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특집- 최대현 양평 독립운동가
아들 최윤식도 만세외치다 순국해

올해는 8‧15 광복 73주년이다. 본지는 지난해부터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양평의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업적과 숭고한 뜻을 기리자는 의미로 특집기사를 마련했다. 지난해 변준호 선생에 이어 올해는 최대현 선생을 소개한다.
양평의 3.1운동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최 선생이자만 그와 관련된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경기도와 양평광복회가 현재는 흔적도 없는 그의 생가터 인근에 표지판을 설치키로 했다는 점이다.

양평문화원이 지난 2014년 발간한 <양평3․1운동사>에 소개된 내용을 정리했다.

1945년 8월16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독립투사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대한제국 오위장 출신 독립운동가

최대현 선생은 1852년 1월14일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408번지에서 출생했다.

대한제국군 오위장(입직과 행순-도성 내외를 순찰하는 일 및 시위 등의 임무를 주로 수행한 오위의 으뜸 벼슬)을 지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부하 700여명을 거느리고 경기도내 각처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다 1919년 전국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해 3월31일 강하면사무소 앞에서 면민 300여명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다음 날인 4월1일 양서면 도곡리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 부근에서 집합한 2000여명과 함께 다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그의 아들 최윤식이 일제 경찰의 총격을 받아 순국했다.

아들의 죽음에도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4월3일에는 강상․강하․양서․고읍 등 4개 면 주민 약 4000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할 때 태극기를 휘날리며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했다. 이후 시위 군중을 인솔하고 옥천면 옹암리와 용암리 사이의 언덕까지 행진하는 등의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됐다. 당시 그의 나이가 68세 노령이었음에도 4개 면을 넘나들며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것이 놀랍다.

11월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및 벌금 20원을 받고 이에 불복 공소해 11월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 및 벌금 20원으로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최 선생의 출옥 후부터 1931년 11월6일 사망까지의 기록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외손자들이 아직 양평군에 생존해 있지만 그와 관련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아들 최윤식 만세 부르다 순국

최대현 선생의 아들인 최윤식은 3․1만세시위가 일어나기 전인 그해 2월 부친을 도와 광무황제 승하 애도 기부금 모집 취지문을 인쇄, 배포하는 활동에 동참했다.

만세 운동이 본격화된 4월1일 아버지와 함께 양서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일제 경찰이 쏜 총격을 받고 순국했다.

부자가 함께 광무황제 서거에 대한 애도 분위기를 활용해 만세운동을 고조시키려 했던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