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성종규의 아름다운 마을
성하정(城下町) 2, 이즈시(出石)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67

효고현(兵庫県) 토요오카시(豊岡市)의 이즈시(出石)를 찾아가는 길은 멀다. 오사카나 교토로부터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2시간 가량을 가야 한다. 다만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키노사키온센(城崎温泉)이 있으므로 온천과 함께 찾기에 적당하다. 이즈시는 이즈시성(出石城) 아래 조성된 성하정이다. 이즈시성은 아리코야마(有子山)라는 산에 축성된 것인데 현재는 성곽과 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즈시의 역사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이즈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존재했던 일본의 고대국가 타지마(但馬国)를 세운 시조가 신라인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삼국유사에 해당하는 니혼쇼키(日本書紀)에 의하면 신라의 왕자 출신인 아메노히보코(天日槍)가 이즈시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아메노히보코는 신라의 왕자였는데, 어느 날 호숫가에서 아름다운 구슬을 주워 집에 보관하던 중 그 구슬이 아름다운 여자로 변했고 그녀와 혼인했다. 그런데 그 여자와 불화가 생겼고, 여자가 자기 조상의 나라인 일본으로 돌아가버렸다. 왕자는 후회했고 여자를 찾아 난바(難波, 현재 오사카)로 길을 떠났는데 도중에 풍랑을 만나 이즈시에 상륙했다. 거기서 새로운 여자와 혼인하고, 철기를 만드는 기술을 보급했으며, 수로를 내어 경작지를 넓히고 나라를 세웠다. 아메노히보코는 신라로부터 7가지의 보물을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가 이즈시(出石)라는 이름을 가진 단검(小刀)이었고, 그 이름을 따서 현재의 지명이 붙여졌다”는 것이 그 내용의 요지이다.

이즈시 거리의 랜드마크 신코로(辰鼓楼)

이즈시의 거리는 신코로(辰鼓楼)라는 시계탑이 랜드마크이다. 신코로는 1871년에 세워졌는데, 성주(城主)의 명령이나 시간을 마을에 알리는 신호인 북을 치는 용도였다. 누각의 상부에 아리코노시라베(有子のしらべ)라는 큰 북(太鼓)이 있었다. 그런데 세워진 지 10년 정도가 지났을 때 네덜란드인으로서 의료선교를 하며 마을사람들을 치료하던 이케구치 타다히로(池口忠恕)가 병이 걸려 눕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기도했고, 타다히로는 완쾌된 뒤 마을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네덜란드로부터 시계 기술자를 불러와 신코로에 시계를 설치했다. 그 뒤로는 시계의 괘종이 북을 대신하게 되었지만, 현재에도 하루에 오전 8시와 오후 1시 두 번씩은 북이 울린다.

랜드마크인 시계탑을 중심으로 늘어선 옛 건물들은 대부분 상가를 형성하고 있는데, 특히 이즈시는 독특한 이즈시만의 소바(そば)로 유명하다. 우리는 흔히 일본 사람들이 면요리로서 우동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소바가 더 흔하다. 오죽하면 식당이라는 말을 통칭 ‘소바도코로’(そば処)라고 쓰기도 한다. 술집은 사케도코로(酒処), 식당은 소바도코로다.

이즈시(出石) 성하정(城下町) 거리

소바는 본래 나가노(長野)를 포함한 신슈지방이 메밀의 원산지여서 신슈소바(信州そば)가 원조다. 그런데 1900년대 초반에 신슈지방의 소바 장인 한 명이 이즈시로 옮겨 와서 소바를 시작했고, 1950년대 중반에는 보통 대나무발에 받쳐 내는 자루소바(笊蕎麦)를 쟁반에 담아 내는 이즈시만의 독특한 방식인 사라소바(出石皿そば)로 이름났다. 물기를 빼기 위해 대발에 받쳐내는 것을 굳이 왜 쟁반을 썼을까 의아했는데, 본래 메밀은 경단이나 수제비 형태로 먹다가 밀가루를 섞어 현재의 가락국수 형태로 먹기 시작한 것이 1900년대 중반이고, 이즈시는 주변에 이즈시야키(出石焼)라는 도자기 가마가 많아서 쟁반(사라, 皿)을 사용하다 보니 사라소바가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굳이 대발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쟁반을 쓰기 시작한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듣고 보니, 단지 대발 대신 쟁반에 담아낸다는 것만으로 자기 지역만의 이름을 붙여 유명하게 만드는 일본인들의 끈질긴 상술에 새삼 쓴웃음이 나왔다.

이즈시를 찾은 한 여름날.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당연히 보여야 할 랜드마크인 시계탑이 보이지 않아 당혹했다. “내가 잘못 찾아왔나?” 이리저리 살폈다. 알고 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3개월 기한으로 시계탑은 수리에 들어갔단다. 공사용 방재막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여기 싣는 사진도 재팬 웹 매거진의 사진을 허락받아 싣는다.

시계탑은 보지 못한 채로, 나름 원조처럼 보이는 수타(手打) 소바집의 데크 테이블에서 사라소바를 주문했다. 장국에 얼음을 띄우고 뜨거운 여름 하늘을 본다. 멀리 왔다.

 

양평시민의소리  webmaster@ypsori.com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평시민의소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