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만난 사람>

중학생 “잘못한 대통령 벌받아야…
다른 학교선 시국선언 준비한대요”
연말대목?… 손사래치는 대리기사
“청와대가 우리 남은 밥줄까지 끊어”

 

요즘 세상에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온 국민이 그야말로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다. 어디가나 최순실과 청와대 이야기다. 배달부는 상인, 학생, 군인 등 여러 주민을 만나 그들의 속내를 들었다. 정치 얘기를 선뜻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웠건만 요새는 말도 꺼내기 전에 먼저 치고 나온다.

#“말도 마세요. 손님이 뚝 끊겼어요. 밖에서 술을 안 먹나 봐요.” 연말이라 대목 장사 좀 되느냐는 질문에 젊은 대리기사는 손사래를 친다. “한 일주일을 평소에 반도 못 찍었어요. 술 마실 기분이 나겠어요? 한 달 내내 쌔빠지게 일 해봐야 저 인간들 한 끼 해장거리도 안 되는 돈 벌자고… 나도 밤낮으로 투잡하거든요. 근데 뭐하는 짓인가 싶어요. 편의점에 술이 많이 팔린다잖아요. 다 집에서 먹나 봐요. 술고래 친구들도 대리 부탁 안와요. 진짜 안 먹나 봐요. 제기랄, 이젠 청와대가 우리 남은 밥줄까지 끊어요. 카카오택시 때문에 손님도 다 빼앗긴 판에 확인사살당하는 거죠, 정말.”

#“이제 끝난 것 아니요? 다 까발려졌는데 막을 방법이 없어.” 새누리당 당직자였던 K씨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먼저 입을 뗀다. “이렇게까지 갈 거라고 상상도 못했죠. 솔직히 친박, 비박 막론하고 고위 당직자 맡았던 사람 중에 최순실이 몰랐던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위세에 눌리고 제 잇속 챙기느라고 입 꽉 다물고 쉬쉬하다가 뻥 터지니까 이제 와서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재 묻은 개랑 겨 묻은 개가 싸우는 거 국민이 다 안다고. 이러면 새누리당 쪼개지는 거 시간문제에요. 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사람들은 없고 다 자기정치만 하려드니… 지난주에 광화문 앞에 촛불이 쫙 깔렸는데 이번 주엔 더 할 거라고 하잖아. 대통령이 사과니 뭐니 해도 누가 곧이듣겠냐고. 대통령부터 다 내려놔도 시원치 않은데 다들 죽어라하고 붙들고 있으면 방법이 없는 거죠. 난 검찰이 수사 확대하면 대통령도 못 피해갈 거라고 봐요. 그럼 국정이 올스톱이지 뭐. 아직도 국민이 개, 돼지로 보이는지 참말로… 앞으로 열흘이 고비에요. 이렇게 가면 대통령 하야하고 분당되고 이런 수순으로 가는 거예요. 열흘도 못 내다보며 무슨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암담하고 창피한 일이죠.”

#건축업을 한다는 엄아무씨는 열부터 낸다. “다 거짓말이야, 나 박근혜 찍었는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거 야당하고 언론이 만든 거예요. 거기에 속으면 안 되요. 주말에 20만명 모였다고 뉴스에 나왔는데 실제로 4만명 모였다며… 그런데 언론이 뻥튀기하는 거야. 그걸 가지고 야당이 대통령 하야하라고 물어뜯고 있는 거지. 야당대표 전라도사람이잖아. 민주당이 전라도 민심 얻으려고 계속 박근혜 흠집 내려고 이 야단이라고. 이러다 김정은이 밥되는 거야 큰 일 나지.” 추미애 대표는 대구사람인데요…? “무슨 소리요? 그럼 나랑 내기합시다.”

양평역에 내린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피켓시위 현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번 주에 아빠랑 서울 갈 건데 다른 애들하고 시청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하교 시간에 만난 중학생 이아무군은 지난주에 시위에 다녀온 친구들도 많았다며 기대감을 드러내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낸다. “대통령이 국민을 속였잖아요. 잘못했으면 벌 받아야 되는 거 아녜요? 우리학교는 아직 안하는데 양평에 다른 중학교에서 애들이 시국선언 준비하고 있대요. 전북에 있는 중학생들이 대통령 하야 촉구 시위 때 찍힌 여학생 사진이랑 어른들한테 뺨맞은 중학생 기사도 친구들이 다 봤는데, 그 여학생 사진 인기 짱이에요. 친구들끼리 피켓도 만들기로 했는데 뭐라고 쓸지는 아직 못 정했어요.”

#“허탈합니다. 이제 막 제대했는데 군에 갈 때보다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시장통에서 만난 예비군 마크가 붙은 군복을 입은 전역병 신씨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평생 한번 있다는 제대의 즐거움을 떼먹힌 기색이 역력하다. “선진국이라는 이야기를 한 지가 언제인데 단군신화에 나오는 시대에 사는 것 같아요. 전 원래 정치에 크게 관심을 안 가졌는데 이제 보니 우리가 진짜 후진국이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치제도는 한번 만들어 놓으면 그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 최순실 사태는 권력이 무엇인지, 그 주체가 어딘지,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가는 겁니다. 이번 의혹이 사실이라면 저는 우리나라가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민주공화국 어림없는 얘기 아닙니까. 무슨 부족사회 같아요. 이러면 국가, 정의… 다 개소리죠. 권력에 줄만 잘 잡으면 되는 나라에서…”

배달부=조병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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