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오일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

문화·재미 담은 복합공간 추구
각 시장별 차별화·특성화 과제

# 양평군이 양평·용문·양서시장 등 3대 ‘인정시장’을 중심으로 한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에 나섰다. 시장마다 가진 특색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해 관광객을 시장고객으로 흡수한다는 계획이다. 군이 그리는 밑그림을 소개하고, 상인회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 용문시장은 지난해 오일장 위치를 용문역 앞으로 옮기면서 변화를 시도학 있다. 시설현대화사업을 통해 골목형 특성화시장을 추구하려 한다.

“장에 가자.” 예전 5일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고 소통하는 ‘삶이 있는 장소’였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대형마트에 설 자리가 좁아졌다고 하지만 5일장을 찾는 고객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예전 정겨운 시골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양평군의 전통시장(5일장)들이 새해 들어 차별화된 전략으로 각기 다른 매력 발산을 꾀하고 있다.  

관광객을 시장고객으로

양평에는 모두 6곳의 전통시장이 있는데 이 중 양평(3·8일장), 용문(5·10일장), 양서(1·6일장) 3곳의 5일장이 눈여겨 볼만한 시장들이다. 

양평 5일장은 다른 도시의 전통시장들보다 교통 접근성이 좋다는 게 장점이다. 중앙선과 경의선 전철을 타면 양수∼양평∼용문역으로 이어지는 전통시장이 차례로 나온다. 3개 시장 모두 주변에 관광지가 있어 하루 가족관광 코스로 좋다. ‘양서시장’은 두물머리와 세미원이 코앞이다. ‘양평물맑은시장’은 군립미술관과 남한강 자전거도로, 갈산공원, 물소리길이 인접해 있다. ‘용문시장’은 용문산관광지, 양평레일바이크, 오커빌리지 등이 가깝다. 

양평군은 새해 들어 이들 3대 시장 각각의 차별화된 특성화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양평물맑은시장은 문화와 시장을 접목시킨 문화야시장과 주말 농·특산물 직거래장터를 운영하는 게 특징이다. 비가림막(아케이드)이 설치된 먹거리골목을 중심으로 상설시장화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용문시장은 산나물을 특화한 ‘골목형 특성화 시장’으로 개발 중이다. 올해 중소기업청의 시설현대화사업에 선정되면 내년부터 고객지원센터와 아케이드를 조성할 수 있다. 

양수시장은 관광과 시장이 접목된 ‘관광형 시장’으로 육성한다. 올해 시설현대화사업의 일환으로 아케이드를 설치한다. 이밖에 ‘국밥거리’를 공략한 지평5일장(1·6일장)까지 다양하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시장 발전을 꾀하고 있다. 

 

▲ 양평군은 양평물맑은시장 아케이드 활성화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먹거리골목 일대부터 상설시장화 한다는 구상이다.

3대 전통시장협의회 구성

김선교 군수는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전통시장 재생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새해 군정 5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김 군수는 “기존의 5일장을 상설화하기 위한 기반 구축에 나서겠다”며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의 양평전통시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군은 특성화와 차별화를 전통시장 재생의 키워드로 삼았다. 윤상호 지역경제과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그 시장만의 문화와 관광을 사고파는 시장을 만든다는 전략을 세웠다”며 “양평전통시장의 비전은 지역에 맞는 문화와 전통, 나름의 관광자원을 묶어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도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22일 양평·용문·양서시장이 참여하는 ‘양평군 전통시장협의회’를 구성한다. 3대 상인회간 우수사례 정보를 공유하고 유대를 강화해 상인들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삼고 협의회 회칙과 자체 규약도 제정한다. 이들은 협의회 차원의 공동 홍보(전철 광고 등)와 온누리상품권 활성화 캠페인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함께 발을 맞출 계획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연계해 전통시장 자생력 강화를 위한 상인 의식개혁을 펼치고, 고객만족헌장을 제정할 방침이다. 

 

 

온 국민 단골 만들기… 북적북적 비결은 콘텐츠

주민놀이터 같은 시장
마트 못지않은 청결함
명물 키우는 특화거리

시장을 주민들의 문화 사랑방으로 만들자 매출이 껑충 뛰어오른 충북 청주 가경시장. 전남 장흥 정남진토요시장은 ‘한우 정육식당 거리’를 조성하자 연매출 1000억원을 올리는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상인들이 위생과 품질 단 두 가지로 똘똘 뭉친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 활기가 없던 전통시장이 살아난 곳의 공통점은 콘텐츠였다.

문화를 입힌 청주 가경시장

충북 청주 가경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주민들의 동아리·취미 활동 공간이자 공연장이고, 주말엔 아이들의 놀이터다. 가경시장은 2009년까지만 해도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장이었다.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들어선 대형마트·복합쇼핑몰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2010년 3월 소규모 악단이 시장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하면서 ‘노래·음악소리가 들리는 시장’으로 소문이 났다. 상인과 지역 예술가들은 이 기회를 살리려 머리를 맞댔다. 공연이 없는 날 주민들이 문화 취미를 익힐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장에서 5000원어치를 사면 쿠폰 한 장을 주고, 쿠폰 50장을 모아오면 판소리나 목공예 같은 문화예술 활동을 한 달 동안 무료로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문화와 바람난 시장길 프로젝트’다.

주민뿐 아니라 상인들도 취미·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주민들과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여기서 쌓은 관계는 매출을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시장이 주민들의 놀이터, 주민과 상인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명물 키웠더니 연매출 1000억 

2004년 말, 주차장을 짓고 시설도 개선했는데 손님이 오지 않는다고 고민한 김인규 당시 장흥군수가 장안대 변명식(프랜차이즈경영학) 교수에게 시장이 살아날 방법을 부탁했다. ‘시장엔 한 가지 명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변 교수는 ‘한우 특화 거리’를 제안했다.

전남 장흥 정남진토요시장은 시장 안에 정육점과 식당을 겸한 점포가 늘어선 거리를 만들었다. ‘한우 정육식당 거리’다. 마침 장흥은 소 사육농가가 꽤 많아 쇠고기 값이 다른 곳보다 쌌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농협 등과 손잡고 150석 안팎의 대형 정육식당 3개를 만들었다. 쇠고기를 산 뒤 상차림비만 내면 즉석에서 구워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차츰 한우 농가를 끌어들여 20여 개 정육식당이 늘어선 거리를 형성했다. “웬만한 식당보다 30~40% 싸게 한우를 먹을 수 있는 시장”이란 소문이 퍼졌다. 한우거리를 찾아 시장에 온 손님은 다른 물건도 사갔다. 2005년 100억원이던 시장 매출은 지난해 1000억원으로 10배가 됐다. 최근엔 한우고기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먹는 ‘장흥 3합’을 개발해 버섯 매출까지 늘렸다.

통로 넓은 대형마트 같은 시장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은 마트 못지않은 청결한 관리로 ‘통로가 넓은 대형마트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채소·과일은 누런 종이박스가 아닌 플라스틱 용기에, 생선과 고기는 냉장 매대에 반듯하게 놓는다. 

9년 전 신사시장은 동네 주민들조차 찾지 않는 곳이었다. 연립주택 사이로 점포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차 있었다. 보안등도 없어 밤이면 음산한 뒷골목이 됐다. 빈 점포가 하나둘 늘면서 절박함에 머리를 맞댄 상인들은 ‘위생·품질’을 들고 나왔다. ‘대형마트 같은 시장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여기에 더해 쿠폰을 발행하고 대형마트 휴점하는 둘째·넷째 일요일에 전단 세일 행사를 한다. 

주차장을 만들고 고객지원센터를 짓는 전통시장 지원방식을 청경과 위생을 챙길 수 있는 매대 등에 지원하는 것으로 바꾸면 지원금은 줄이고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사례다. 

‘온리원’ 양평전통시장, 걸림돌은 없나

선결 과제 만만찮아

22일 구성하는 양평군 전통시장협의회와 양평군이 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김선교 군수가 밝혔듯이 양평전통시장이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 고유의 특화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시설현대화사업에 수반되는 하드웨어 요소도 점검이 필요하다.

용문시장은 주차장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군은 한국철도공사 소유의 용문역 주차장을 임대 활용한다는 계획이지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일단 한국철도공사로부터 임대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용문역 주차장이 이달 중 유료화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수익사업의 주차장을 군에 임대하기가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양서시장은 현재 협소한 시장 부지를 확대하려는 게 상인회의 자체 구상이지만 도로관리부서와 협의 등 행정절차가 산재해 있어 당장 추진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양평물맑은시장을 상설시장화 하는 방안 역시 추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아케이드가 설치된 먹거리골목 가운데에 좌판을 깐다는 구상인데, 골목의 폭이 협소한데다 골목에 입주한 기존 상점 대부분이 음식점과 일반 상점들이어서 시장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 좌판 상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군, 시장 활성화에 팔 걷어… 시설 투자에 집중

양평시장, 먹거리골목 중심 상설시장 
용문시장, 골목형시장·아케이드 설치
양서시장, 아케이드 씌워 시설현대화 

 

▲ 양서시장은 시설현대화사업으로 아케이드 등 기반시설을 확충해 경쟁력 있는 전통시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양평물맑은시장은 아케이드가 설치된 먹거리골목을 시작으로 올해 상설시장화의 기반을 닦는다. 우선 음식점과 상가가 들어선 좌우 통로 가운데에 좌판을 깔아 상설시장의 모습을 갖춘다. 군은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을 ‘아케이드 활성화 추진위원회’(옛 먹거리골목추진위원회)에 맡기기로 했다. 상인들은 이미 두 차례 국내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전북 전주시 남부시장 견학을 다녀왔다. 전주 남부시장은 매주 금·토요일 상설 야시장이 열린다. 

올해 연말 준공을 목표로 옛 장옥 부지를 활용한 양평물맑은시장 쉼터(광장)를 조성한다. 지난해 10월 시작한 ‘문화 야시장’을 오는 4월부터 먹거리골목과 연계해 확대한다. 문화관광형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물맑은장터 관광열차’와 파워 블로거 등 네티즌들로 구성된 ‘파워웹 홍보단’, 상인회 동아리 등을 운영한다. 

용문시장은 ‘산나물 특화시장’과 ‘골목형시장’으로 거듭난다. 올해 중소기업청의 시설현대화사업에 선정되면 내년에 고객지원센터를 짓는다. 1·2층은 로컬푸드 직매장이 입주한다. 고객지원센터가 들어서는 옛 용문시장 부지 일대를 상설시장으로 육성해 아케이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주차장은 용문역 주차장을 임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용문산 산나물축제가 용문산관광지와 용문시내 일대에서 열리는 점에 착안해 산나물 특화시장으로 육성한다. 군 전체면적의 74%에 달하는 산림자원과 임산물을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용문시장은 지난해 7월30일 기존 오일장 부지를 용문역 앞 T자형 구조로 이전한 뒤로 고객 수가 예전 4000여명에서 1만2000여명으로 늘었다. 규모 있는 시장으로 성장하면서 양평군 동부권 지역의 허브시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용문시장 아케이드 조성사업 위치도. 시설현대화사업에 선정될 경우 내년에 옛 용문시장 부지를 세 구간으로 나눠 아케이드를 설치한다.

양서시장은 오는 10월까지 아케이드 설치공사를 완료한다. 내년에는 양평물맑은시장과 같이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에 도전해 관광자원을 활용한 시장으로 거듭난다는 구상이다. 두물머리와 세미원 등 관광지가 인접한 점이 강점이다. 군은 두 관광지 방문객의 10%를 시장고객으로 유치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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