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80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의 종착지가 멀지 않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제 그동안 찾아다녔던 것이 무엇인가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아름다운 마을. 이제 불과 몇 정거장만을 앞두고, 몸을 편하게 젖혀 누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다녔던 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잠겨보기로 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움은 왜 찾아야 하는가’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소위 ‘미학’(美學, Aesthetics)이라는 개념에 관한 질문이다. 나는 솔직히 미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몰랐다. 1993년경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미학과 출신이라는 이력을 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곧바로 미학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고,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 관심사였다. 아름다운 마을경관 만들기에 발을 들인 이후에는 그 관심은 더욱 커져 갔다. 이성적 인식에 대비하여 감성적 또는 예술적 인식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은 깔려 있었지만 딱히 그 개념을 쉽고도 시원하게 풀어줄 책이나 글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나가노현(長野県) 이이다(飯田) 실개천의 석등. 밤이면 동화의 나라가 된다.

이성적 인식에 대비하여 한 단계 낮게 평가되던 감성적 인식에 독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철학의 한 부분으로 끌어올려 미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는 A.G.바움가르텐(1714∼1762)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학적인 독자적 영역을 학문적으로 완성시킨 사람은 아무래도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일 것이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영역을 3가지의 ‘비판’시리즈를 통해 정립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의 인식영역 중 이성적 영역인 지(知) 또는 진(眞)의 영역을 분석한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행동의 의지(意志)를 결정하는 영역을 다루고 선(善) 또는 도덕(道德)의 영역을 분석한다. 그리고 판단력비판에서 선험적 감성의 영역을 다루고 미(美)의 영역을 분석한다. 판단력비판을 통해 미학의 기본적인 정체가 잡힌 것이다. 칸트는 ‘미(美)란 인간이 합목적성 없이 인식하는 대상의 합목적성이다’라고 요약한다.

칸트의 인식영역체계는 프랑스 철학자 V.쿠쟁에게 계승되면서 소위 ‘진·선·미’라는 개념으로도 정립된다. 초월적 인간은 진(知性, 인식능력)과 선(意志, 실천능력), 미(感性, 심미능력)를 두루 갖춤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이다.

미학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후 칸트로부터 시작된 진·선·미의 세 가지 개념은 나에게 통째로 하나의 화두였다. 언제나 머리 저 깊은 곳에 놓여 있었다. 나 자신 스스로 인생을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를 순간순간 돌이켜 볼 때도 그 잣대는 사용되었고, 심지어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잣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세 가지의 개념은 한 인간의 인식과 행동에서 어떻게 서로 연관되고 결합되어 있는가도 분석의 대상이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극찬한 일본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가레산스이(枯山水)식 정원. 동양적인 단순미의 극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眞)과 선(善)의 영역과는 적지 않게 마주친다. 소위 ‘똑똑한 사람’과 ‘착한 사람’의 평가영역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영역에 대해서는 별로다. 아름다움의 영역은 소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독자적인 영역이라고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예술의 전유물이 아니다. 또 소위 ‘예쁨’이나 ‘멋있음’ 같은 외면적이고 자극적인 영역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인식 영역 중에 하나의 부분으로 어엿이 자리 잡고 있다.

진・선・미를 찾아나선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 내게도 나름대로의 몇 가지 결론이 있다. 선한 사람은 진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음에 오만과 편견이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하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아름답다. 욕심 없고 옳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찾고, 추구하는 과정은 사람을 옳고 선하게 만든다. 그의 지향하는 바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선・미는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美)은 우리 누구에게나 인식의 영역 한 가운데 어엿이 독자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움은 진리를 배우고 익히듯이, 도덕적 양심을 가지듯이, 우리의 인식과 행동 속에 부단히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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