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다울한지인형㈜ 대표이사

한복 입은 인형, 정작 얼굴은 ‘국적불명’
한국기념품 안 사는 외국인, 이유 있었네

한지인형 우수성 널리 알리고 전통문화 계승…
“다음 세대 전수”… ‘한지인형 명인’의 소명

 

프랑스 도자기 인형, 미국의 바비인형, 테오도르 루즈벨트 이름에서 유래된 테디베어 인형, 일본의 전통목각인형, 러시아의 마트로시카, 체코의 마리오네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세계 각국의 인형들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인형은 닥종이 인형이다.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 닥종이 인형이라고 부르는데 한지를 닥나무로 만들어 한지인형이나 닥종이 인형이나 같은 말이다. 종이를 여러 겹 정성스럽게 붙이고 말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친근하고 정감 가는 소박한 매력이 있는 인형이다.

김선미 명인은 “문화는 언제나 살아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지인형을 만들고 있다. 자신이 만든 ‘다올’과 ‘다복’은 2세대에서 ‘행운’과 ‘행복’으로 진화했고, 그 다음 세대는 전혀 새로운 한지인형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김선미 다올한지인형 대표는 ‘왜 우리의 얼굴을 한 인형은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한지인형을 시작했다. 그 세월이 30년을 넘는다. 딱히 내세울 관광기념품도 없고 우리의 문화를 상징하는 인형도 없던 시절이다. 인형이야 많지만 얼굴을 들여다보면 죄다 국적불명이다.

지금도 서울 인사동 기념품가게엔 싸구려 중국산이 가득하다. 명동에는 한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만한 기념품을 찾기 어렵다. 요즘은 명동 자체가 중국 같기도 하다. 한국 고유의 상품을 구입할 곳이 적어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목록에 한국 기념품은 없다.

반면, 전통 있는 관광 강국은 나름의 ‘대표 선수’가 있다. 각종 명품은 물론이고 영국의 홍차, ‘맥가이버칼’로 불리는 스위스의 빅토리 녹스, 프랑스의 와인 등 큰 부담 없는 가격의 ‘국민 기념품’이 다양하다. 덴마크의 인어공주 조각상, 스웨덴의 바이킹 범선 모형, 핀란드의 산타 인형 등도 관광객의 소비심리를 끈질기게 자극하는 아이템이다.

일본만 해도 ‘살거리’를 고민하는 관광객은 찾기 어렵다.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차로 약 50분 거리에 있는 오타루는 운하 말고는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는데 아기자기한 유리공예품과 오르골이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한다. 흔치 않은 디자인, 장인의 손길이 닿았다는 선전 문구, 적당한 가격 등은 관광객의 ‘선물 고민’을 단박에 해결한다. 기념품의 희소성을 위해 오타루시는 유리공예품과 오르골 수출을 최대한 자제한다. 선물이 갖춰야 할 자질을 모두 구비한 셈이다.

김선미 명인의 손끝에서 피어난 ‘우리의 얼굴’을 한 한지인형들을 보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김선미 대표는 “우리에겐 한지가 있고, 닥나무로 제작되어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한지인형은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대표 상품”이라고 자신했다. 그가 우리의 얼굴을 한, 우리만의 인형문화를 발전시키고, 지속적인 교육과 체험학습을 통해 한지인형의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직접 매만지며 노는 인형은 둥그런 볼에 튀어나온 광대, 낮은 코, 작은 눈이라도 복스럽고 정다운 우리의 얼굴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올한지인형의 대표작인 ‘다올’(모두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순 우리말)과 ‘다복’(多福)은 그렇게 탄생했다.

전통적인 한지인형 제조법은 가는 철사나 전선을 꼬아 만든 뼈대에 한지를 몇 겹씩 덧대 붙이고 말기기를 반복해야 해 3∼5개월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형을 말리는 단계에서 종이가 울거나 곰팡이가 피기도 해 일반인이 따라 하기가 쉽지 않다.

다올한지인형은 유치원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해 우리문화를 확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 유치원생의 자유로운 사고에서 소녀의 모습을 한 산타클로스 한지인형이 탄생했다.

한지인형 보급화를 고민하던 김 대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틀을 이용해 플라스틱 재질로 미리 몸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 한지를 붙이는 방법을 개발했다. 어린이도 2시간이면 인형 하나를 만들 수 있고, 제작 시간이 단축되니 다양한 인형이 나올 수 있었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자신이 원하는 인형을 만들 수 있어 의미 있는 선물을 준비하거나 체험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만이다.

다올한지인형은 이런 제작 기법으로 특허도 획득했고, 김 대표는 2009년 (사)한국신지식인협회의 대한민국 신지식인(문화예술부문)에 선정됐다. 2010년에는 (사)대한민국명인회가 주관하는 한지인형 부문 명인(319호)에 들었다. 2012년에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 민속화랑에서 열린 ‘대한명인 경기지회 명인전’에 초대돼 황해도 강령탈춤을 재현한 한지인형을 선보였다.

 

 

“한지인형 널리 알리는 일, 명인의 사명”

“1세대 ‘다올’ 이은 2세대 ‘행복’…
이후는 다음 세대에서 꽃피울 것”

 

우리나라는 2000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종이 생산국으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외래문물이 들어오면서 전통 한지는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지만 ‘여백과 스밈의 문화’로 상징되는 한지는 세계 어느 곳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전주한지’나 충북 괴산 신풍한지마을이 주최하는 괴산 한지문화축제, 강원 원주한지문화제 등은 이미 지역단위를 넘어 글로벌 상품이 됐다.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통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가치를 발굴해 지금의 세대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는 살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선미 대표는 한지인형 ‘다올’과 ‘다복’을 만들었고, 그의 두 딸은 이를 ‘행운’과 ‘행복’으로 잇고 있다. 그는 “3세대의 다올한지인형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 무엇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 대표의 이런 구상이 가능한 것은 교육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만들기 자체가 창의체험이라는 생각으로 진로체험, 경력단절여성 및 다문화가정 체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한지인형은 외국인에게 재미있는 한국문화를 전파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기쁘고 즐겁게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김 대표가 체험교육에 열심인 까닭도 직접 만든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 인형 문화가 더 널리 퍼져 나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다올한지인형은 지난 5월 ‘우리동네 학습공간’으로 지정됐다.

김 대표는 “명인이라면 자신이 잘 하는 분야를 널리 알리고 후세대에 전해줘야 한다는 사명이 있지 않겠느냐”며 “한지인형을 대중화는 길은 교육과 체험학습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공방을 운영하다 단월면 청정지역에 자리 잡은 지 1년, 다올한지인형은 지역주민과 소통하며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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