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68회 슬픔은 젤 무서운 귀신이디

 

신촌 지점장은 강 마담, 강남 지점장은 정 팀장, 잠실 지점장은 김춘수 주방장이 맡게 되갔시오. 길코 지배인제도를 다시 부활해서 강 마담을 지배인으로, 정 팀장을 마담으로 승진시갔시오.

 

사업계획서는 장기와 단기로 나뉘는데 장기계획은 지점을 내는 것으로 신촌점, 강남점, 잠실점 순이며 단기계획은 신촌지점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첫째는 건물 신축이지만 이미 설계를 논의 중이고, 둘째는 가장 걱정되는 일로 지점장을 비롯한 직원확보 문제다. 허마두는 본점 사장으로 남아야 되고, 능수엄마는 자질을 키우는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김춘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미스 강을 키워서 자리에 앉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방장과 팀장들을 어떻게 선발해서 가르쳐야 할지 그게 막연했다. 고기, 김치, 양념 등 모든 재료는 본점에서 조달하면 어려움이 덜어지겠지만 기본인력은 독립적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지점을 신촌점으로 결정한 것은 신촌이 젊음의식이 꿈틀거리고, 유행을 주도하는 역동적인 지역인 데다, 대중적인 소비패턴과 다양한 세대의 분포가 호재로 작용하고, 무엇보다 춘천옥 이름을 내는 데에 효율적인 이미지 메이킹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젊은 이미지로 춘천옥의 백년대계를 다지고 싶었던 것이다.
“끝으로 한 말씀 부연하갔시오. 앞으로의 계획입네다만 신촌점 지점장으로는 강 마담으로 정했시오. 길코 다음 차례 개점 예정인 강남점 지점장은 정 팀장으로, 그 다음에 개점될 잠실점은 김춘수 주방장이 맡게 되갔시오. 길코 지점장 수업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지배인제도를 다시 부활해서 강 마담을 지배인으로 정 팀장을 마담으로 승진시키고 진애경을 정 팀장 자리에 앉히기로 했시오. 기러니께니 여러분들은 직원의 몫뿐 아니라 평소 경영자로서의 역량도 키우시길 바랍네다. 인자부터 여러분은 전쟁터에 나가는 겁네다. 하루하루를 훈련으로 여기디 말고 실전으로 여겨서리 최선을 다해주기오.”
회의가 끝나고 모두 나가자 나는 휴게실에 혼자 남아 창밖으로 화산동 쪽을 바라보았다. 능선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내게 춘천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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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연못가 잔디밭에 차린 술상에 허마두와 셋이 둘러앉았다. 달은 사랑제 능선 위에 머물고 있었다.
“모처럼 너와 조용한 데서 술한잔 나누고 싶어 양평집으로 부른 거야.”
나는 허마두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내가 허마두에게 술을 따라주며 노고를 치하했다. 나는 거듭 허마두와 술잔을 부딪쳤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춘천옥 개업한 지 이십육 년 만에 요즘 최고의 매상을 올리고 있어.”
“늬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께니 가능하디 나 혼잔 어림없디.”
“이제야 너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어. 그건 그렇고, 너 앞으로 어쩔 참야?”
“멀 말이네? 지금 너랑 잘 살아가고 있잖네.”
“강 지배인과 깊은 얘기 해봤어?”
“사업이 바쁜데 머가 깊은 얘기네? 기딴 얘기 때려 치고 신나는 얘기나 하자꾸나야. 어젯밤에 말이디, 영업을 끝내고 혼자 술한잔 하다가니 큰 걸 깨달았댔어.”
“뭘 깨달았는데?”
“늬가 키우고 있는 귀신이 뭔디를.”
“얘가 미쳤나. 뜬금없이 귀신이라니.”
“늬는 자신도 모르게 귀신을 켜왔더랬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늬는 사업을 한 게 아니라 늬 속에 귀신을 키우고 있더랬어. 기래개디구 손님을 홀린 게야. 손님들은 늬 속에 든 귀신한테 홀린 거디. 알간? 늬는 너무 착해. 너무 진실되구. 늬는 원래 생겨먹은 거이 기래. 늬는 눈물이 많은 놈이거든. 늬는 이 사회의 허점을 찌른 게야. 이 사회를 살아가기에 가장 부적절한 늬가 가장 적절하게 처신한 거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너 같은 개똥철학자의 말이니....”
“늬는 요즘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것들을 개디구 묘한 걸 만들어냈어. 일테면 착함, 진실, 연민, 의리 같은 구질구질한 퇴물을 한 솥에 끓여서 묘한 걸 과낸 거라메. 기거이 뭔디 아네?”
“귀신이겠지.”
“그 귀신이 메냐 이거디.”
“그걸 내가 어찌 알아.”
“그 귀신은 바로 슬픔이었어. 슬픔이 너를 미치게 한 거라메. 기러니께니 슬픔처럼 오묘한 게 없잖갔어? 슬픔은 못하는 게 없디. 슬픔은 무소불위야. 슬픔은 젤 무서운 귀신이디.”
자정이 가까워지자 허마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 일어나는 거야? 여기서 함께 자잖구.”
“가야 되니께니 늬 차를 내주라메.”
“여기서 함께 자자니까 그래.”
“싫어. 달빛이 싫어.”
“네 기분 알겠다.”
나는 아랫집에 사는 사촌동생을 부른다. 그는 종종 내 차를 운전해주곤 한다.
“잘 모셔드려.”
허마두가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갑자기 허전해진다. 와락, 가슴이 멘다. 허마두 그놈 때문이다. 그놈이 내 가슴을 휘저어놓은 것이다. 깊이 묻어두려 한 내 슬픔의 원형을 왜 건드렸단 말인가. 나는 주차장으로 뛰어간다. 허마두가 차에 오르고 있다.
“멈춰.”
“와 기러네?”
“어서 내려.”
“왜서 시비 거는 게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허마두가 차 유리를 내리고 목을 내민다.
“할 얘기가 메야?”
“네가 말한 슬픔,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하는 힘이었어. 그런데 넌 나보다 더 슬픈 놈야. 그러니 넌 나보다 더 큰 걸 이룰 수 있어.”
“기러니께니 나보고 현실주의자가 되라 기거네?”
“암. 그래야지.”
“기럼 하나 묻갔어. 왜서 그동안은 체인점을 거절해왔디?”
“그건 예술이 아니고 사업이니까.”
“기럼 지금은 왜서 지점을 생각했네?”
“그동안 애쓴 직원들에게 살 길을 열어줘야잖아.”
“애쓴 직원이 하나 둘이네? 늬 말대로라면 계속 지점을 내얄 텐데 왜서 세 군데만 낼 계획이디?”
“춘천옥 직원들 중에서 나, 너, 능수엄마, 미스 강, 김춘수는 동상을 세워주고 싶은 직원들이니까.”
“너도 직원이네?”
“그래.”
“좋디. 기럼 직원은 다섯이고 업소는 네 개뿐이잖네?”
“너와 나는 춘천옥을 가지면 되잖아. 아니면 둘 중 하나가 양보하든가.”
“둘 중 누가 더 허무주의자냐, 그게 문제겠군 기래.”
“아무래도 네놈보다는 내가 더 허무주의잘 걸?”
“기러니께니 나보고 가져라, 기거네?”
“맞는 말이지.”
“허무야 늬보다 내가 더…”
나는 허마두의 말을 자르고 기사에게 일러 얼른 차를 출발시킨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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