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여름입니다. 곧 휴가를 갑니다. 멀리는 못가고 근처로 가서 좀 쉬다오려고 하는데요. 들고 갈만한 책 있을까요? 소설이 나을지, 아니면 딴 게 나을지 궁금해서.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A. 책을 들고 휴가를 간다는 것은 여유를 챙겨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휴가용 책을 고르실 때는 짧은 글 여러 편을 모아 놓은 것이 좋습니다. 단편 소설집이나 산문집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소설가가 쓴 산문집은 어떨까요?

오늘 소개하는 책은 소설가 김애란이 쓴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입니다. 이 책은 김애란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작가의 기억에 남은 어린 시절의 공간은 집이 아니라 ‘맛나당’입니다. 그곳은 어머니의 손칼국숫집이며 그녀가 8년을 살던 집입니다. 고생한 어머니에 대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어머니가 누리지 못했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김애란 작가는 제 예측과는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방문판매원이 가져온 아름다운 화장품 병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고 남대문시장에서 팔던 수입품, ‘비전 냄비’나 ‘코끼리 보온도시락’을 비롯해 특이한 그릇과 카펫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딸들 방에 피아노까지 놔주셨다”고 말합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이미지와는 많이 다릅니다. 작가는 그 기억을 이렇게 풀어놓습니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어머니는 밥장사를 하면서도 인간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기꺼이 아무 의심 없이 딸들에게 책을 사줬다. 동시에 자기 옷도 사고 분도 발랐다.”

이 때의 기억으로 작가는 <칼자국>과 <도도한 생활>같은 단편 소설을 썼습니다. 작가의 어머니가 남겨준 것 때문에 작품만이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만나당’은 내 어머니가 경제 주체이자 삶의 주인으로, 자의식을 갖고 꾸린 적극적인 공간이었다. 어머니는 가방끈이 짧았지만 상대에게 의무와 예의를 다하다 누군가 자기 삶을 함부로 오려 가려 할 때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았고, 내가 가진 여성성에 대한 긍정적 상이랄까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이 글을 읽고 저도 어머니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떠올려 보았습니다. 제 어머니도 가방끈이 짧습니다. 그렇지만 별명은 교수님입니다. 고스톱을 너무 잘 쳐서 붙은 별명입니다. 이쯤 되면 웃는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저는 장기 두는 법을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점수가 있거나 승패가 있는 경기에서 어머니는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녀의 패기는 경기장에만 있지 않습니다. 동네 최고 민원인이 되어 면사무소를 들었다 놨다 합니다. 경기에도 강하고 관을 무서워하지 않는 ‘패기’, 이런 저런 기억을 떠올리다보면 어머니는 출마를 하셨어야 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솔직한 자기 고백이 들어간 에세이는 이렇게 자신을 대입해서 읽어보면 더 큰 재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성 안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쉽게 몇 마디 말로 어머니를 규정할 수 없습니다. 스타일이 있고 엉뚱하고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멋진 여성 중 한 명일 것입니다.

작가 김애란은 책 속의 「여름의 속셈」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저 또한 김애란의 책에서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봤습니다. ‘자신의 삶도 얇은 포스트잇의 찰나가 쌓여 두께와 무게가 되었다는’ 김애란의 고백은 산과 바다가 주는 바람의 그림자 밑에 잠든 우리의 마음 아닐까요? 여러분의 여름휴가도 포스트잇처럼 가볍기 바랍니다. 그렇게 쌓여서 우리에게도 두께와 무게가 생기겠지요. 오늘 소개하는 책은 김애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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