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시인의 인생에 말을 걸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이나 내 머릿속에 각인된 날이 있을 것이다. 행복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심장을 떨리게 한 감동적인 날이라서.....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잊히지 않는 숱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문신처럼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날이 있는데 2018년 3월 17일이 그중에 하나다. 詩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사각지대에 계신 어르신들 가슴에 작은 씨앗을 심어 놓은 날이기 때문이다.

‘밝은 달 비추는 정자의 마을’인 단월(丹月). 평군의 동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단월면은 북쪽으로는 소리산(479m), 서쪽에 봉미산(855m)과 도일봉(864m), 남쪽에는 괘일산(468m)등이 있으며 전곡천과 산대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어 맑은 물과 공기, 그리고 빼어난 산세와 계곡이 유명하다. 특히,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는 깊은 산 계곡이나 비옥한 양지와 음지에 서식하는데 초봄에 채취하는 수액은 미네랄이 풍부한 천연 건강음료로 면역력 증진이나 뼈 건강에 효능이 있으며 노폐물 제거, 간, 위장 등에 효능이 좋다고 한다.

단월면은 봄의 시작과 함께 3월이 되면 고로쇠 축제를 연다. 면민은 물론, 양평군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며 축제를 여는데 외지분들도 고로쇠 물의 매력에 빠져 많이 참석한다.

2018년 ‘제19회 고로쇠 축제’의 날에 어르신들이 쓰신 詩 44점을 축제장에 처음으로 전시하였다. 드디어 심연의 바다, 저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어르신들의 마음을 이 세상에 수줍게 선을 보이는 날이었다. 시를 감상하는 분들의 반응과 시를 쓰신 어르신들의 심정이 어떨지 하루종일 얼마나 두근두근하던지 그날의 설렘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축제장에 무슨 시화전이지? 하고 다소 놀라는 분도 있고 연로하신 부모님이 생각난다며 감상문을 적어 놓고 눈시울을 적시는 분도 있고 詩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서 떠나지 못하는 분도 계셨다. 시를 쓰신 어르신들은 그 누군가가 나의 삶 한 자락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주고 웃어 준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은 듯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시를 쓰신 어르신들의 가족이나 지인들도 축제장에 들러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지만 솔직하고 꾸밈없는 소박한 언어와 진실한 마음에 진한 여운을 안고 미처 헤아리지 못한 마음을 詩를 통하여 다시 보게 되었다고 감동했다.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받고 나니 시에 대한 열정이 어르신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고 이 축제를 계기로 너도나도 메말랐던 가슴에 詩라는 작은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며 기억의 꽃잎들을 한 잎 한 잎씩 모으기 시작하였다.

독일의 언어 철학자 홈볼트는 ‘언어는 무엇을 이루어 내는 힘’이라고 했다. 시는 언어 예술인 것이다.

번개처럼 지나가는 기억이나 빛바랜 추억을,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던 것을 글이나 시로 표현하다 보면 나 자신의 그림자를 안아줄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말 그 이상의 전달력이 있다.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한 사람을 노릴 수 있는 총알과는 달리 펜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함축된 언어로 표현되는 시는 자신의 느낌을 믿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성실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써야 한다. 성실성과 진실성이 담긴 글은 지식과 기교를 뛰어넘어 더 큰 감동을 준다. 시인이 울지 않으면 독자도 울지 않는다. 새로 돋아나는 세월의 향기로 느껴지는 진실을 구체적으로 써 내려가야 된다. 세부 사항을 써야 한다고 해서 꼭 실제로 있었던 내용만을 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 이상을 뛰어넘은 상상력으로 쓴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면 더 생생한 느낌의 파도가 감동의 물결로 다가올 것이다.

※ 단월면 산음보건진료소 소장으로 근무 중인 김영 시인이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의 시 이야기를 연재한다. 김 영 시인은 2014년 등단해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 국문과(현대문학 시전공)를 석사졸업했다.산음·석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시를 가르쳐서 어르신들 시집을 출판해 오지 마을을 ‘시인이 사는 마을’로 특화시켰다. 경의중앙선 양평역과 용문역에서 해마다 어르신들 시화전을 개최하고 있다.

3월의 詩 한 편… ‘고로쇠 축제의 날’

3월에 소개할 시는 2022년 ‘제23회 고로쇠 축제’가 ‘드라이브스루’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온라인 판매로 바뀜에 따라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 대면 축제를 하던 시간을 추억하고자 고로쇠 축제장에서의 즐거움을 시로 표현한 故정향순(1935년생) 할머님의 시를 소개하려고 한다.

아드님(김연호 님)과 며느리님(김미숙 님) 세 분 모두가 시를 쓴, 등불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가족이다.

2018년 고로쇠 축제장에서 ‘어르신 건강댄스’를 선보이며 아낌없는 끼를 보여 주셨고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분이다. 달을 품은 듯 조용한 성격이지만 내면엔 한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것을 그날에서야 알았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들까지 모두 와서 사진과 비디오를 찍고 온 동네 분들과 함께 즐거운 축제장이 되었으니 인생 최고의 날이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 본 적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에 없는 어르신의 시를 읽는 사람도 축제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들면서 함께 춤을 추고 싶어진다.

시를 왜 쓰는가? 왜 써야만 하는가?

나를 살찌게 하고 아름답고 멋진 삶,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내가 행복하면 전염병처럼 시를 읽는 독자도 행복하다. 그러면 된 것이다, 이 이상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루하루를 축제처럼 살고 싶은가.

시를 쓰자! 순간순간은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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