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우 양평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안정우 양평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한 2009년은 전문의 자격증을 막 받고 선배의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을 때였다. 크게 지지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다 정신과의사로서의 오만함까지 겹쳐, 대중적으로 비난받던 그의 다소 거친 언사나 감정적 반응 등을 낮은 자존감 때문 아니겠냐며 비꼬며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대학병원 바깥에서 생활에 직접 부딪혀보면서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던 5월 어느 날, 환자가 뜸한 시간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다 대기실 텔레비전을 통해 노 대통령의 자살소식을 들었다.

TK 출신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강남 8학군에서 자란 보수 지지자였고, 김대중은 북한에서 지령을 받는 빨갱이 간첩이라는 주변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행한 의약분업시절 인턴생활을 했기에 의사파업에도 참여해 의료민영화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의 정책에 솔깃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딱히 지지하지 않았던 그가 죽었다는 소식, 자살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며칠 후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 사람의 고통이 너무 강하게 전해져왔다. 당시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그의 인생역정을 알았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잘 몰랐다. 그저 자기 환자가 자살을 한 일도 경험했던 정신과의사의 입장에서 그 감정이 너무 강렬하게 느껴져서인가 정도로 생각했다.

바로 그 해에 제도가 변경되면서 많은 정신장애인들의 급수가 재평가를 통해 하향 조정되었다. 의사는 환자의 장애급수를 판정할 권한을 국가로부터 회수 당했다. 장애판정위원회가 판정을 하면서 의사 개개인의 주관적 판정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입원해 있지는 않지만 경제적 활동 등이 불가능해 장애 1~2급을 받아 그나마 경제적 지원을 받던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수용되어 있지 않고 바깥에서 생활한다는 이유만으로 3급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장애 1~2급은 병원에 입원해있거나, 장애인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들이나 받을 수 있는 급수가 되었다. 보호자들이 와서 왜 장애등급이 낮아졌냐고, 당신이 장애진단서를 나쁘게 써줘서 그런 것이 아니냐며 항의하고 비난하는 일이 많았다. 주치의가 장애 급수 판정에 아무 영향력이 없는데도 말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는 그때 나는, 우리는 완전히 민주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정책이 정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겠지만 크게 봤을 때 모두가 더 잘사는 선진국가가 되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는 그리 간단한 것일 수 없는 것이었다. 가진 자들의 것을 지켜주려고 달려드는 기득권 세력이야 그렇다 쳐도 경제 자체가 더 이상 이전의 속도로 발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서로 간의 차이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 태어날 때부터 선대가 가지고 있는 재산과 권력, 혹은 타고난 지능과 재능이 그 사람의 미래를 이전보다 더 확정해주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개천에서 용 나기가 이전보다 더 힘들어지는 사회로 변해갈 것이라는 것을, 그나마 있는 자원 분배를 둘러싸고 경쟁이 심해질 것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이전보다 전체적으로는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중앙정부, 지자체의 지원이 증가하고 있어 마음의 부담이 덜하다. 그래도 그 절차 등에 있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남아있다. 정신장애인을 비롯해 차상위계층 1~2급, 의료보호 1~2종, 근로능력평가 진단서를 받아야하는 분들, 등급을 받을 때마다 의사 눈치를 보시는 환자분들을 대할 때면 등급을 받기 위한 진료 기간과, 병의 경중을 환자들에게 가혹하게 말해야하는 내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절차들을 건조하게 전해드릴 수밖에 없는 의사들 때문에 감정이 상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의사들의 자괴감은 물론 이런 절차와 등급 분화로 인해 환자와 가족들이 받는 정신적, 경제적 고통이 덜어졌으면 좋겠다. 환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국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분의 친구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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