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구목사 (용문교회 담임)

1. ‘방석‘에 예수님의 얼굴이 있다.

어렸을 때 다녔던 고향 교회는 예배당 마룻바닥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예배시작 1시간 전에 가서 방석을 깐다. 가지런히 줄을 맞춘다. 방석에 교인들을 기다리는 예수님의 얼굴이 보였다. 방석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다. 내가 방석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방석 위의 예수님, 아파하신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 하신다. 고등학교 2학년 성탄 전야 때, 교회에서 성탄전야 축하 발표회를 했다. 중고등부에서 연극을 했다. 내가 감독, 연출, 극본, 무대장식까지 다 했다. 20분 연극이다. 발표회가 끝나고 교인들이 다 빠져 나갔다. 무대를 치우면서 참 허탈했다. ‘내가 20분 연극을 위해 이렇게 애쓰다니....‘ 무대를 치우다 말고 난로 가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교회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언구는 목회하면 잘 할 것 같아.” 며칠 후 세례를 받았다. 1월에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큰 은혜를 체험했다. 방석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목사가 되기로 결단했다. 방석 위의 예수님은 나를 사명자로 세우셨다.

방석에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얼굴이 있다. 방석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면 방석 위의 예수님, 가슴 아파 눈물 흘리며 탄식하며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 방석 위의 예수님, 나를 사명자로 세우신다. 방석에 예수님의 얼굴이 있다.

2. ‘욕‘은 먹어야 하고 ‘복‘은 먹여야 한다.

성탄절,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내가 치러야 할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죄인인 내가 먹어야 할 욕, 예수님이 다 먹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 최고의 복을 주셨다. 너도 그 값을 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욕은 먹어야 하고, 복은 먹여야 한다.

방석은 늘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산다. 평생을 눌려 산다. 발로 밟히는 것은 기본이요, 바닥을 기며 사는 데도 허리 한 번 펴지 않는다.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방석은 한 사람 받쳐 주는 사명 하나로 산다.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는다‘는 말이 있다. 방석이 평생을 마룻바닥 앉은뱅이로 충성했더니, 요즘은 소파의 쿠션으로, 조금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한 사람 받쳐주는 사명 하나로 살았더니 귀한 손님 오실 때에만 내놓겠다고 장롱에 곱게 모셔졌다. 방석에 예수님의 얼굴이 있다. 방석의 예수님, 말씀하신다. “욕은 네가 먹고, 복은 남에게 먹여라“ 그러면 그 사람, 하나님께서 높이신다. 욕은 먹어야 하고 복은 먹여야 한다.

3. ‘도무지‘를 ‘도리어‘로 바꾸어라.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몰려든 군중들이 예수님을 욕했다. 자기들 죄 때문에 죽는 예수님을 조롱하며 욕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늘의 천군을 동원하여 그들을 다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복을 빌었다. 당신을 욕하는 군중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 용서해 주옵소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을 도리어 축복하셨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도리어 축복하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도리어 감사로 받아들여라. 그럴 때 ‘욕은 내가 먹고, 복은 너에게 먹이고‘ 이런 삶을 살 수 있다.

4. 너 참 예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라는 시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욕은 먹어야 하고 복은 먹여야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도리어 축복하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도리어 감사하라. 그런 나를 하나님이 자세히 지켜보고 계시다가 말씀하신다. “너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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