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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건축물’, 마을공동체 공간으로 되살려야주민이 제안하는 정책마켓① 김양현 서종면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

마을마다 소중한 보물들이 있다. 널리 알려진 유물, 유적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 터전으로 사용되고 공통의 기억이 어린 곳들 역시 소중히 간직하고 보전해야 하는 보물이다. 예를 들면 마을의 교회, 정미소, 양조장, 공동우물, 이발관, 공동창고 등이다. 어느 마을에나 있었고, 누구나 드나들었고, 그에 얽힌 기억들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곳들이다. 이런 곳들을 통틀어 ‘역사적 건축물’이라 부른다. 지역의 특성과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유물이나 유적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해야 의미가 있다면, 역사적 건축물은 보존보다는 과거의 의미를 살린 채, 예전의 그들이 그랬듯이 현재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전하는 데 의미가 있다.

마을의 역사적 건축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어떻게 보전해야 할까. 내가 살고 있는 서종면을 예를 들어본다.

문호정미소 전경. 문호리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다

문호정미소… 서종면 중심지 문호리에는 문호정미소가 있다. 옛날식으로 부르자면 일명 무내미 장터거리가 시작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느 정미소가 그렇듯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덧댄 자국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시기에 따른 건축 재료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정미소가 생기자 각 마을별로 디딜방아와 연자방아를 이용해 낟알의 겉껍질을 벗겨오던 사람들은 농사지은 곡식을 달구지, 경운기 등에 싣고 정미소로 모였다. 가을이면 정미소는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고 털털거리며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날이 저물녘이면 하얀 쌀을 담은 가마니와 부산물인 왕겨, 미강 등을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 최근 2,3년 전까지만 해도 육중한 몸집을 움직였던 정미기가 이제는 어두운 정미소 안에서 차갑게 앉아 있다. 부속이 없고, 수요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돌성전… 북한강을 따라 흐르는 391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봉긋이 올라 서 있는 자그마한 교회가 보인다. 담쟁이덩굴 사이로 강돌이 언뜻언뜻 보이는 문호교회 한돌성전이다. 문호교회는 1905년 어느 날 한 가정집에 모여 창립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6칸짜리, 1931년에 16칸짜리 예배당을 지었으나 6.25전쟁으로 모두 타버렸고 1954년에 짓기 시작해 1957년에 준공한 것으로 보이는 한돌성전이 현재 남아 있다. 1957년 당시 재직했던 정구봉 목사가 작성한 <문호교회건축보고서>에 따르면 남녀노소 모두가 산을 깎아내고 돌과 모래, 자갈을 나르는 데 동참했고, 돈이 모자라 공사가 중단될 때면 지나다니던 이들 모두 근심을 했다. 60여 년 전 쌓은 돌계단을 딛고 올라가면 여전히 옛 사진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고 당시 모습을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으며 소박했던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

서종가든… 지금은 손수 만든 두부를 넣어 끓이는 두부전골로 유명한 식당이지만 원래 이 건물은 양조장이었다. 몇 차례의 리모델링으로 과거 그대로의 모습은 많이 사라져 있지만 그래도 기본 골조만은 유지하고 있어 옛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주인장 설명에 따르면 현재 주방이 막걸리를 담던 곳이었고, 방이 들어앉아 있는 곳 지하가 막걸리를 저장하는 저장고였다. 안전을 위해 유리로 덮고 화분을 올려놓았지만 당시 물을 길어 올리던 우물도 여전히 마당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집은 많은 부분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의 양조장은 여전히 생생하다. 어릴 적 막걸리 심부름을 하다가 홀짝홀짝 마셔서 축내고는 양조장 바로 앞을 흐르던 도랑물을 담아갔던 이야기며, 누군가는 아예 취해 버려 동네 한구석에서 자다가 저녁 무렵에야 들어가 혼쭐이 난 이야기며, 술지게를 지고 명달리 고개를 넘어가면서 고생고생 하던 이야기 등 어릴 적 서종에서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 타래를 풀어놓는다.

 

어느 마을에나 보물은 묻혀 있어

 

서울미래유산 체부동성결교회. 지난 2월부터 생활문화센터로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출처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비단 서종만이 아니다. 양평만 하더라도 관록 있게 명맥을 잇고 있는 지평막걸리 양조장이며, 양동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논이 펼쳐져 있는 곳이라면 어디를 막론하고 정미소 하나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 쓰러져 가는 것도 있지만 몸집만은 여전히 위용 있게 버티고 있는 것들도 있다. 교회 역시 용문 연수리에 가면 1938년에 축성한 성공회성당이 있듯이 들추어 보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들 모두 나름의 애환을 안고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온 건축물들이다.

이들 역사적 건축물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 땅값이 오르면서, 길을 닦으면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저 필요에 따라 마구잡이로 변형되고 있다. 이 사라짐과 변형은 단순히 물리적인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그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는 장소성과 그곳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들, 몇 세대에 걸친 역사와 마을의 정체성이 통째로 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체부동 성결교회에 있는 서울시 미래유산 표식.

서울시는 미래유산제도를 운영한다. ‘100년 후 보물’을 지킨다는 슬로건 아래 역사적 건축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다. 유산 지정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재생 가능한 건물은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생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외국에서는 역사적 건축물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다. 창고를 쇼핑몰로,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창고를 호텔로, 박물관으로, 미술관으로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여행객들은 그 장소를 누리기 위해 꾸역꾸역 찾아간다.

마을의 보물을 찾아내 닦아보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농촌의 정미소는 근대 이후 농촌 마을에 들어서 있는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이다. 위치 또한 마을 입구 혹은 마을 중심 등 지리적으로 요지이다. 과거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한 때도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은 거의 개인 소유이다. 자식이 물려받아 현대식 정미기계를 들여놓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드물게 있으나 대부분은 덩치 커다란 녀석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서 낡아가고 있으니 주인들은 애물단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주민들의 생활권과 떨어진 곳에 부지를 마련해 거대한 체험관 복지관 등을 짓고 이용객이 없어서 유지 관리가 어려운 사례들을 특히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위치나 규모 면에서 정미소나 마을 곡물창고 등은 활용 가치가 상당하다. 마을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간직한 주민 커뮤니티공간으로, 마을박물관으로, 마을카페로, 체험공간으로, 로컬매장으로 그 변신은 무한하다.

일본 요꼬하마 아카렌카 창고. 옛 창고를 쇼핑몰로 운영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재생’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라 있다. 양평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역사적 건축물의 보전으로 과거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재생, 세월의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 오늘의 문화를 덧대는 재생,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기억이 공존하는 재생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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