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의 이럴땐 이런 책

Q.설 때 친정에 갔다가 남편이랑 한바탕 했습니다. 가족들이 볼까 봐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마음 속 이야기를 해버렸네요. 남편은 말도 못 잇고 한참을 씩씩대더니 친정으로 안돌아오고 혼자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엄마를 어떻게 봐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너무 힘든 하루였습니다. '이 인간이 끝을 보려고 이러나?’ 이런 생각도 들고 밤늦은 시간에 잠 못 자고 메일 보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세상에서 가장 큰 싸움을 하셨네요. 가족과 싸우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후유증도 크고 상처 회복도 어렵습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말을 얹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마음을 좀 풀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이 묶여 있으면 아마 상당 기간 말도 없이 지내실 것 같아 추천 드립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글이 아니라 말로 된 책입니다. 지금도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라는 것으로 검색하면 가수 요조와 작가 임경선의 목소리로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부제는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입니다. 목소리 연재가 끝나고 추가로 원고를 써서 책으로 나왔습니다. 책의 맛과 듣는 맛은 조금 다릅니다. 오늘은 책에 나온 문장 몇 개를 소개합니다.

작가 임경선은 가수 요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머리‘를 전혀 쓰지 않아. 이게 선을 넘는 것인지,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지, 상대를 서운하게 하는 일인지, 주제 넘는 오지랖인지 미리 이리저리 고민을 안 해. 바꿔 말하면 만약 내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나도 모르게 한번 멈칫하고 이 말을 해도 될까 말까 신중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이미 불편한 관계이자 어느 정도 공적인 인간관계라고 해야겠지. 상대의 반응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가까운 인간관계라고 해서 사려 깊음이 없는 것은 아니야.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상대와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아. 그냥 자연스럽게 노는 것 같지만, 실은 스텝이 엉키지 않도록 볼 거 다 봐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거야.”

머리 쓰지 말고 춤을 추듯이 대화를 하라는 말입니다. 정확히 막춤 같습니다. 만약 박자와 리듬이 있는 탱고 같은 춤을 배우라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막춤은 옆에 춤추는 사람을 손으로 치기도 하고 옆 사람의 공간을 뺏기도 합니다. 부부간의 대화가 이런 식이면 좀 그렇겠죠?

아마 두 분은 말다툼을 하며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을 것 같습니다. 요구와 요구가 부닥치는 순간 두 분 다에게 화가 쌓였을 것 같습니다. 분노의 감정은 이성을 잃게 만들고 결국엔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게 만듭니다. 무의식에 맡기고 춤을 추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옆에서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은 까먹으면 안 됩니다. 사실 결혼한 쪽은 임경선 작가지만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 것은 요조였던 것 같습니다.

“사랑으로 엮인 관계 안에 계란처럼 비밀이 있다면 다들 조심했으면 좋겠어요. 뭐가 들었는지 일일이 바닥에 깨뜨리면서 이게 사랑이야! 라고 외치는 바보짓은 제발 좀 멈추고요.” 춤추듯 대화하지만 그래도 서로가 감추고 싶은 일들을 끄집어내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약간 울컥했습니다. 서로의 약점과 속내를 다 드러내서 일일이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혹은 그 순간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우리는 어쩌면 ‘솔직함’을 오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에게 집중하는 한 해라면 싸움은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좋은 수단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 있을 때 속 시원한 언니들의 이야기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거나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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