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시인의 ‘인생에 말을 걸다’

석산2리 시강의 및 발표시간)2019년
석산2리 시강의 및 발표시간)2019년

‘시인이 사는 마을’이라는 간판이 우뚝 서 있는 하늘 아래 첫 동네~

떠도는 구름도 잠시 쉬어가고 싶은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청정지역, 양평군 단월면에 구불구불한 고개 넘어 강원도 홍천과 인접한 오지마을이 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산이 병풍처럼 서 있는 그곳에는, 평생 농사일에 검게 타고 주름진 얼굴이지만 소박하고 해맑은 미소 가득 담고 시를 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고 계신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힘들게 살아오면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6.25를 겪으며 수많은 고통을 가슴에 담고 살아오신 분, 한글을 제대로 못 깨우친 분, 이웃사촌과 결혼해 함께 살고 계신 분 등 다양한 사연들 속에서 그저, 살아지니까 살아온 그런 나날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를 알고부터는, 척박한 산음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셨던 분들이나 퇴직 후 전원생활을 하러 오신 분, 외지에서 오신 펜션 주인 등 다양한 주민분들이 함께 어우러져 ‘詩’라는 공통분모로 마음 한 자락 나뉘어 가지게 되었다.

시를 직접 써보며, 무심했던 ‘내 인생에 말을 걸어 보며’ 함께 울고 웃으며 동시대를 살아간다. 시를 쓰다 보니 나만 겪어온 고단함이 아니라 너도나도 함께 겪어온 힘들고 고된 삶이었음을 알게 되었기에 서로가 애틋했으리라. 멍이 들면서 걸어온 나의 길 끝자락에서 되돌아보면 가슴에 뿌리내린 아픔과 상처를 잘 견디어온 자신을 이제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물론, 처음부터 시를 쓴 것은 아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지나 굽은 등 펴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평생 써본 적 없는 詩를 엉겁결에 쓰다 보니 어느덧 어르신들이 시집도 출판하였고 산음·석산리 산골 마을이 ‘시인이 사는 마을’로 당당하게 정식 간판을 달게 됐다. 바다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처럼 그분들에겐 큰 기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처음에 내가 시를 써 보자고 권유했을 때는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데 내가 무슨 시를 써요?” 하며 십 리 밖으로 도망 다니며 나랑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던 분들이었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는 가슴속에 있는 소녀를 캐 주는 것’이라고 했다. 바닷가 모래밭에 성을 쌓는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경로당에 모여 쓴 시를 서로 발표하고 구술로도 받아 적다 보니 어느덧 가슴속 소녀는 수줍게 걸어 나와 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소녀로 인해 외진 마을의 겨울은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했다. 물론, 코로나19로 거리 두기 이전 2019년 겨울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경로당에 모일 수가 없으니 개인이 쓴 시나 메모를 진료소로 갖고 오셔서 몇 번이고 수정하는 작업, 즉 퇴고하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자연을 노래하며 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이 무색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시라는 것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쓰고, 나를 포함한 주위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서로의 삶을 환기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문학인 셈이다. 지금 당장 펜을 들어 메모라도 남기는 것이 시의 첫걸음일 수도 있으리라.

※ 단월면 산음보건진료소 소장으로 근무 중인 김영 시인이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의 시 이야기를 연재한다. 김 영 시인은 2014년 등단해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 국문과(현대문학 시전공)를 석사졸업했다.산음·석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시를 가르쳐서 어르신들 시집을 출판해 오지 마을을 ‘시인이 사는 마을’로 특화시켰다. 경의중앙선 양평역과 용문역에서 해마다 어르신들 시화전을 개최하고 있다.

1월의 詩 한 편… ‘매니큐어’

어느 날 아들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눈이 멀어져 앞을 못 보게 된다. 딸도 이 세상 떠난 지 오래전이다. 어머니의 대지는 무너져 버린다. 밥을 먹어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가을 추수를 끝내도 그 결실에 흥미가 없다. 숨만 겨우 쉴 뿐이지 도무지 삶의 의미가 없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본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우울에 빠진 삶에 한줄기 위로가 된다. 하루하루 다른 색을 발라보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우울감이 조금은 사라진다. 그러나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남의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놀란다.

“어머나! 매니큐어도 바르시고 할머니는 정말 멋쟁이세요.”

우리 모두를 울린 ‘매니큐어’ 시는 그렇게 태어났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가슴에 자식을 묻어본 부모는 먼저 떠난 자식을 향한 그리움이 어떤 건지 알 것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아들에게 내 눈이라도 떼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닌가.

할머님과 며칠간 연락이 안 돼서 이장님께서 집을 방문해 보니 2021년 12월 어느 날 마당에 쓰러진 채 동사하셨다고 한다. 할머님의 명복을 빌며 이 시를 소개한다. 비록, 할머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매니큐어’란 시는 우리들 가슴속에 오래오래 애틋하게 남아서 열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억하며 가슴 아파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시의 끌림이고 시의 힘인 것이다. 육신은 사라져도 그 사람의 정신은 한편의 詩로 남아서 우리 곁에 항상 머물고 있다.

김 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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