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33

 

각 나라의 거리 간판의 풍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그 나라의 간판 문화와 옥외광고 규제정책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대표적으로 일본의 경우 간판 문화가 안정되어 있고 거기에 적절한 규제가 뒤따르고 있으며, 서양의 프랑스의 경우는 문화와 더불어 제도적 규제도 강한 편이다.

일본은 거리의 간판 문화가 대체적으로 아름답게 유지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상인들의 상도(商道)나 마인드가 간판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다. 일본에서는 상인들이 상점에 불이 나면 간판부터 들고 뛴다는 말이 있다. 타버린 건물을 복원하거나 다른 장소로 이전한 뒤라도 예전의 간판을 다시 달면 그 영업의 역사는 계속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들에게 간판은 얼굴이며 브랜드며 역사의 증인이다.

두 번째는 일본 자영상업의 지속성(持續性)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의 지속성은 1년 생존율이 50%이고 5년 생존율이 15% 이하라고 한다. 반면 일본은 몇 대를 이어 내려오는 상점이 많다. 따라서 대를 이어 가게를 표상하는 간판을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에서는 때 묻고 오래된 간판이 그 집의 맛과 고객의 믿음과 전통을 표시한다.

유후인의 전통적 주류 판매장의 간판. 오래된 목재 간판이며 외부 조명을 채용했다.

세 번째는 목재 문화의 영향이다. 주택의 재료를 비롯하여 간판도 주로 목재를 많이 사용해왔다. 목재는 철판이나 아크릴, 플라스틱 등과 달라서 단순히 페인트만 칠하는 손쉬운 제작 방법에 머무를 수가 없고, 서각이나 채색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 뿐만 아니라 조명도 LED와 같은 현란한 방식이 적당치 않고 주로 은은한 외부 조명을 이용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예술적 디자인이 기반이 되어야 하고 손이 더 가는 성의가 있어야 한다.

넷째는 일본 사회의 특징적인 공공성의 문화 때문이다. 특별히 규제하지 않아도 일본인의 특성 중 하나인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습성으로 혼자만 현란하게 설치한다든지 도로에 입간판을 세우는 일이 거의 없다. 일본의 어떤 간판업자가 한국의 거리에 세워진 공기주입간판을 일본에 수입하여 영업을 시도해 보았다가 단 하나도 제대로 판매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공공의 도로에 자신의 간판을 세워 보행자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공공성 때문이다.

일본의 큐슈지방 중 젊은이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어 하는 곳이 유후인(由布院)이다. 유후인의 긴린코호수로 통하는 길은 올망졸망한 맛집이나 수공예품점 등이 늘어서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각각의 상점에서 파는 상품들도 다양하지만 간판들도 다양하고 개성적이다.

간판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유후인은 재밌다. 상점들의 크기도 모두 소규모이고 경쟁적인 업종도 많아 넘쳐나는 관광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거리에 물건을 내놓거나 입간판을 세우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만도 하겠건만 상점과 보행자도로를 구분하는 선 밖으로는 단 하나의 물건도 나와 있지 않다. 자로 잰 듯 선을 지킨다. 우산을 파는 어느 가게가 우산을 펴서 진열하면서 정확하게 선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진열한 장면을 보고 야박하다 할 정도로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후인의 고급 음식점의 간판. 건물 자체에는 간판이 없고, 마당에 낮고 은은하게 간판을 설치했다.

유후인의 간판들은 제각각 개성적이다. 얼추 백년이 가까워 보이는 목재간판부터 아주 세련되고 현대적인 예술적 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오래된 간판은 전통 있는 주류제조장 간판이고, 세련된 간판은 현대적 레스토랑이나 수공예품점의 간판이다. 제각각 자신의 업종에 걸맞다. 간판의 소재도, 간판을 설치한 곳도 다양하다. 목재로부터 도자기까지, 지붕 꼭대기부터 바닥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자신의 가게의 개성을 표현한다.

간판은 거리의 풍경을 바꿀 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에게는 그 지역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다. 아름답고 개성적인 간판은 그 지역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북돋운다. 풍수지리를 공부하던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풍수지리를 현대적으로 바라본다면, 그 지역의 기운생동을 결정하는 요소는 단지 그 지역의 산과 물의 지형뿐만 아니라 그 거리를 이루는 건축물과 간판의 개성과 예술성이 더불어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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