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48

 

시간은 모든 것을 쓸어가는 비바람 (중략) 시간은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거장의 손길 (중략)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중략) 해와 달의 손길로 닦아지고 비바람과 눈보라가 쓸어내려준 순해지고 겸손해지고 깊어진 것들은 (중략)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박노해,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물질적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을 통해서였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한국전쟁으로 호황기를 맞은 이후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회의 풍경이 바뀌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쇼와(昭和) 30년대(1955~1964)를 기준으로 삶의 문화가 달라졌다고 평가한다.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에서 히라카와 가쓰미(平川 克美)는 쇼와 30년대의 인정(人情)이 담긴 경제와 사회의 풍경을 돌이키고 있다.

1992년에 이미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고 1995년에는 4만 달러를 넘어서는 물질적 발전 속에서 일본의 인문학적 지식인들은 급속한 전통의 파괴를 괴로워했다. 사람들 사이의 인정과 아름다운 전통적 거리와 건물들이 해체되고 철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통의 아름다움이 사라져갔다. 물론 그러한 추세는 우리도 다름 아니다. 정신없이 물질적 풍요를 위해 달려오는 속에 고유의 한옥이나 아름다운 시골 풍경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비교적 일찍 각성과 반성이 제기된 셈이다. 1976년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고 전통적 거리와 건물의 보존과 보호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21세기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전통의 아름다움에 대한 각성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그나마 빠른 셈이다.

일본이 1976년 법 개정을 통하여 시작한 것이 문화청(文化庁)이 주도한 ‘전통적건조물군보존지구(伝統的建造物群保存地区)’ 제도다. 전통적 건물들이 거리를 이루고 있는 지구를 보존하는 제도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읍면, 군, 시 등의 제안을 받아 중앙정부가 보존지구로 지정하고 보존하는 제도다. 궁궐이나 사적지를 보호하는 것과는 다른 제도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살던 특별하지 않은 거리다. 그리고 개별 건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건조물‘군(群)’ 즉 거리다.

교토(京都) 기온(祇園)의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하나미코지(花見小路).

그 거리의 본래의 기능에 따라 분야를 나누었는데, 숙장정(宿場町), 상가정(商家町), 성하정(城下町), 재향정(在郷町), 온천정(溫泉町), 항정(港町), 양조정(醸造町), 제자정(製磁町), 산촌집락(山村集落), 다옥정(茶屋町), 사정(寺町), 무가정(武家町), 어촌정(漁村町) 등이다. 보존사업은 단지 행정에서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리와 마을의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방식이어서 마을만들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본 문화청에서는 보존지구 제도를 ‘역사를 활용한 마을만들기(歷史を活かしたまちづくり)’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1세기 들어서부터는 한옥마을을 보존하는 추세이지만, 서울의 북촌이나 경주의 양동마을 등 몇 군데를 빼놓고는 외국여행객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을만한 곳은 많지 않다.

2016년 현재 일본의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는 전국적으로 114개 지구이고 총 면적 약 3877.2㏊에 약 2만7100건의 전통적 건조물이 보존되고 있다.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는 어디를 가든지 은근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일본은 전통적 건물들이 대부분 목조건물이라서 밖에서만 보더라도 몇 백 년 된 나무들의 변색된 색상에서 두꺼운 세월의 흐름을 탄식하게 하거니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금속재료 없이 나무들로 짜 맞춰진 내부의 구조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더구나 단순히 보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그 기능에 맞춘 쓰임새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많아서 그런 건물에 하루쯤 묵게 되면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모두 낭만적인 여행의 대상지로도 훌륭하다. 여행객들로 넘쳐 난다. 옛 것의 아름다움이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불러준 셈이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건축가 승효상은 박노해의 시 제목을 딴 책에서 한국의 궁궐이나 유럽과 일본의 오래된 건물들의 아름다움을 수집했다. 반면에 나는 일본과 한국의 오래된 아름다운 거리를 찾아가 보려고 한다. 앞으로 약 10회 이상 일본의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를 중심으로 한국의 한옥마을까지 두루두루 살펴보려고 한다.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행에 함께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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