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54회 사단장님 고마워요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끼쳐요. 착하다는 말은 이 사회를 떠나라는 말과 같아요. 이 사회에서 살 능력도 없고, 살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이처럼 장삿속은 밝은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나는 누굴까요?

 

“오늘 지휘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단장님이 글쎄 춘천옥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무슨 말을?”
“사장님의 사업정신이 놀랍다구요. 특히 신용에 대해 자랑하시던데요. 그러니 우리들보고 사장님의 그 정신을 본받으래요. 그러면 성공한다구요.”
“내가 존경하는 장군이시지. 매사에 철저한 지휘관이시구.”
그들이 2층으로 올라가자 나는 미스 강에게 맥주 3병을 들려 그들 방으로 들어간다.
“국토방위를 위해 수고했는데, 이건 내가 서비스하는 거야.”
“고맙습니다만, 어쩐지…”
“독약은 아냐. 청탁할 것도 없구. 그냥 모두 이뻐서, 한 모금씩 드시라구 내놓은 거야.”
내 말이 끝나고 잔에 술이 채워지자 중대장이 사단본부가 있는 부대 쪽으로 술잔을 내민 채 한마디 한다.
“사단장님,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부디 춘천옥을 자랑하셔서 저희들이 또 공술을 마실 수 있도록 선처해주십시오.”
“어림없는 소리. 미스 강, 이 맥주 세 병 값 모두 계산서에 넣어.”
농담을 던진 나는 미스 강을 내려 보내고 중대장이 건네주는 술잔을 받았다. 아무리 바빠도 술잔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술잔을 받고 나니 또 다른 대원이 잔을 내민다. 얼굴이 곱상하고 말수가 적은 젊은이다.
“저도 중대장님처럼 사장님을 존경합니다.”
“고맙소. 오늘 경사가 겹치는군.”
“사장님은 용고 출신이시죠?”
그가 느닷없는 말을 꺼낸다.
“아니, 그걸 어찌 아쇼?”
“벌써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우리 모교 교지에 칼럼을 쓰셨더군요. 멋진 글이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동문이란 말요?”
“네. 저는 23회 이민석입니다. 진작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죄송합니다.”
“이 사람아, 진작 말하지 그랬어. 전에도 춘천옥에 온 것 같은데.”
“동문인 걸 아시면, 서로 거북해질까봐…”
나는 민석에게 술잔을 건네고 잔을 채웠다. 민석이 거듭 내게 잔을 내밀었다. 함께 취하자는 의미다. 분위기가 더욱 애애해졌다.
“춘천옥이 왜 잘되는지 아세요?”
민석이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투로 보아 그가 주벽이 심할 성싶어 은근히 걱정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술주정이다. 그래서 일부러 대꾸하지 않고 딴전을 부리지만 그는 나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선배님이 너무 착해서 그래요. 너무 착해서 장사가 잘 된다구요.”
“고맙네만, 난 요즘 사람이 달라졌어.”
“달라지시다뇨?”
“사기꾼이 됐어. 이젠 사기란 말만 들어도 온몸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애.”
“사장님 농담 색깔이 달라지셨네요.”
중대장이 신나게 웃는다.
“진짜야. 이젠 여자도 순진하고 고운 여자보단 노회하게 사기 칠 줄 아는 여자한테서 더 섹스감정이 느껴져. 나는 말투도 바꿔보고 싶어. 사기꾼처럼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고 싶다구.”
“큰일 났군. 사장님이 춘천옥을 뒤집을 작정이신가 봐.”
“그럼 저희들도 사기꾼이 돼야겠네요. 선배님을 본받아야 되니.”
중대장의 말에 민석이 끼어든다. 내가 맞장구를 친다.
“암 그래야지. 내 진실은 쓰레기에 불과해. 이젠 가짜 진실을 만들어서 재미나게 활용해볼 참야. 공자는 그럴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자를 싫어한다(惡似而非者)고 했지만, 이제 나는 진실 되게 살지 않고 거짓으로만 살아갈 거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우리 누나도 그런 말을 하셨죠.”
“누나가?”
“네. 우리 누나는 사기꾼을 사랑하다 진짜 사기꾼이 되셨죠. 지금 미국에 사시는데, 못 말리는 분이죠.”
“미국?”
“엘에이에 거주하시는데, 대단한 거물이죠.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시겠다고 법석인데, 입후보 자격이 모자라 포기했죠.”
“성함을 물어도 될까?”
차마 그럴 리야 없지만, 에멜무지로 물어본다.
“그럼요. 이민주. 중년인데 아직도 청춘이세요.”
이럴 수가, 하지만 나는 애써 감정을 숨기고 민주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은근히 떠본다.
“누님이 특별한 분이시군. 한국에 계시면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런데 사기꾼이란 게 뭔 소리야? 물론 농담이겠지만.”
“농담 아녜요. 진짜 사기꾼예요. 그래도 들통 난 적이 한번도 없죠. 미국 사람들도 바보는 아닐 텐데, 누나 말에 안 넘어간 사람이 없어요. 정치계, 경제계, 종교계, 어디를 가나 스타 대접을 받걸랑요.”
나는 입을 다문 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모처럼 담배를 피워 문다. 끊은 담배지만 자꾸 피우고 싶어진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담배 맛이 입에 당긴다. 민주는 마지막 날 밤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끼쳐요. 착하다는 말은 이 사회를 떠나라는 말과 같아요. 이 사회에서 살 능력도 없고, 살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이처럼 장삿속은 밝은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나는 누굴까요?”

이웅평 공군 소령이 부부동반으로 찾아왔다. 소련제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 소령 역시 춘천옥 단골이다. 북한에서 대위 시절에 귀순한 그는 한국에서 결혼한 아내를 무척 사랑한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예쁜 이마가 인상적인 아내는 교육자(친정아버지가 교수) 가정에서 자란 여자답게 품행이 단정하다. 그녀 역시 이 소령을 사랑하고 아껴주는데, 그들은 춘천옥에 올 때마다 늘 동반한다.
나는 말수가 적고 대화 중에 이따금 미소만 짓는 이 소령을 대할 때마다 말을 조심한다. 내 입에서 혹 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정치적, 군사적으로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는 말이 흘러나올까봐 조심스럽다. 나로서는 궁금한 게 부지기수다. 북한에서의 공군 생활, 귀순 동기, 현재의 심경 등 물어보고 싶은 말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그들 부부는 침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남편은 북한에서의 생활과 귀순 동기와 현재의 심경까지도 숨김없이 털어놓을까?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나는 그가 오면 꼭 동석해준다. 내 아내까지 동석하여 부부동반으로 마주앉아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정생활 등 평이한 일상적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 장교다. 그가 귀순할 때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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