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얼굴, 자신이 원할 때만 사람에게 비비작거리는 자기중심적인 성격, 밥 주면 바로 안 먹고 좀 있다 또 달라고 하는 성가신 식성. 가끔 문짝이나 난간 위 좁은 폭에 올라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는 어서 내려달라고 냐옹거리는 뻔뻔함. 벽지를 시원하게 벅벅 찢어 놓고 누가 그랬나는 듯 쳐다보는 파렴치함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냥이의 이름은 흑미, 별칭은 애교덩어리 귀염덩어리다. 그에 반해 보리는 식성덩어리이고.

이둘 때문에 항상 밥 주는 일은 고난도기술을 요한다. 식탐은 있지만 마음이 약한 보리에 반해 흑미는 사료 속에서 맛있는 부분만 뽑아먹고는 보리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고 사료를 뺏어먹는다. 보리는 황당하게 물러나 지켜보다 결국 흑미가 밥그릇에 남긴 사료를 먹는다. 처음엔 보리 편을 들어 혼내봤지만 소용없었고 잘 먹던 보리까지 큰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바람에 그냥 내버려 뒀다. 보리가 그렇게라도 덜 먹으면 살이 좀 덜 찌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 서로간의 잠자리 신경전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처음엔 고양이 습성을 잘 몰라 지나친 모습들이 아는 만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잠자리 선택이다. 보리는 잠자리 선택에선 거침이 없다. 일단 맘이 동해 차지하면 거기가 그날 보리의 잠자리다. 흑미는 보리가 찜했던 자리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보리 냄새가 배어 있으면 거기도 잠자리로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보리가 원래 자던 잠자리는 흑미 잠자리로 아웃. 그리고 흑미가 자던 방석이라도 보리가 자면 거기도 잠자리로 아웃. 흑미랑 같이 올라가서 자던 작은애 침대도 이제 흑미는 자지 않는다. 결국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요즘엔 나와 남편 사이에서 잔다. 보리가 탐하던 자리인데 보리가 작은애 침대 터줏대감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흑미가 우리를 선택한 것 같다.

보리가 올라오면 “야~ 털!”하고 싫은 기색을 보였는데 흑미가 올라오면 “우리 귀요미 왔어?”하며 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처음엔 보리 눈치 보느라 이런 말을 안했는데 이제는 조그맣게 흑미만 들리게 말하게 되었다. 왜? 너무 귀여워서.

일단 사람하고 눈만 마주쳐도 골골송을 들려준다. 게다가 말을 시키면 간드러진 목소리로 ‘야아옹~’하며 대답을 꼬박꼬박 해준다. 그리고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면 격한 골골이와 비비작과 간드러진 야옹이 3종 세트로 귀여움 불꽃을 터트린다. 혹시 언짢았던 일이 있어도 스스르 미소 짓게 되는 이유다.

흑미는 선물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보리가 차지한 5000원짜리 방석이나 바구니 대신 신문이나 택배상자 대신 근사한 집에서 안락하게 잠든 모습을 보고 싶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폭신해 보이는 고양이 집을 하나 골랐다.

그런데 흑미는 배달된 고양이집 포장을 뜯어 펼쳐놓으니 새집은 외면한 채 바로 택배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잠깐 실망했지만 곧 폭신함에 몸을 묻을 것이라 믿었다. 못 본 척 딴청을 부리는 보리에게 당부까지 했다. “이거 흑미집이야~ 넌 선물 받은 큰집 있으니까 거기서 자. 알았지?” 얼마 전 강아지 새집마련 증후군에 걸린 고모가 사준, 난 엄두도 못 낼 근사한 보리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까지도 흑미는 새집엘 들어가지 않는다. 택배용 박스만 애용할 뿐. 보다 못해 박스를 치웠다. 흑미는 가장 저렴한 신문지를 택했다. 내일은 집에 들어가겠지. 다음날로 기대를 미뤘다. 그리고 다음날! 결국 우려하던 일이 생겼다. 보리집이 하나 추가되는 현장만 목격했다. 흑미를 찾으니 역시 저렴한 신문지 위. 난 다른 신문지로 흑미를 덮어줬다. ‘골골골~’ 아주 좋단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