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치학교에 집중… 퇴임 정치인들과 국가 리빌딩 모색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가 끝날 무렵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은 “많은 회한과 반성만 남는다. 공멸하지 않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마지막 발언으로 20년간의 여의도 생활을 정리했다.

새로운 21대 국회가 들어서는 지금, 국회에서 강산의 변화를 두 번이나 겪은 정 의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본지는 지난 27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정 의원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정 의원이 생각하는 양평의 미래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병국의원이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병국의원이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년간 생활한 여의도를 떠난다. 그간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고 시대는 늘 변화하고 바뀌었다.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 매듭을 짓고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감이 있다.

20년을 마무리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국회의사당에 들어왔을 때다. 당선 후 의사당 본청 ‘의원 전용문’으로 다니는 게 권위적으로 보여 한 달 동안 보좌진이 다니는 옆문으로 다녔다. 김영삼 전 대통령 보좌진 시절 옆문으로 드나들다가 정작 내가 당선돼 그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어색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수한 의장과 식사를 하다 ‘국회의 권위 개선’ 얘기를 했다. 그때 김 의장께 ‘국회의원에게 배지를 달아주고 중앙 문으로 다니게 하는 것은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닌 국민의 대표라는 것을 늘 인식하고 할 일이 무엇인지 각성하라는 의미’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주민들께서 왜 나를 대표로 선택해서 이곳으로 보냈는가’를 문을 지날 때마다 늘 생각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고 나서야 국회 중앙 문으로 들어갔다. 의정활동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 처음 그때가 생각난다.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공천과 ‘총선패배’에 대한 평가는

‘공천이 잘못돼서’, ‘코로나19 정국이기 때문에’라는 등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이후 근본적으로 ‘보수정당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왜 탄핵을 당했는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탄핵 후에도 탄핵에 대한 평가와 진단, 반성도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 보수정당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은 박 전 대통령만의 잘못이 아닌 우리 공동의 책임이다.

그때 야당도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그 지경까지 온 거다. 허나 더 많은 책임은 당시 여당인 우리에게 있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반성하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주창했지만 당 지도부였던 친박(친박근혜)세력들이 그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새 정당을 만들어 ‘개혁보수’를 주창했던 것인데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했고 다시 통합했던 것이다.

통합 당시 중도세력, 젊은 사람들, 시민 세력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통합된 이후 자유한국당의 지도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깔고 뭉개어 통합 연장 선상에서의 의미와 효과를 전혀 가져오지 못했다. 공천심사위원회에서도 제대로 결말을 맺지 못했다. 이런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보수진영에서 급격하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정치를 했고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응을 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패인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21대 총선) 처음부터 불출마를 계획한 것은 아니다. 통합을 주도했고 중도세력을 끌어왔고 청년 세력을 끌어왔는데 그 사람들을 먼저 챙기다 보니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물갈이됐다. ‘자칫 잘못하면 통합의 의미가 옅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희생양이 돼 불출마했다. 계획적인 불출마가 아니다 보니 지금 당장의 계획은 없다. 다만, 국회에 있지 않을 뿐이지 정치인으로서 해왔던 일들, 국회의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지속해서 할 것이다.

정치개혁을 위한 청년 정치생태계 구축을 위해 청년정치학교를 더욱 더 확장할 생각이다. 청년뿐 아니라 시민이 정치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잘못되다 보니 시민이 정치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시민을 위한 정치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을 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또,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국회의원이나 장․차관들이 한번 그만두면 그것으로 끝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나만 하더라도 지난 20년 동안 국가의 세금으로 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축적된 많은 경험, 노하우는 내 것이 아닌 국가의 자산이다. 그것을 국가에 환원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전직 장․차관들이나 국회의원들과 네트워킹해 그들의 경험, 노하우를 정리하고 국가 리빌딩에 다시 활용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선거나 총선 재출마 계획이 있나

지금 출마를 한다, 안 한다 답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을 했던 것이 아니라 일을 하다 그 자리가 필요하다 생각되면 그 자리를 선택했다. 도지사가 되겠다, 지방선거에 나가겠다,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것을 여기서 얘기할 수 없다. 말했듯이 자리가 필요하면 필요한 자리를 선택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예단할 수 없다.

▲‘남원정’이라 불리며 한국의 계파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했다. 한국의 정치개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원정: 보수정당 내 개혁, 쇄신파인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사, 정병국 국회의원을 일컫는 단어)

기본적으로 정치를 되살리는 것이 정치개혁이다. 지난 20년간 정치를 하며 초선 때부터 정치를 바꿔 보려고 ‘원조소장파’, ‘개혁의 아이콘’, ‘남원정’이라는 지칭을 받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소리를 들을 때 자부심을 느꼈는데 요즘엔 그 말이 창피하다. 나름대로 개혁한다고 했는데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과거보다 지금 20대 국회 정치가 더 나빠졌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바꾸지 못한 것이다.

정치개혁이 왜 안 됐나를 되돌아보면 결국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아서다. 자기주장을 내세우다 보면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가 주장하는 것은 틀렸다고 규정한다. 틀린 것은 없다. 다를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면 대화가 시작되고 ‘다름’을 좁히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자기주장만 하다 보니 싸움, 갈등이 일어나고 정치는 실종된다. 정치가 없으면 정치개혁도 없다. 그래서 정치인을 훈련하는 과정인 청년정치학교를 주창했다.

또, 정치가 악화된 가장 큰 요인은 패거리다. 사람들이 모여 공공의 이익과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 정파 진영의 이익을 위해 일하다 보니 국민들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되돌아보니 거리에 나갔던 것, 국회를 점거하고 농성했던 것, 피켓을 들었던 게 민생의 문제 때문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결국은 진영논리와 이익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런 부분을 바꾸는 것이 정치개혁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블록체인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중앙집권화된 것을 분산시켜야 한다. 당론을 정하고 당 대표를 선출하고 지역구에 선출직 후보를 선출할 때도 당원들이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당 대표를 위한 당이 아니라 당원들을 위한 당이 되는 것이다. 국회는 원내 교섭단체 중심이 될 것이다. 당원들에게 권한을 되돌려줘야 한다.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된 양평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정 의원이 생각하는 양평의 미래상은

이것이 양평만의 문제는 아니다. 양평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양호하다. 처음 국회의원을 시작할 2000년도의 양평 인구는 8만명, 1년 예산은 1600억원대였다. 지금 양평 인구는 12만명에 육박하고 예산은 7000억원대다. 그런데 ‘20년 지났으니 당연히 늘어난 것 아니냐’ 라는 말이 있다. 하남시와 비교해보라. 예산이 6000억원이 안 된다. 양평의 재정자립도는 20%로 경기도 지자체 중 최하위인데, 그 말은 나머지는 중앙 정부에서 가져온다는 뜻이다.

양평을 떠나는 곳에서 돌아오는 곳으로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규제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도 각종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규제를 풀겠다’고 공약을 내건다. 그런데 안 된다. 할 수 없는 거짓말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규제는 대통령도 못 푼다. 우리는 아직 그 인식을 못 하고 있다.

양평을 묶는 규제는 군사보호구역, 수도권정비계획법, 상수원보호구역 이렇게 3개가 있다.

내가 국무위원을 지내기 이전엔 군사시설 외곽 500m 이내로 보호구역이 지정돼 있었다. 그것의 대부분을 부대 울타리 안으로 바꿨다. 다만 지평 탄약고처럼 특수한 곳은 1㎞를 500m로 완화시켰다.

수도권규제는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문제가 있어 바꾸기 어렵다. 비수도권이 반대한다. 양평과 이해관계가 맞는 곳은 7개 시․군밖에 없다. 양평․여주, 가평, 광주, 이천, 용인 일부, 남양주 일부. 국회의원 7명으로는 법안도 제대로 제출할 수 없다. 비수도권 사람들은 수도권정비계획법을 풀면 자기들에게 올 것이 안 온다고 반대하는 것이다. 여․야의 개념이 아니다.

상수원 보호지역 규제를 풀면 수도권 사람들이 더러운 물을 먹는다고 반대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법이 통과될 수 없다.

사람들이 ‘정병국 5선 하면서 뭘 했나’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20년 전 양평과 비교해보라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그걸 네가 했나’라고 말한다(웃음). 이전에 전철이 있었나. 고속도로가 지나갔나. 집행을 군수가 하니까 군수가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군수가 할 일이 아니다. 군수는 예산을 가져다주면 집행한다. 내가 근본적인 법은 못 바꿨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상당 부분 개정했다.

규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용해야 한다. 내 학창 시절처럼 교육 때문에 양평을 떠나지 않게 ‘좋은 학교 만들기’와 ‘좋은 문화환경 만들기’를 중점적으로 했다. 그 결과 전국 군 단위 중 문화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 됐다. 그렇게 되니 사람들이 찾아오고 인구가 늘었다.

인구 소멸은 양평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디에 관점을 두어야 하는 지 보인다. 인구증가 요인을 보고 강화해야 한다. 인구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이유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안 낳기 때문이다.

또, 20사단이 나간 빈 군부대 시설을 활용해야 한다. 리모델링 후 벤처 타운화하면 양평 청년들이 되돌아오고 타 지역 청년들이 유입될 것이다. 주거지도 지어주고 공유오피스를 만들어 1년 단위로 아이템 공모를 받아 심사를 거쳐 지원해주고. 이런 것들은 규제를 받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발전시키면 아이들 교육 때문에 유입됐던 학부모들이 양평 내 새 직장을 가지게 되면 나갈 이유가 없어진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문화 체육 시설이 다른 지자체보다 좋은 것을 활용해 젊은 사람들을 유입시켜야 한다. 벤처사업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줘야 한다. 관․공무원 중심이 아닌 당사자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

▲김선교 당선인에게 조언한다면

김선교 당선인은 군수도 3선 했고 직접 현장에서 일해봤기에 지역을 위해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잘할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지역 의원이 아니다. 양평․여주를 대표하는 의원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지역의 일을 하는 역할은 30%로 본다. 더 줄여도 된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일이다. 시야를 더 넓혀야 한다. 중앙무대에서 자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국회의원은 자칫 잘못하면 당 지도부가 가는 대로 따라갈 수도 있는데,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이 보장한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을 이유가 없다. 어느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고 어느 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길인지 원칙 있게 소신 있게 정치했으면 좋겠다.

▲양평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20년 동안 소신 있게 원칙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지역 유권자가 있어서였다. 여러분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당 지도부와 대통령에게도 바른 소리 할 수 있었고,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내가 공천에 연연하거나 그것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지역 지지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께서 저를 신뢰해 주셨고 선거 때마다 최고 득표율로 당선 시켜주셔서 그 ‘백’을 믿고 행동할 수 있었다. 무한한 사랑을 주셨던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비록 국회의원 자리를 떠나지만 제가 한 정치, 얻은 노하우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데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평군민들께서 주셨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같은 군민의 입장에서 선배, 친구, 후배들과 편하게 소주 한잔하고 싶다.

<국회의원 정병국>

▲1958년 양평군 개군면 출생 ▲성균관대 사회학과 ▲제13대 김영삼 통일민주당 대통령 후보 홍보담당 전문위원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 ▲김영삼 정부 청와대 제2부속실장 ▲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 본부장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19대 국회의원 ▲20대 국회의원, 바른정당 대표 ▲청년정치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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