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29

 

서종면은 지금 한창 농림부 농촌읍면중심지활성화사업을 신청하기 위한 포럼이 진행 중이다. 양평에서 이미 양동면이 지원을 받았고 청운면에서도 진행 중인 위 사업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신청단계에서부터 마을주민들이 참여하는 포럼을 7~8회 진행해야 한다. 포럼이란 일종의 토론마당을 말하는데, 토론에 익숙치 않은 주민들의 의견을 지도하고 모아나가는 데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서종면의 포럼에도 경기농촌활성화지원센터 소속의 교수들이 와서 지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법 규모가 있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사업이 추진될 경우에는 대부분 교수급의 ‘총괄기획가’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의견을 추출하고 종합하는 전문가라는 뜻이다) 등의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만들기는 주민이 주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일정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기까지는 전문가나 행정의 지도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마을을 가꾸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마을에 대해 창의적이고 객관적이며 총합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만들기의 주체는 주민과 전문가, 그리고 행정이 결합되는 트라이앵글이 가장 환상적인 구조다. 물론 그러한 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주도적으로 바뀌어 가야만 한다.

서종면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현장포럼(2016. 9. 28.)

그런데 마을만들기 주체의 한 축인 전문가의 지위와 역할을 설정하는 데는 유의해야 할 문제점들이 있다. 그 첫째 문제점은 전문가는 일반적 이론은 잘 알지만 그 지역의 특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점에서부터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한 두 차례 그 지역을 방문해서 주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만 접한 후 자신의 일반이론을 적용하여 통상적이고 표준적인 지도를 할 뿐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의 시한부 임무가 끝나면 떠나버린다. 속속들이 사정을 모르거니와 애정도 없이 직업적인 역할만을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마을의 실제 사정과 걸맞지 않게 진행된 결과의 사후처리는 주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그 다음으로는 주민들이 전문가와 협동하는 자세에 있어서의 문제점이다. 주민들이 전문가와 더불어 마을만들기의 주제와 방향 등을 논의할 때 마땅히 주체는 주민이어야 한다. 주민들이 주도하고 주민들이 최종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주민이 주인이고 전문가는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자세를 반드시 굳건하게 견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못하고 전문가에게 지도해 주기를 바라기만 한다든지 결론까지 맡겨놓으면 주인과 객이 바뀌는 셈이 된다.

서종마을디자인운동본부가 2013년 오부세(小布施)를 방문했을 당시 오부세 마을만들기의 과정을 설명해 준 사람은 동경이과대학에서 파견되어 있던 박사학위 과정의 연구자였다. 그런데 그는 오부세 마을만들기의 전 과정을 그 마을의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마을 담벼락에 벽화그리기 사업이 성행한 적이 있다. 그럴 때 간혹은 서울의 미술대학의 학생들을 불러다가 마음대로 그리도록 맡겨 놓는 경우가 있다. 어떤 주제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조차 결정하지 않은 채로 주제와 방향 모두를 맡겨버린다. 학생들은 그 지역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주제를 추상화된 도시적인 화법으로 그려놓고 떠나 버린다. 그러면 그 마을에는 전혀 뜬금없는 결과만이 남게 된다. 벽화는 그 마을과 연관성 있는 소재를 그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의 손으로 그리되, 화면의 구도나 색깔, 색칠하는 방법 등을 미술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과정이어야 한다.

일본의 오부세(小布施町) 마을만들기에는 동경이과대학(東京理科大學) 도시계획과 대학원생팀의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경이과대학은 십여명의 대학원생을 묶은 팀을 구성하고 지도교수가 총괄적으로 방문하고 지도하는 한편 대학원생들은 상당기간 오부세에 상주했다. 우리의 마을회관에 해당하는 곳에서 상주하면서 그 마을에서 먹고 자고 마을사람들과 어울렸다. 그 마을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 마을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였고, 그 마을 사람들이 어떤 경관을 원하는지, 어떤 마을에 살고 싶은지 그 속내까지 훑어 내었다. 그리고 마을만들기가 일정한 단계에 올라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 다음 단계의 방향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 마을에 상주하는 몇 년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거나 책을 쓴 이들도 있다.

주민들은 분명히 자신의 마을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만 그 모든 것을 표현하고 종합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런 점을 보완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전문가의 도움이 올바른 방향으로 효율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주민들의 몫이며 책임이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전문가를 활용하는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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