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산(彌智山)이라 했던 명산 용문산(1,157m) 앞 용문면은 숙종14년(1688년) 지평현(군) 상서면(上西面)이었는데 1914년 상서면과 하서면을 합해 용문면이 됐다. 화전리, 삼성리, 다문리, 연수리, 마룡리, 금곡리, 광탄리, 망릉리, 중원리, 조현리, 덕촌리, 오촌리, 신점리가 용문면에 속하며 다문리가 면소재지이다.

옛 지평은 하북면, 상북면, 상동면, 하동면, 군내면, 남면, 상서면, 하서면으로 관장했는데 지금의 지평면, 용문면, 청운면, 양동면, 단월면이다. 옛날에는 양근보다 지평이 더 크고 번성했다.

미지(彌智)는 우리말 ‘미르’ 즉, ‘용(龍)’이며 용문사 사찰명을 인용해 용문산, 용문면이라 한듯하다. 옛 선진들이 유람하고 감탄해 남긴 시(詩)가 부지기수인 이곳은 큰 호텔 격인 객사 ‘지덕원(支德院)’과 큰 주막거리가 있던 곳이라 옛 지명은 지덕(支德)이라 불렀다.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전국에서 모여 친교 나누던 유명한 곳으로, 문인들이 많이 모여 ‘다문리(多文里)’라 했다는 구술도 있지만 고구려 다물계(多勿系) 지명이다.

동부여에서 탈출해 졸본부여에서 고구려(BC37~AD668)를 창건한 주몽이 이혼녀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혼인 후 동부여에서 따라온 조강지처 예씨 부인을 정비로 맞고 아들 유리를 태자로 삼자 소서노 왕비는 노해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기마민족인 추종 세력을 규합해 함께 남하해 미추홀과 위례성으로 도읍을 정하고 비류백제(BC18~AD396)와 온조십제(BC18~660)를 창건했다. 이후 통합 백제(BC18~AD660) 즉, ‘백가제해(百家濟海)’라는 이념의 해상강국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시점까지 번성했다.

고구려 건국이념은 ‘다물(多勿)’이며,  “옛땅을 회복한다”는 뜻으로 창건 후 첫 번째로 ‘다물도(多勿都)’를 복속하며 건국이념으로 했다. 그 민족 지배 지명이 다문리, 다대리, 다수리, 다미면, 대문리, 대두리, 대수리, 대룡리, 대마리, 대미산 등이다. 탐라(耽羅) 일본에 대마도(對馬島), 일본의 신 오모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 등도 같은 맥락의 다물계(多勿系), 담로계(擔魯系) 지명이며, 그 기마민족이 바다를 건너가 미개한 왜족의 왕이 됐다.

용문면은 양평읍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 2만 ‘용문읍’이 될 전망이니 날마다 번성할 것이다.

 

* 강하면 전수3리 출생인 신왕수 이학박사가 양평의 마을 이름 유래를 격주로 연재한다. 종합 건강기능식품 전문기업 케이지 랩(주), 발효 전문기업 엑센도 바이오팜(주) 회장인 신 박사는 양평군 기업인협의회장을 역임했고, 제41회 무역의날 153만불 달성 백만불 수출탑(대통령 노무현)과 제51회 무역의날 800만불 달성 500만불 수출탑(대통령 박근혜)을 수상했다. 현재는 양평문화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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