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소 갤러리〉서양화가 윤동천

지배자의 권위와 무거운 주제, 
‘일상의 예술’로 통렬히 풍자
무기력한 기성에 대한 반성…
젊은 세대에 ‘희망알약’ 팔기

 

▲ 겸허한 소통 5, 2008, C-Print, 80×54㎝

‘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돈(33세 남자, 연구원), 주먹(30세 남자, 자영업), 여자 엉덩이(33세 남자, 법조인), 알통(42세 남자, 경영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기차 아저씨(7세 남자), 자기자신(11세 여자), 엄마의 사랑(11세 여자)…. 윤동천이 1998년 ‘힘’을 주제로 한 전시를 앞두고 펴낸 책자에 기록한 실제 설문내용의 일부다. 

말(馬)과 아기의 발, 공깃밥과 밧줄, 윷놀이와 알약들, 담벼락과 대나무…. 둘을 하나로 묶으니 ‘말빨’, ‘밥줄’, ‘도약’, ‘담대’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윤동천은 2007년 개인전 ‘망루’에 등장한 연작 ‘수수께끼-내게 필요한 것들’ 책자에 각기 다른 사물 두 가지를 찍은 사진을 나란히 배치했다. 두 가지 사물을 통해본 풍자적 낱말게임이다. 

 

▲ 수수께끼-내게 필요한 것들, 2007, C-Print, 30×60㎝(38쪽 중 부분-발산)

위 두 책자는 윤동천이 전시 주제와 연계해 제작한 것이다. 책을 먼저 펴낸 다음에 전시 도록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조사를 기반으로 한 그의 통계학적 작업은 꾸준하다. 

지난해 연 개인전 ‘병치(竝置)-그늘’에 등장한 ‘희망의 색’은 한국, 스페인, 일본인 90명에게 ‘희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상을 물어 그 색을 설문에 응답한 순서로 배열한 작품이다.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과 성별에 따라 색을 배열했더니 우리나라는 대체로 파란색이 많았고, 스페인은 녹색이 주를 이뤘는가 하면 일본은 노란색이 눈에 띄었다. 

‘병치-그늘’전에 대해 윤동천은 “사회비판을 하면서도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욕만 하던 기성세대에 대한 반성에서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애, 결혼, 취업을 포기하는 ‘3포 세대’의 현실에 공감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오브제 설치작품인 ‘희망 알약 3종 세트(연애, 결혼, 취업)’는 병으로 된 용기 안에 사탕이 들어있다. 용기 표면에는 ‘오래된 명약, 희망, 시대를 건너는 법’이라는 글자가 인쇄돼 있다. 

 

▲ 삶의 무게, 2014, interior sheet, 신문, 폐지, 병, 유모차, 436×272×140㎝

‘병치-그늘’전은 노란 색지 20점을 배열한 ‘무제’로 시작해 ‘희망의 색’으로 끝난다. 무제는 세월호 참사를 보고 작업한 작품이다. 그는 “힘들고 우울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엔 희망을 보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2011년 개인전 ‘탁류(Muddy Stream)’는 한국 사회의 혼탁한 현실과 우리의 삶을 집약한 윤동천의 키워드다. 탁류 이전까지 그는 평범한 일상의 사물과 문자를 예술의 소재로 삼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사건과 지표를 재치 있게 비틀었다면, 탁류는 보다 강렬하면서도 ‘센’ 작업들이다. 

 

▲ 잘 잊는 우리, 1991, 캔버스에 혼합재료, 194×520㎝

소화기와 촛불, 물대포를 맞는 시민과 난로 위의 물주전자, 시위대를 진압하러 가는 헬멧 쓴 전투경찰과 여자의 엉덩이, ‘명박산성’을 연상케 하는 컨테이너들과 국립묘지, 전투화와 발을 씻겨주는 손…. 위의 사진은 흑백이고 아래는 컬러다. 흑백사진은 폭력, 부정적, 국가권력 등이 연상되고, 컬러사진은 그 반대의 경우다. 두 개의 다른 이미지를 결합한 ‘겸허한 소통’과 ‘고독연작’은 관객에게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 거인의 노래, 1992, 캔버스에 혼합재료, 364×227㎝

지름 2미터 크기의 대형 애드벌룬 작품의 제목은 ‘정치가-공약’이다. 새까만 안감을 드러낸 흰 버선(‘정치가-속’), 귀마개로 막혀 있는 당나귀의 귀(‘정치가-경청’), 푸른 하늘에 줄을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정치가-특질’), 똥바가지를 걸어놓은 설치작품(‘정치가를 위한 도구들’) 등은 일상의 소재로 혼탁한 정치세태를 노골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 정치가를 위한 도구들, 2011, 똥바가지

 

▲ 정치가-오직 보이는 것 1, 2011, C-Print, 120×80㎝, 2쪽 중 부분

윤동천은 똥바가지 말고도 벽에 줄지어 걸린 각양각색의 파리채와 유리 진열장안의 세제, 빨랫비누, 바퀴벌레약, 쥐덫 등의 일상용품도 ‘정치가를 위한 도구들’로 명명했다. ‘정치가-오직 보이는 것 1·2’는 개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작은 원형 192개를 나열한 작품이다. 개와 같은 모습을 한 정치가들에게 필요한 건 똥바가지와 같은 ‘정치가를 위한 도구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200개에 가까운 개는 모두 우리나라 개가 아닌 외국산 개들이다. “우리 개의 얼굴은 품위가 있더라. 그래서 다른 나라 개를 사용했다.” 

(작가가 걸어온 길)

 

▲ 윤동천은 우리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아프게 꼬집고 일상의 예술로 정치가를 두들겼다. 그는 최근의 작품에서 사회 비판만 했던 기성세대에 대한 반성으로 ‘3포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노력한다.

윤동천은 1957년 화성시에서 태어나 1985년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7년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 Mi, U.S.A.)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미술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6년 서울에서 지금의 서종면 문호리 작업실로 들어왔다. 현재 소마미술관 명예관장, 장욱진미술관 운영위원, 박수근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쇳대박물관 자문위원, 판화진흥회 자문위원, 장욱진문화재단 이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병치-그늘’(2014·서울 신세계갤러리), ‘Smple Edge’(2013·일본 나가노 E.N Gallery), ‘TOOLS’(2012·일본 삿포로 Gallery Houmura), ‘탁류’(2011·서울 OCI미술관), ‘망루’(2007·서울 금호미술관), ‘조건부 무작위’(2005·서울 와이트월갤러리), ‘오랫동안 메마른 강바닥’(2003·일본 삿포로 Temporary Space), ‘뻔한’(2002·미국 채플힐 Allcott 갤러리), ‘차이’(1999·서울 성곡미술관), ‘그림-문자-공공’(1998·서울 일민미술관), ‘만화경-의미있는 사물들’(1995·서울 국제화랑), ‘다른 양식들’(1992·서울 샘화랑), ‘생각하는 그림’(1992·서울 갤러리 인데코), 제11회 석남미술상 수상 기념전(1992·서울 박여숙 화랑), 평론가가 선정한 ‘90년대 전망전’(1991·서울 가나화랑), ‘윤동천, 판화’(1991·서울 최갤러리), ‘희망의 나라로’(1989·서울 나우갤러리), ‘윤동천’(1988·서울 갤러리 현대) 등이 있다. 

1985년 여름 판화전·Print '85·현장 만남과 대화(서울 제3미술관)부터 지난해 한국-방글라데시 교류전(서울 목금토갤러리)까지 300회가 넘는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4회 국제 아시아 유럽 비엔날레 금상(1992), 제11회 석남미술상(1992), 제1회 토탈미술상 관장상(1991)을 수상했다. ‘미술 공교육의 활성화에 관하여’(아트 인 컬쳐 2014년 2월호), ‘판화의 길을 묻다’(2011년 월간미술 10월호) 등 28편의 논문과 원고를 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뉴욕 공공 도서관, 대영박물관, 뉴올리언스박물관 등 국내외 19곳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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