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일기⑫-김진선 동물애호가

 

 

경황이 없었다. 두 번의 발정이 오고서야 ‘그래 하자. 어차피 해야 할 것이니 이번 발정 끝나면 만사 제쳐 두고 해야지’ 다짐 다짐을 했다. 그리고 발정이 끝난 듯 조용해진 지 일주일이 지난 즈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병원에 ‘흑미’를 데리고 갔다. 정신없이 바쁜 게 이럴 때는 약이 된다. 생산적이지 않은 온갖 걱정과 쓸데없는 추측으로 며칠 전부터 신경이 곤두섰을 텐데 일주일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가다보니 걱정할 새도 없이 토요일이 되었다.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리 온도와 빛의 길이에 따라 발정이 온다. 한마디로 온도가 낮고 낮이 짧은 겨울에는 발정이 오는 시기가 아니지만 실내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에게는 온도나 빛이 계절과 상관없으니 그 시기를 딱히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발정 주기가 따로 없다. 게다가 임신을 안 하게 되면 점점 발정 주기가 짧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흑미가 우리 집에 올 때 즈음 날씨가 무척 추웠었다. 주로 밖에서 생활하다가 실내에 잠시 들여 놓는 정도의 온도에서 지내던 아이를 우리 집에 데려왔을 때는 날씨가 봄이라고 착각이 될 정도로 따뜻한 날이 계속 되었다. 우리 집 영산홍도 삐죽이 꽃 봉우리를 내 놓았으니까. 바깥기온이 봄처럼 따뜻하다 보니 혹시 발정 오면 어쩌지? 하다가 덜컥 올 것이 왔다. 막연하게 듣던 고양이들의 발정상태를 흑미를 통해 거의 10일 이상 지켜보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다행이 수컷이지만 이미 수술된 상태에서 온 보리의 도움으로 그나마 수월하게 넘어갔다. 
 
이제 밖의 온도도 많이 내려갔다. 영락없는 겨울추위였다. 게다가 양평은 춥고 우리가 사는 산자락 끝은 더 추웠다. 그런데 집안이 따뜻해서인가? 사실 우리 집은 춥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전혀 따뜻하다는 생각을 못한다. 그러나 흑미는 그렇지 않았는지 1월 말이 되었을 때 두 번째 발정이 온 것이다. 그렇게 기어코 두 번째 발정을 겪게 하고서야 ‘더 미룰 게 아니구나’ 했다. 하지만 수술에 대한 미안함과 불안감은 몇 번을 경험했다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니 미루고 싶은 심정을 이성적으로 누르고 결정할 때마다 내 속이 볶였다. 발정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 얼른 수술해서 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줘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저게 괴로워하는 모습 맞나? 내가 듣기 싫고 견디기 싫고 새끼나면 그 다음이 또 문제니까 나 좋다고 아이 몸에 칼을 대고 신체의 중요한 생산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은 아닐까?’ 회의가 들었다. 
 
흑미가 수술 전, 수술 후 모든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면 나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영문도 모른 채 아침 굶고 끌려가서 목에 불편한 깔때기를 차고 통증을 동반한 채 깨어났을 때는 아직도 낯선 병원. 그나마 익숙한 주인이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위로랍시고 토닥토닥 거리며 집에 돌아왔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르랑 가르랑’ 지금은 옆에서 깔때기를 끼고 가르랑거린다. 고양이가 맘이 편하거나 기분 좋으면 내는 소리 ‘골골송’을 듣고 있자니 미안함과 큰일이 지나갔다가는 안도감에 이렇게 또 지나가는구나 싶다. 깔때기를 한 흑미에 깜짝 놀라 피하던 보리도 이제 슬슬 곁을 내어주며 함께 힘든 시간을 지켜주고 있다.
“흑미야, 미안하구나. 하지만 사람들은 그리고 난 이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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