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51회 동해바다로 대이동

 

겨울철이라 거진항은 전국에서 몰려든 명태잡이 어선으로 북적거렸어. 바다에서 군사분계선을 잘못 넘어 북한 경비정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배도 더러 있었지. 귀환선이 입항할 때면 부두는 사람들이 백절을 쳤어

 

시끄럽던 버스가 금방 조용해진다. 송민호가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이 버스는 지금 속초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 재밌는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춘천옥 사장님이 이곳에 임검소장으로 부임해서 일주일 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하도 가난하니까 제가 이장한테 부탁해서 된장하고 고추장을 거둬오게 했죠. 그랬더니 한 사발이면 될 텐데 리어카로 가득 싣고 온 거에요. 어민들이 서로 바가지로 퍼온거죠. 아마 출항 잘 시켜달라고 그랬을 겁니다. 도로 동네에 나눠줬지만, 그 대신 소장님이 얼마나 어민을 아꼈는지 아세요? 나이 든 어민들은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소장님은 어민의 편의를 봐주려고 통금시간을 지키려는 군인들과 어지간히 싸웠지요. 그때 국가적인 큰 사건도 터졌지만 그 얘긴 생략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속초에서 자고 내일은 거진에 갈 텐데, 내가 그곳 임검소장을 지낼 때 겪었던 추억을 한 토막 들려주지.”
박수가 터져나온다.
“겨울철이라 거진항은 전국에서 몰려든 명태잡이 어선으로 북적거렸어. 바다에서 군사분계선을 잘못 넘어 북한 경비정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배도 더러 있었지. 귀환선이 입항할 때면 부두는 사람들이 백절을 쳤는데, 귀환어부들 중에는 장난인지 참말인지는 몰라도 ‘원산에서 소장님 안부를 묻던데요.’ 하고 내게 말을 걸며 북한제 담배를 빼주기도 했어. 그들은 모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아야 했거든. 북한에 끌려가 환대를 받고 돌아오니 사상이 달라졌다는 거야. 겨울바람만큼이나 쌀쌀한 시대였지. 하지만 읍내 길거리는 늘 술 취한 어민들로 소란했어. 그들은 어한기인 봄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봄에는 데구리배(저인망어선)로 잡어를 훑으면 됐거든. 그런데 그 해 봄부터는 어족 보호를 위해 당국의 시책으로 불법어로를 강력히 단속했어. 겨우내 명태가 산더미처럼 쌓였던 어판장은 먼지만 풀풀 날렸지. 빈 바구니를 든 아낙들이 출항을 애타게 기다리며 내 눈치만 살폈어. 다른 지역에서는 데구릿배를 출항시키는 바람에 책임자가 구속되었다는 방송이 연일 시끄러운데 함부로 출항시킬 수도 없고. 지역 유지들은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고 국회를 찾아다녔지만 별 대책이 없었지. 아무리 처지가 딱해도 불법을 조장할 수는 없었거든.
날짜가 지날수록 인심이 흉흉해졌어. 영세어민들은 일거리가 없어 배곯을 지경이었지. 메마른 어판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낙들의 얼굴에는 점점 그늘이 짙어갔어. 그 참담한 모습이 내 마음을 괴롭혔다구. 그들의 풀어진 눈동자에서 보리쌀을 꾸러 다니던 어머니의 퀭한 모습을 읽었어. 나는 다만 며칠간이라도 출항시켜줄 궁리를 했지. 문책을 당해봤자 징계밖에 더 먹겠는가. 징계의 대가로 잠시나마 저들의 주름살이 펴진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묘한 용기가 솟아났어. 출항카드에 도장을 찍으라고 명령했지. 결과는 뻔했어. 삼사 일이 지나자 강릉 본대에서 급전이 날아오고, 검찰에서 출두지시가 떨어졌어. 신문과 방송에서 시끄러웠어. 나는 당장 한가한 양양에 있는 남해 임검소로 피신했지. 거기서 몸을 피한 채 징계 날짜만 기다리는데 갑자기 출동하라는 무전이 온 거야. 북평 쪽에 무장공비가 출몰했다구. 한 달간 산 속에서 작전하고 대장과 함께 본부로 돌아와 내무장관과 청장에게 보고했지. 그때 대장이 청장에게 내 말을 했어. 신문 보도와는 달리 내가 어민들에게 인정을 베푼 것뿐이라고. 그래서 가벼운 징계를 먹었지. 구속이 감봉 1개월로 끝난 거야. 그 대신 북쪽 오지에 있는 양구경찰서로 쫓겨났어. 거기에서 어땠는지 알아? 누구를 만났는데… 누굴 만났을까?”
“강릉서 좋아지낸 애인요.”
“틀렸어.”
“서울서 같이 근무한 경찰 친구요.”
“틀렸어.”
“사모님요.”
미스 강이 맞춘다. 나는 미스 강의 말에 토를 달아준다.
“공무원으로 임용된 아가씨에게 신원조회가 나왔는데 다른 직원의 소관인 것을 막걸리 한 되 사주기로 하고 내가 맡았거든. 결국 술값 500원을 주고 처녀 하나를 산 셈이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여기저기서 아내와의 연애담을 들려달라고 야단이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털어놓기로 약속하고 마이크를 송민호에게 돌려주었다.

 

버스는 어둠이 깔릴 무렵에야 호텔에 도착한다. 우선 방을 배정하고 나서 다시 버스에 오른다. 미리 시내 횟집에 마련한 회식장소로 이동하니 식탁마다 음식과 술이 차려져 있다.
식사를 마치자 노래판이 벌어진다. 제일 먼저 미스 강이 <아파트>를 멋지게 뽑자 젊은 직원들이 일어나 춤을 춘다. 다음에는 춘수가 청년답잖게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고, 이어서 아내가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르고, 다음부터는 앉은 순서대로 한 곡조씩 부른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송민호 차례가 되자 나는 그에게 <목포의 눈물>을 부르게 한다. 다음 차례인 내가 배호의 <누가 울어>를 마지막으로 부르고 회식을 끝낸다.
호텔방에는 밤이 늦어서야 들었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은 떼를 지어 바닷가로 나간다. 나는 3층 방에서 창문을 열고 그들이 흔들어대는 디스코 춤을 구경하며, 저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해줄지를 생각해본다.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입사 날짜마다 파티를 열어주고, 기념품을 증정해오고 있지만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 느껴지곤 한다. 나보다 잘 살지 못하는 저들이 가엾기도 하고 혹 내가 저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기도 한다.
지금 능수엄마는 대승옥에서 손님을 맞아들이겠지… 그래, 그것이 네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구나. 다만 내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 뿐이구나. 지금 여기에 네가 있다면, 네 싱거운 웃음소리가 저 바다에 번지고 있다면…
“능수엄마가 없으니까 왠지 허전해요. 바보 같은 것. 춘천옥 식구들이 여기 온 걸 알면 얼마나 가슴이 쓰릴까. 누구보다 신나게 떠들 텐데.”
“당신도 능수엄마를 생각한 모양이군.”
“안 할 수 있어요? 여기 가도 걸리고 저기 가도 걸리는데.”
“우리 부부는 바보를 좋아하는 체질인가 봐.”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나는 아내에게 너붓이 웃음을 지어 보인다. 바다 멀리에서 작은 불빛이 흔들거린다. 별빛 같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끝낸 탓일까? 갑자기 술 생각이 난다. 방에서 쉬겠다는 아내를 남겨두고 나는 밖으로 나간다. 밤바람이 서늘하다. 길 건너에 술집 간판이 보인다. 그쪽으로 걸어가는데 길가 포장마차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방장 범도가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궁금해서 천막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미스 강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범도가 미스 강에게 대들다니, 그들의 대거리가 궁금하다. 나는 포장 뒤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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