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28

 

마을만들기에서 원주민과 이주민의 협력은 필수적인 과정이며, 그 결과물은 협력을 넘은 동화(同化)다. 이번 회에서는 그 과정과 결과를 위해 이주민과 원주민들에게 짧은 편지의 호소를 던져보는 것으로 연재를 대신하려고 한다.

이주민에게

귀촌이란 단순히 주거공간을 농촌 어딘가로 옮기는 ‘이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단지 집의 위치를 옮기는 것에만 익숙합니다만, 귀촌을 계획하신 거라면 단순한 이사의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최소한 그 곳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성장시키려는 계획, 또는 노후의 삶을 풍성하게 하려는 계획 또는 더 나아가 여생을 편안히 마무리하려는 계획 중 한 가지라도 세우셨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귀촌이란 ‘그 곳 사람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마을로서의 공간이란 그 마을만의 정서, 느낌, 냄새를 가집니다. 자연은 단순히 풀과 나무, 물과 공기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들은 어떤 특정한 곳에서 서로 어우러져 그 곳만의 기운을 생성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콧김으로 들어오는 싸한 향기와 저녁 무렵의 스산한 바람이 모두 그 곳의 기운입니다. 감각기관으로는 가슴과 코가 느끼는 그 무엇입니다.

또 마을은 골목길과 이웃이 만드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공간으로만 구성된 도시와는 달리, 지저분하던 깨끗하던 간에 밭과 밭 사이의 고랑과 집과 집 사이의 골목길과 그 옆을 흐르는 개울가로 드문드문 늘어선 집들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북한강갤러리 “옛날옛적전”에 출품되었던 1982년 서종국민학교 운동회 사진. 현수막 속의 글씨는 “백군 선수는 독수리 닮았네!”

귀촌이라는 이름 아래 멀리 농촌으로 옮겨 와서까지도 기존의 도시에서 살던 자신의 흔적과 문화를 버릴 수 없다면 진정 귀촌한 것이 아닙니다. 귀촌이란 ‘버리고 다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습성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도시에서 유명했거나 부유하게 살았거나 능력있게 살았다면 더욱 더 버려야 합니다.

이 곳에 왔으면 이 곳의 땅과 공기와 마을과 전통과 사람과 이웃과 함께 젖어야 합니다. 동네사람 중 한 명이어야 합니다. 문화에 앞섰다고 구분지어 산다면 귀촌으로서는 절름발이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목표한 꿈도 반밖에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원주민에게

대부분의 이주민들도 언젠가는 어딘가의 농촌민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서울을 전전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젠 당신들의 땅에 살러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좋은 풍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단지 손님이 아닙니다. 최소한 이 곳에서 당신들과 함께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성장시키며 노후의 삶을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아이들이 여기서 태어나고 성장한다면 그들에게도 앞으로 여기가 고향이 될 것입니다.

같은 운동회 사진. 현수막 속의 글씨는 “청군 선수는 호랑이 닮았네!”

전통적인 풍습이 있었고, 이 곳의 땅과 공기, 냄새가 익숙하고,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그 집 형편은 요즘 어떠한지 모두 알고 지내던 평화로운 마을에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산을 허물고 지하수를 파헤치자 혼란스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어찌어찌 사회의 흐름 속에서 본래 살던 고향을 떠나 도시를 전전하다가 이제 아름다운 우리 마을을 찾아온 그들이 탓이겠습니까. 본래의 농촌 인심과 순박한 품성으로 그들을 품어 안고 감동시켜 주십시오.

모두에게

농촌의 스산한 가을 바람은 노랗게 익은 벼 이삭을 훑고 지나가며, 키가 큰 놈이든 작은 놈이든 모두 고개 숙이게 하여 함께 거대하게 출렁이는 파도를 만듭니다.

얼마 전에 읽은 불교 서적에서 이런 말을 보았습니다. 부처가 입적하기 직전까지 지식은 많으나 깨우치지는 못하고 있던 제자에게 했다는 말입니다. “아난다여.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아라” 아마도 성경에도 이 같은 구절이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것입니다.

눈으로 만나지 말고, 마음으로 만납시다. 그러면 아마도 마을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누구도 선후가 없고, 본래가 없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