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참관기 - 고명수 시인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양평 장로교회 옆 북카페 ‘조르쥬 상드’에서 멋진 문학행사가 열렸다. 문학순회행사의 일환으로 열리는 ‘작가와의 만남’이다. 벽면에는 직접 쓴 시화들이 걸려 있고, 카페의 바닥에는 손님들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도록 화분 주변에 낙엽을 깔아 놓았다. 한쪽 서가에는 카페의 주인이자 시인인 안정옥 선생이 그 동안 읽어왔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초대작가는 김명인 시인과 박상우 소설가였다. <동두천>과 <머나먼 곳 스와니> 등의 시집을 통해 1970년대 한국사회의 상처와 오욕을 특유의 내면적인 언어로 형상화했던 김명인 시인은 그 후에도 삶이 근원적으로 지닌 쓸쓸함과 결핍을 깊이 있는 내면적 언어로 노래해왔다.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백발의 시인을 맞이한 것은 열 명 가까운 문학애호가들이었다.
‘발견과 경탄’이라는 주제로 시론 강의를 하는 사이사이에 자신의 시와 삶의 체험들을 들려주어 시인이 살아온 신산한 삶의 여정에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시가 무의식이나 감각, 경험 등의 심층을 표면화하는 장르이며, 맥박과 율동으로 살아 움직이는 시의 육체성, 맥락과 어울리는 긴장과 해조의 강조는 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주었다. 특히 창조적인 시인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한 당부는 한 동안 시로부터 멀어져 있던 필자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것은 곧 새로운 것을 창안해내려는 용기, 남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개성을 확립하려는 독립심, 미래로 펼쳐지는 전망으로써의 상상력의 개척, 날것인 현실을 끌어안고 궁구는 생(生)의 지혜로서의 감수성 등인데, 이러한 것들은 시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전제로 할 때만 지닐 수 있는 것들이다.
‘소설, 혹은 인생농담’이라는 주제로 이어진 박상우 소설가의 강연은 올해 노벨문학상이 팝 가수인 밥 딜런에게 주어진 사실을 지적하며 위기에 처한 문학의 현실을 환기시키며 시작됐다. 유럽에서는 시집 출간이 거의 사라지고 시인들의 수도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그나마 한국에서는 국가기관이 중심이 되어 문학콘서트나 문학캠프와 문학기행, 그리고 이번 행사와 같은 문학순회강연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매우 다행이면서도 고무적인 현상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문학을 신앙처럼 여기며 전업작가로 28년을 살아온 박상우는 이미 우리에게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내 마음의 옥탑방>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 동안 작품발표를 하지 않아 궁금하던 차였기에 이날 강연이 더욱 반가웠다.
그 공백기에 작가는 자신의 작가생활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을 하며 필생의 과제인 인간의 문제, 인생의 문제에 대해 탐구하며 공부를 계속했다고 했다. 특히 문학이나 철학, 종교와 같은 인문학서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이나 <홀로그램 우주>와 같은 과학서까지 폭넓게 섭렵하며 문학보다 인생이 더욱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할 때 작가의 연륜이 새롭게 느껴졌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층위가 있는데, A4 용지에다 한쪽에는 이미 주어져 있는 삶의 조건들을, 다른 쪽엔 내가 살고 싶은 욕망하는 삶, 혹은 꿈꾸는 삶을 시차를 두고 적어본 다음 비교해보라는 권유가 인상적이었다. 이미 주어져 있는 삶의 조건들을 무시하지 말고 수용하되, 최선을 다해 거기에 충실하며 살다보면 오히려 꿈꾸는 삶에 가까워진다는 지적은 지혜의 잠언으로 다가왔다.
강연이 끝난 후 작가는 주왕산이 있는 청송까지 빗길을 뚫고 가야한다며 서둘러 카페를 나갔다. 반가운 시인들과 만나 생맥주 한잔 하고 귀가하며, 시와 소설 등 문학을 가까이 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지를, 이들을 잠시 떠나 있었던 삶이 얼마나 메말랐던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