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소 초대석〉예술로 빛난 서후2리 정월대보름

마을거주 작가 9명 ‘그림 속 마을 역사’ 전시 
어른·아이 ‘왁자지껄’… 200인분 음식 동나 

▲ 서종면 서후2리는 올해 정월 대보름행사에 마을 작가 전시회를 열어 예년보다 5배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주민들은 마을회관 앞 잔디밭에 마을작가 9명이 출품한 작품과 장승을 전시했다.

정월대보름인 지난 5일을 전후해 양평군 12개 읍·면 마을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민속행사가 열린 가운데 서종면 서후2리에서는 여느 마을과는 다른 특별한 행사가 하나 더 추가됐다. 마을에 거주하는 작가 9명이 장승제와 더불어 소박한 작품전시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예년의 대보름 행사와는 다른 마을의 풍경에 새로운 감흥을 느꼈다. 

1987년부터 서후2리에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민정기(66) 화백은 정월대보름을 앞둔 지난달,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작가 8명과 함께 대보름 행사에서 미술전시회를 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평소 미술작품 감상 기회가 거의 없는 주민들을 위해 작품을 전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는 물론 스님까지 모두 9명이 지난 7일 열린 ‘을미년 서후2리 윷놀이 및 마을작가 작품 전시회’에 동참했다. 서양화가 이근명, 안호협, 정일영, 이용혁, 이종탁, 사진작가 정인숙, 조각가 조희섭, 구안사 주지 관연스님이 작품 30여 점을 전시했다.

행사는 청년회가 주축이 됐다. 박창재 회장과 장동배 부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마을회관 앞 정자가 있는 잔디밭에 장승을 세우고, 작품 전시대를 설치했다. 민정기 화백은 행사 며칠 전부터 주민들과 함께 준비작업을 거들었다. 작품을 설치할 위치를 잡아주고 행사의 프로그램과 전반적인 진행을 이끌었다. 

 

▲ 박창재 청년회장이 민정기 화백의 작품 ‘서후사계도’를 가리키며 마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 정인숙 사진작가의 작품 ‘서후리 할아버지’.

민 화백은 대형 걸개그림인 ‘서후사계도’(1992)를 선보였다. 마을 주민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사계절 동안 촬영해 그린 작품이다. 23년 전 그림 속 인물들은 현재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되었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분도 있어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정인숙 작가의 사진작품 ‘서후리 할아버지’의 주인공은 고(故) 장기평 할아버지다. 장석근 서후2리 노인회장의 부친으로, 정 작가가 1996년 촬영한 사진이다. 정 작가는 이후 마을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조각가 조희섭이 해학적인 모습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제작했다.
▲ 구안사 관연스님은 금강경의 글씨로 석탑의 형상을 그린 작품(왼쪽)과 경전의 일부를 붓글씨로 쓴 작품을 내놨다.

조희섭 조각가는 대보름 장승제를 위해 해학적인 모습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제작했다. 관연스님은 불교경전인 금강경(金剛經)의 원문을 글씨로 써서 석탑을 그린 작품과 달마도를 내놨다. 금강경은 부처가 깨달은 지혜의 삶을 설법한 경전으로, 관연스님은 꼬박 1년의 작업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 장승제를 주관한 관연스님은 서후2리 주민 일동이 상향하는 축문을 읽으며 마을과 주민의 만사대통을 발원했다.

이어 본격적인 정월대보름 민속행사가 시작됐다. 주민들은 윷놀이와 인절미 떡메치기, 노래자랑 등을 즐기며 마을의 화합과 발전을 기원했다. 음식은 청년회원 박병기(48) 조리사가 도맡았다. 군복무 시절 장교식당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부녀회원들과 함께 소머리국밥, 수육, 녹두전, 깍두기, 배추겉절이, 고들빼기, 취나물, 어묵 등 다양한 음식을 차렸다. 예년보다 5배 이상 많은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해 준비한 200인분이 순식간에 동이 날 정도였다. 

 

▲ 인절미 떡메치기는 윷놀이와 함께 대보름 행사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아이들은 직접 떡메를 쳐 콩고물에 묻혀 먹는 인절미 맛에 정신이 팔렸다. 윷놀이 대회 경품 대상인 42인치 엘이디(LED) TV는 박상우(서종초 3년) 학생에게 돌아갔다. 노래를 잘 부른 사람과 춤을 잘 춘 사람에게는 전기압력밥솥과 식기세척기, 프라이팬을 선물로 타갔다. 아이들은 과자와 장난감을 받아 들고 마냥 즐거워했다.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은 저마다 손에 올리브 식용유를 선물로 받았다.

주민들은 지난해보다 풍요로운 행사를 지내며 즐거워했고, 전시회에 참여한 마을작가들은 마을주민들과 어우러지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작업의 영감을 받은 하루였다. 주민과 함께하는 전시회, 마을의 역사를 반추한 이번 행사는 주민들이 미술문화와 소통하는 밑거름이 됐다.

 

“주민화합 1등 마을, 마음의 양식도 부자”

“예술가·주민 공존·동화… 내년 대보름 더욱 기대돼” 

서종면 서후2리에서 외지인과 원주민을 구분했다가는 ‘미개인’ 취급을 당하기 쉽다. 서후2리는 2013년 말 외지인의 비율이 마을 인구의 70%를 훌쩍 넘었다.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등을 제외하곤 마을 일의 중책 대부분을 외지인이 맡고 있다. 원주민과 외지인을 구분하면서 비롯되는 주민 갈등이 없는 마을로 손꼽힌다.

한기중 이장은 주민 화합의 비결을 “주민들의 말을 귀담아 듣기 때문이다. 이장이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마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고 했다. 

 

▲ 서종면 서후2리는 외지인과 원주민 구분 없이 이장을 중심으로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가 똘똘 뭉쳐 다른 마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왼쪽부터) 관연스님, 박춘기 새마을지도자, 한기중 이장, 장동배 청년회 부회장, 박창재 청년회장이 지난 7일 정월 대보름행사 때 제막한 장승 앞에 모였다.

이장이 마을의 중심축이라면 대소사를 직접 챙기고 앞에서 솔선수범해 이끄는 건 청년회다. 이번 대보름 행사도 청년회가 주축이 돼 움직였다. 박창재 청년회장은 “주민 화합 1등 마을에서 마음의 양식도 부자인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부대끼며 정신적 가치의 고양과 작품의 영감을 서로 주고받는다. 

이번 대보름 행사에 참여한 마을 작가는 서후2리에서만 9명이다. 서양화가 금동원이 사는 인근 서후1리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아진다.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서후사계도’를 그린 민정기 화백은 “예술인과 주민이 공존하면서 서로의 모습에 동화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풍경이 이론과 상황을 겪으면서 역사 인식이 생기는 작업이듯 우리 삶의 모습과 그림 역시 그 지역에 살면서 풍경을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고 또 깊이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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