysment) 기법이나 우연성, 무의식을 따른 초현실주의와 달리 이성을 바탕으로 한 현실과 현실의 외적인 면이 보인다”고 말했다. 

 

▲ 경호원의 추억, 60×70㎝/123×143.6㎝, C-Print, 2009

그래서 그의 작업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현실과 가상, 그리고 그 경계를 오가며 과연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현실 속에서 판타지를 꿈꾸는, 그 현실이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 가는 마술적 환상의 미술을 만들어 낸다.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매직 리얼리즘의 문학작품들이 그렇듯 김재영의 사진은 보는 이들을 환상적 상징성을 강조하는 조형세계로 안내한다. 

작품 ‘경호원의 추억’에 등장하는 외눈박이는 김재영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꿈꾸고 바라는 세상을 표현한 눈이다. 때로는 힘겹고 어두운 세상을 가볍고 순수한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길 바라는 그의 의도와,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떠나길 원하는 현대인의 일탈의 소망을 담은 눈이기도 하다.

 

▲ 관람, 60.5×70㎝/123×142.2㎝, C-Print, 2008

배트맨 캐릭터가 여기저기 날고 있다. 오래된 브라운관 TV 화면 안의 이미지는 무너져 내린 삼풍백화점이다. 건물이 붕괴된 참담했던 순간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작품 ‘Go’는 배트맨과 같은 가상의 영웅이 나타나 끔찍한 순간을 극적으로 구출해내길 원하는 그의 소망이 담겨있다. 

배트맨과 작품 ‘아뵤’의 이소룡, ‘The Legend’의 나폴레옹 등 김재영의 외눈박이에 여러 분신으로 나타나는 캐릭터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동시대 현실에 대한 반응, 자신의 상념과 환상 등을 대체하고 있다. 또 이들 캐릭터는 어른의 세계, 기성의 언어를 부정하는 동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실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일은 그것이 가상이든 환상이든 상상하는 것이든 여전히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 Slam Dunk, 63×70㎝, C-Print, 2009

김재영의 다섯 번째 개인전 ‘디지털 조각’(Digital Fragments)은 양평군 강상면 교평리에 있는 갤러리 오거스트하우스의 7월 전시회로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앞선 네 차례의 개인전을 모두 서울에서 개최한 것을 보면 그의 첫 ‘탈(脫) 서울’ 개인전이다. 양평을 보고 느낀 그의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그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도시적 발전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발전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디지털 미디어는 오늘날 현실과 가상의 차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도시적 면모와 원시적 자연이 공존하는 양평은 그에게 여러 장르를 뒤섞고 몽상과 상상의 가능성을 조금씩 넓혀가는 작업의 여정에 숨을 쉬게 한다.

 

▲ 아뵤, 70×70㎝, C-Print, 2009

김재영의 작업 과정은 ‘사물의 실체’를 규명하고 바라보는 일이다. 그는 인생의 실체를 “원인과 결과, 변화와 반복, 쾌락과 고통, 기쁨과 슬픔이 계속되는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해결해야만 하는 숙명적인 과제”라고 했다. 물질과 권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 속에서 실체를 향해 서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는 실태래 같이 엮여져 돌아가는 인생에서 언젠가는 조금씩 풀려 나아가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작가가 걸어온 길)

 

▲ 김재영은 디지털 정보를 취합해 재배열하고 연출해서 가상과 현실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상상과 바람, 의지대로 이미지를 펼쳐놓는다.

김재영은 1971년 출생해 2006년 상명대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덕성여대와 상명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서울시 광진구에 작업실을 마련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Digital Fragments(디지털 조각, 2015·갤러리 오거스트하우스·양평), 아톰볼(2010·서울시 창작 공간 신당창작아케이드), 디지털 외눈박이(2009·인사아트센터·서울), 마이네임이즈 미스그린(2007·갤러리 스페이스 아침·서울), 3:07am(2005·갤러리 럭스·서울) 등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팝아트 기프트(2012∼2013·재미갤러리·서울), 팩션쇼(2011·일현미술관·강원도 양양), 신당창작아케이드 개관기획전 ‘시장의 발견’(2009), 키즈니랜드(2008·갤러리 꽃·서울), 백두대간 지리산(2007·전북도립미술관), 적절한 여자분(2007·스페이스 바바·서울),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Recontre Artistiques Et Culturelles’(2006·Maison de Gascone·프랑스), 디지털 미장센(2006·학고재·서울), 잃어버린 성괴를 찾아서(2006·스페이스 바바·서울), B급 공사(2001·나무갤러리·서울/영광갤러리·부산), 인간의 숲, 회화의 숲(2000·광주비엔날레), 여자, 그 아름다운 픽션(2000·SK Photo Gallery·서울) 등 다수의 단체전과 기획전에 참여했다. 

2009년 서울시 창작 공간인 ‘신당 창작 아케이드’ 1기(2009) 작가와, 서울문화재단 예술표현활동 지원에 선정됐다. 2008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및 표현활동 지원에 선정돼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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