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36

 

대구에서 가볼만한 특색 있는 거리 중 하나가 대구약령시다. 약전골목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조선조 효종 때부터 한약재와 약초를 파는 시장으로 개설되었다. 과거에는 봄과 가을에 한 달씩 열렸지만 오늘날에는 상설화된 전통시장이다. 더구나 거리의 한편엔 대구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인 대구제일교회가 옛 건축물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함께 볼만하다.

약령시장 뒤편으로 간판이 비교적 예쁘게 정비된 골목이 있다. 간판정비사업이 행해진 곳 치고는 비교적 개성 있는 간판들이 있다. 어느 음식점의 경우 부식된 철판의 농후한 멋을 바탕으로 사용하여 맛집의 전통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백색 아크릴로 글자를 오려붙임으로써 맛의 깔끔함을 느끼게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맛있는 전통의 집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른 가게는 오래된 대문의 문짝 같은 목재를 바탕으로 사용했는데, 부식된 철판과는 색상에서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도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이곳 상가들의 간판은 통일적 콘셉트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각기 개성 있다.

대구 약전골목의 음식점의 간판. 오래되면서도 깔끔한 음식점의 맛이 느껴진다.

일본 도쿄의 야나카긴자(谷中銀座) 시장 골목은 여느 동네의 작은 길거리 상가와 다를 바가 없는 작은 마을시장이다. 길이 약 200미터에 약 70개 점포가 늘어서 있다. 일본이 현대적으로 발전하기 전인 에도시대에는 나름대로 명성을 가진 시장이었으나, 건물이 오래되고 골목도 좁아서 대형마트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시장은 쇠락해갔다. 보다 못한 상인들은 협의체를 구성했고 스스로 야나카긴자의 특성을 살릴 방도를 모색했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2000년경의 상가 간판 정비, 2006년경의 상가 차양과 돌출간판의 통일, 이어 2009년경에 야나카긴자 시장의 상징인 고양이 심벌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실천했다.

도쿄 야나카긴자(谷中銀座) 시장의 붐비는 여행객들.

야나카긴자 시장의 모든 점포들은 목재를 기본으로 한 전면간판에다가 동그란 모양의 개성적인 돌출간판을 통일적으로 설치했다. 거기에 더 나아가 오래된 건물인 상가 지붕에 각양각색의 몸짓과 표정을 지닌 고양이를 한 마리씩 올려놓았다. 간판과 어울린 고양이는 각 상점의 귀여운 심벌이 되었다. 드디어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야나카긴자를 일약 전국으로 명성을 날

야나카긴자 시장의 돌출간판. 규격은 동일하지만 디자인이 제각각 다른 돌출간판은 각 상점의 이미지를 작지만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다.

리게 했다. 그렇잖아도 국민적으로 좋아하는 고양이를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한 모형으로 만들어 각 상점의 지붕 위에 배치함으로써 전깃줄로 얽히고설킨 낡은 건물과 좁은 골목의 시장은 졸지에 인간미가 살아있는 추억의 거리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평일엔 7000~8000명, 주말엔 1만5000명 정도의 여행객이 전국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찾아온다. 내가 야나카긴자를 찾았을 때도 여행객들이 넘쳐났다. 간판 정비를 중심으로 한 상가 부흥의 아이디어가 야나카긴자 시장을 국제적 명소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이다.

야나카긴자 시장 상점 지붕의 고양이 심볼. 각 상점마다 제각각 다른 표정과 몸짓을 하고 그 상점의 간판 옆에 배치되어 있다. 고양이를 보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시장산책이 된다.

야나카긴자에서 각 상점의 간판과 고양이 심벌은 서로 어우러져 그 상점의 BI(Brand Identity)를 이룬다. 야나카긴자의 경우 그러한 간판과 심벌의 정비는 단순한 간판정비사업을 뛰어넘은 기발한 상업적 전략이었다. 간판을 중심으로 한 거리와 상점의 개성적 아름다움이 상업적으로도 얼마나 큰 성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덕분에 유명해진 야나카긴자 시장 안의 고로케의 맛이 아직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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