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미: 지능이 낮은 듯하고, 단순한 표정을 지닌 사람이 풍기는 아름다움. 언젠가 우리 둘째아이가 ‘백치미가 풍기는 여배우’라는 신문 기사 제목을 보며 백치미가 뭐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뭐라 대답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백치미’니 좋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치미가 풍기는 남성배우 이런 말은 안 쓰는데다가, 20대에 읽은 유명 소설 여자주인공 캐릭터가 전형적인 백치미로 묘사되었다. 시키는 거나 그냥 따라하며 자기 의견이나 주장이 없는 아리따운 여자 주인공. 물론 작가는 남성이다. 그때 내 나이가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불만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라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사랑’이니 ‘성장’이니 이런 주제보다 성차별적인 작가의 무의식을 봤다는 느낌 때문에 불쾌함이 컸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집 고양이 흑미를 보며 백치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생각해 보게 된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경험을 동반한다. 먼저 인연을 맺은 고양이 보리는 무척이나 점잖다. 배가 고플 때는 180도 태도가 뒤바뀌지만 내가 여기저기 얻은 고양이에 대한 지식을 확인시켜주는 행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다가 만난 두 번째 고양이 흑미도 보리와 약간은 다르지만 고양이 습성을 그대로 가진 영락없는 고양이였다. 그런데 ‘전 다 알아요’ 표정의 보리와 다르게, 눈앞에서 사고를 치고도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으로 얌전하게 앉아서 쳐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스스르 녹아 버린다.
 
어느 날 안방 침대 머리맡 벽지에 삼선 발자국이 패여 있는 걸 보았다. 그 정도가 심하여 덩치 큰 보리 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니니 야단을 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휴일 늦잠 좀 자려는데 머리맡에서 ‘버벅!’ 벽지 긁히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잠이 덜 깬 상태라 상황파악은 안 되었지만,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의 흑미와 ‘전 다 알아요’ 표정의 보리 중 왠지 범인은 보리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까 본 털 색깔은 흑미였다는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일단은 “이놈들!” 하고 힘줘 말했다. 보리는 얼른 눈치 채고 자리를 뜨는 반면 흑미는 범인인 주제에 가르랑 거리며 침대로 올라와 파고든다. 완전 무데뽀다. 
 
야단도 통하지 않고 모른다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행동은 특히 아침 먹을 때 심해진다. 바쁜 아침에 난 일어나자마자 고양이들 밥부터 준다. 안주면 내가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기 때문에. 그렇게 먼저 먹여도 아이와 내가 밥을 먹으려 식탁에 앉으면 고양이들도 식탁 의자에 착석을 한다. 흑미는 아이 무릎에, 보리는 바닥이나 아이 옆 식탁 의자에. 보리는 그래도 눈치껏 행동하긴 하는데 흑미는 당연하게 우리 둘째아이 무릎을 차지한다. 먹을 것이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한 숟갈 한 숟갈을 냄새 맡으며 동선 따라 얼굴이 움직인다. 제재하지 않으면 조금씩 몸이 식탁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아이 턱에 얼굴을 대고 숟갈이 입에 들어가기 전에 낚아채기 딱 좋은 자세로 바뀐다. 야단치면 다시 식탁 아래로 얼굴이 내려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까만 얼굴이 다시 올라온다.
 
▲ 김진선 동물애호가
그렇게 아침밥 먹으며 흑미와 씨름하던 둘째아이는 숟갈을 내려놓고 “너 때문에 밥 먹기가 너무 힘들잖아!” 하며 두 손으로 흑미 얼굴을 감싸 가만히 보았다.
 
“엄마. 나 백치미가 뭔지 알았어. 엄마가 말할 때 정확하게 몰랐는데, 흑미 보니까 알겠다. 아~귀여워”
“네가 바로 백치미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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