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일기⑮-김진선 동물애호가>

 

 

봄비가 몇 차례 왔다. 가뭄이라 걱정하던 뉴스도 들어갔고, 길옆의 논들은 벌써 뒤집어져 물을 받고, 밭에도 가지런히 검은 비닐이 씌어져 있다. 우리 집 마당 한쪽의 텃밭만 누리끼리한 마른 잡초더미랑 자라나는 새싹들이 공존하며 게으른 주인의 모습을 고맙게도 대변해주고 있다. 냉이는 어느새 꽃들이 만발해 버렸다. 싹이 날까? 궁금증을 가질 새도 없이 춥다고 느끼는 내 몸과 달리 나무엔 꽃도 달리고 소나무도 푸른 초록물이 올랐다.

겨우내 얼었던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봄비에 녹아 올라오는 습기와 냄새는 마당에서 평생을 보내는 ‘개님’들에게는 궁금해 죽겠는 보물 상자다. 나무는 얼었던 땅속의 습기를 쭉쭉 빨아올리고 개들은 땅속에서 올라오는 냄새의 근원을 찾아 여기저기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다. 비가 한차례 오고 나면 땅이 푸슬푸슬해져 몇 번의 앞발질로도 내 종아리 정도 깊이의 구멍이 파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런 구덩이가 마당 곳곳에 포탄 맞은 모양으로 파여 있다. 가끔은 맘에 들게 구멍을 다듬어 놓고는 해 좋은 낮이면 맞춤 잠자리로 활용을 한다.
 
여름에는 그 구덩이의 위치가 나무 그늘 쪽으로 바뀌어 뜨거운 열기를 막아주는 훌륭한 방공호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간혹 저녁에 무심코 마당을 걷다 구덩이에 빠져서 발목을 삐끗하기도 해 구덩이를 매우면 며칠 후 그 옆을 다시 파고, 매우면 또 파고. 그래서 이젠 매우지 않는 쪽을 택했더니 오히려 마당이 평평해져 가는 느낌이다.
 
겨울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 쌓아 놓은 장작도 앞줄은 다 때고 뒷줄 일부가 바닥을 드러냈다. 장작이 치워진 한쪽 구석에 100알정도 되어 보이는 도토리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개들이 장작더미에 코를 박고 자꾸 킁킁 거리더니 그 이유가 도토리 주인 때문이었나 보다. 도토리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이렇게 식량창고가 드러나 개들이 다 알아차리게 된 것이 미안했다. 그런데 웬걸, 목숨 걸고 도토리를 옮길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다음 날 아침 도토리가 한 톨도 안 남고 치워졌다. 작은 체구의 동물들이 개들의 위협을 피해 마당 밑으로 땅속 터널을 재주 좋게 만들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당이 개님들의 전유물은 아니구나 싶었다. 땅 위는 개들이 그리고 땅 아래는 작은 동물들이 곳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이뤄지는 동물들의 삶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물오른 나뭇가지로 새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지저귀는 걸 보면 생존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은 나무 위와 허공을 누비며 열심히 봄을 보내는 각종 새들도 있다. 겨울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가끔 곤줄박이나 박새가 와서 내 머리 위에서 지저귀며 아는 척을 한다. 처음엔 그저 자기 할 일 하나 보다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앵무새 먹이를 주기 시작하니 이제는 아침마다 마당쇠들의 뒤처리를 하러 나가는 시각이 되면 조용하던 마당 나무 가지 곳곳에 새들이 날아온다. 
 
그리고는 내 동선을 따라 머리 위로 쫓아다니며 지저귄다. 그 중 곤줄박이가 가장 친근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새 종류인데 봄이 되니 바빠졌는지 요즘 뜸해졌다. 그렇게 봄은 허공의 새들도 바쁘게 만든다. 가끔 보이던 물까치들도 마당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게 둥지 틀 장소로 향나무 속을 탐색하는 중인 것 같다. 작은 새들도 자기 짝을 찾으려 바삐 울어대고 가끔 가지를 물고 가는 까치를 볼 수도 있다.
 
▲ 김진선 동물애호가
봄이 오니 마당이 시끌시끌하다. 우리 마당의 모든 동물들아~ 부디 올해는 각자 자기 영역에서 최선의 짝과 둥지와 보금자리로 자손만대를 이을 훌륭한 후세를 양성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개들 조심하고!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