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음보건진료소, ‘나만의 시 짓기’

김영 산음보건진료소 소장

 

지난 17~18일 열린 ‘제19회 단월면 고로쇠 축제장’에서 방문객들의 시선을 끈 시화전이 있었다. 시인들의 평균 나이는 70대를 훌쩍 넘겼고, 한 마을에 정을 붙이고 살아온 주민들이다. 촌부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 시어는 사람들의 마을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단월면 산음보건진료소(진료소장 김영)는 지난 2016년 겨울부터 산음리1·2리, 석산리1·2리 경로당을 중심으로 ‘나만의 시 짓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 우울증 및 치매예방 사업의 일환이다.

김영 소장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발상이다. 간호대 졸업 후 보건소 근무를 1년 남짓 한 걸 빼고는 보건진료소에서 쭉 근무해왔다. 산음보건진료소에 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출퇴근길에 만나는 자연의 모습은 시상이 떠오르게 했고, 어릴 때 꿈이었던 시인의 길을 다시 걷게 했다. 2014년 《대한문학세계》에 <그곳에 가면>로 등단해 현재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할 정도로 시 속에 푹 빠졌다. 시를 통해 세상과 자신을 만나는 이런 즐거움을 어르신들께도 전해주고 싶었다.

김 소장은 “농한기인 겨울에 집중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만들기, 그리기, 뜨개질, 한글교육 등 안 해 본 게 없다. 배울 때는 재미있어 하는데 여가시간에는 여전히 화투를 치는 걸 보면서 생활에서 늘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 시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어르신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아니다. 이 나이에 무슨 시를 짓느냐며 도리질 치는 어르신들께 세계 최고령 시인 일본의 시바타도요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바타도요는 92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98세에 《약해지지 마》라는 첫 시집을 출간했는데, 긍정적인 태도와 맑고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이 담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19회 단월면 고로쇠 축제장’에 어르신들이 지은 시가 전시돼 축제장을 찾은 방문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해 초부터 한 분 두 분 쓴 시를 보건진료소에 전시해 시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채나스자(1942년생)씨는 <그리운 어머니>란 시를 통해 ‘중매쟁이 말만 믿고/ 첩첩 산골 산음리로/ 시집 보내놓고/ 40세 청춘에 돌아가셨다’며 그리움을 토해냈다. 이 시를 보고 용기를 얻은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시를 적어오기 시작했다. 적어온 글을 함께 읽고 연과 행을 나누며 개인지도를 해드렸다. 이용숙(1946년생)씨는 딸을 보고도 ‘아줌마 어떻게 오셨어요’ 되묻는 96세 노모를 보고 돌아오는 마음을 시 <엄마, 눈물겨운 그 이름>에 담았다.

때로는 구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영순(1936년생)씨의 <진달래>는 그렇게 시가 됐다. ‘어린 시절/ 뒷동산에 올라/연분홍 꽃잎 따다/낡은 밥상 위/유리병에 담아 두었어/꽃봉오리/하나 둘 피어나는 것에/세상이 내 것인 양/너무 행복했던 봄/꽃잎 시들어/방바닥에 떨어지면/내 가슴이 아팠지/나를 웃고 울리던/나 어릴 적 진달래꽃/봄이 오면 더욱 생각난다.’

어르신들은 마음속에 찬 걸 시로 털어 놓고 후련해했다. 오랫동안 마을에 함께 살았지만 좀처럼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속내를 드러내면서 유대감도 강해졌다. 이렇게 2년 동안 어르신들이 쓴 시 43편을 시화와 함께 세상에 내보였다. ‘제19회 단월면 고로쇠 축제장’에 마련된 시화전을 본 방문객들은 “단월의 자연에 감동받고 어르신들 글로써 마음의 양식을 얻어갑니다”, “속내 꺼내기가 힘들었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어르신들의 시향에 고개 숙여 감사와 사랑, 존경을 드립니다” 등 격려의 글을 남겼다.

김 소장은 “시화전 이야기를 꺼냈을 때 호응해주신 김연호 보건진료소 운영위원장님, 시 한 편까지 찬조해주신 권영갑 보건소장님, 보건행정과 과장님과 팀장님 등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가장 좋은 간호는 잘 들어주는 것인데,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을 드러내는 시 짓기 프로그램이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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