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방 - 창성농기계 민영준 대표>

농사 문외한이 친환경농기계로 인생 2모작 도전

개발․제조․판매 1인다역 소화… “후계자 모집 중”

누렇게 익은 양서면 부용리의 가을 들판 가운데 얼핏 보면 일반 농가로 보이는 집이 눈에 띈다. 민영준 대표가 본인의 집 창고 50㎡를 개조해 만든 창성농기계 사무실이 그곳에 있다.

원래 민 대표는 기계제조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다. 농사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친환경농기계를 만들게 됐을까?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집념이 만들어낸 농기계들. 그 부품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초제 쓰면 인류도 멸망”

▲ 친환경농업만이 자연과 인간 모두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창성농기계 민영준 대표. 10년간의 적자 끝에 최근 3년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고 회사가 성장하고 있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민영준(68) 대표는 일찍이 상경해 종이박스 제조회사를 차렸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제법 번듯한 회사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회사일로 인한 스트레스와 월남전 참전 후 얻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두통이 생겼다. 더 이상 무리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민 대표는 당시 근무하던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회사를 넘기고 강원도 평창으로 떠났다.

그 당시 민 대표의 나이는 50세.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만 하기에는 아직 힘이 넘쳤다. 그래서 주변의 밭 5289㎡를 빌려 농사일을 시작했다. 콩, 옥수수, 무, 당근 등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은 빚이었다. 젊은 시절 월남전에서 고엽제 피해를 입은 민 대표는 농사일에 일체의 화학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을 고용해 잡초를 제거하니 매년 800만원 정도의 손해가 생겼다.

민 대표는 “친환경농업이란 말 자체를 잘 모르던 시절,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손쉬운 제초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제초제를 쓰면 땅도 죽고, 농작물도 죽고, 그것을 먹는 사람도 죽는다는 생각에 제초기 개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가 제초기를 만들겠다고 알리자 가족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말렸다. 주위의 농가들은 그를 “미쳤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가 현실에서 제초기야말로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진 그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민 대표는 기계를 잘 아는 대학 친구와 자신의 건물에 세 들어 살던 선반공에게 조언을 구하며 기계 개발에 매달렸다. 1996년부터 3년간 당시 금액으로 1억5000여 만원을 쏟아부은 결과 1998년 드디어 자동제초기 개발에 성공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개발에 성공했다고 축하를 받지도 못했지만 그는 그 기계를 부여 안고 벅찬 감동을 느꼈다. 드디어 그가 원하던 친환경농업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예초기에 결합한 자동 제초기

▲ 민영준 대표가 자신의 텃밭에서 올해 개발에 성공한 주행식 자동제초기를 시운전하고 있다.
민 대표가 개발한 제초기는 농가에서는 한대쯤 가지고 있는 예초기에 결합해 사용하도록 고안됐다. 언뜻 보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계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감속기와 변속기어 등 민 대표가 책과 시름하며 3년간 연구한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동제초기는 예초기 엔진에 시동을 걸고 따라만 가면 자동으로 제초가 돼 여성이나 노약자 누구나 손쉽고 빠르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바퀴 모양의 작업 날이 흙과 잡초를 파고 지나가면 비산 흙은 무거워 먼저 떨어지고, 잡초는 나중에 떨어져 말라서 제거되는 원리다. 또 흙을 뒤집어 놓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잡초도 제거돼 호미로 김매는 것보다 효과가 오래 간다. 지나간 고랑으로 후진하면서 바퀴 자국과 발자국을 없애주면 더 오랫동안 잡초제거 효과를 볼 수 있다.

넓은 고랑에서 사용할 때도 지그재그로 움직여 작업할 수 있다. 북주기(식물이 넘어지지 않게 밑줄기를 흙으로 덮어 주는 일)를 할 때는 북주는 날로 교체해 흙을 파는 동시에 두둑 위로 흙이 올라가는데, 속도조절을 하면 작업자가 원하는 대로 북을 줄 수가 있다.

제초기는 일반 성인 10명 이상의 몫을 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며 고장도 거의 없다. 돈이 목적이 아닌 민 대표였기에 이런 기계를 고안할 수 있었다.

10년 적자 끝에 흑자경영 시작

▲ 자동제초기를 조립하고 있는 민영준 대표. 친환경농기계 개발․제조․판매 모두를 혼자 하고 있다.
민 대표는 자동제초기를 개발한 이듬해인 1999년 ‘창성농기계’라는 회사를 만들고 기계 보급에 나섰다. 회사를 시작하면서 돈보다는 친환경농업과 고생하는 농부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계 가격도 원가 수준으로 정했다.

하지만 기계가 알려지면 많이 팔릴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첫해에 팔린 것은 고작 30여대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친환경농업에 대한 개념도 부족했고, 제초제를 사용하면 더욱 손쉽게 잡초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민 대표는 “농약으로 키운 농작물과 인스턴트식품을 먹고 아토피에 걸린 아이들이 늘어나고, 농촌이 고령화돼 일손이 부족한 현실을 보면서 친환경농기계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돈보다는 신념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던 그에게 조그마한 희망이 찾아왔다. 근근이 버티던 어느 날 양평에서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다는 김종상씨가 찾아와 자동제초기 80대를 주문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민 대표는 2006년 양평으로 이사와 지금껏 회사를 꾸리고 있다.

양평으로 이사 온 뒤 회사의 매출도 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드디어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제초기 1300대, 콩수확기 500대를 팔며 매출액도 3억원을 넘겼다.

특허만 10개 “후계자 키우고파”

▲ 민대표가 개발한 농기계들. 왼쪽부터 자동제초기, 콩수확기, 논제초기, 예초기 안전날.
민 대표가 친환경농기계와 관련해 가지고 있는 특허만 10개다. 처음 자동제초기를 개발한 뒤 콩 및 옥수수 수확기, 논자동제초기, 예초기 안전날 및 롤러, 주행식자동제초기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기계들은 대부분 예초기와 결합해 사용할 수 있어 가격이 저렴하고 누구라도 손쉽게 사용 가능하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친환경농업의 필요성과 농가 일손절감을 고민하는 민 대표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동제초기는 일본에서 만든 제품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기계 판매가 늘면서 혼자 일하던 민 대표도 이제는 힘에 부친단다. 친환경농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도 많이 늘어날 추세라 이제는 후계자도 양성하고 번듯한 공장도 세우고 싶다고 한다. 민 대표는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이제 후계자도 키워 더 늦기 전에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다. 창성의 뜻을 이어갈 젊은이라면 누구라도 환영”이라고 말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삶의 철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민영준 대표. 그가 간직한 신념이 활짝 꽃피는 시기가 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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