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캠프힐 마을 대표>

살던 아파트 팔고 월세 200만원으로 시작한 슈타이너학교,
신복리로 학교 이전해 ‘캠프힐’ 생활공동체 세우는 게 목표

“누구나 전인적 발달… 장애·비장애 구분 불필요,
교사채용 기준은 발도르프교육보다 ‘좋은 사람’”

 

듣자하니 서울 대치동에선 초등학교 3학년이 고등학교 수학 ‘정석’을 풀고 있단다. 아직도 구구단이 헷갈리는 우리 집 둘째랑 같은 또래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시대가 와도 오직 좋은 학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부모들이 천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남들이 가지 않을 길을 찾고, 부모 욕심대로가 아니라 아이가 난 모양대로 키우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교육이 바로 발도르프 교육이다. 옥천면 용천리에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장애아동 중심으로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슈타이너학교다. 이 학교의 대표교사 김은영씨를 옥천면 ‘화니핀야생화찻집’에서 만났다.

김은영 캠프힐 마을 대표는 자연스럽고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양평을 참 좋아한다. 양평의 환경이 좋은 만큼 공공재(公共財)가 더 많아져 삶의 질이 높아지기를 희망한다.

- 슈타이너학교를 소개해주세요

“루돌프 슈타이너가 시작한 학교로 발도르프 교육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교육이 인간을 사회에 필요한 존재로 키우는 거잖아요. 발도르프 교육은 인간이 이 세상에 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 인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게 교육 목표예요. 인간은 전인적으로 발달한다고 보기 때문에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없어요. 슈타이너 학교는 지적인 어려움이 있어 배움이 늦거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장애 타이틀이 있거나 학교에 부적응하는 아이들이 주로 오죠. 독일에는 장애아동 중심 학교가 많은데 아시아에서는 슈타이너학교가 유일해요. 그래서 힘들기도 하고 동시에 프라이드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장애아를 둔 부모도 아닌데 왜 이 일을 하는지 물어봐요. 저는 장애아동을 맞이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고 봐요. 제 손주가 장애아일 수도 있잖아요. 그랬을 때 그 아이가 좋은 곳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공립밖에 없어요. 선택지가 없으면 우울하잖아요. 저는 좋다 나쁘다를 떠나 선택지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 양평에 학교를 세운 계기와 과정은

“2006년 독일에서 한국에 돌아와 발도르프 교육도 하고 캠프힐도 해야지 하고 전국을 알아보고 다녔어요. 그런데 결국은 처음 알아봤던 양평에 오게 됐어요. 이래저래 일이 꼬여 컨테이너라도 갖다 놓고 학교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한 달 만에 펜션하던 집을 구하게 됐어요. 2년간 학교 준비를 하면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 다 도와줄 거라 믿었어요. 그런데 막상 학교를 세우려는데 아무도 돈을 안 주더라고요. 물론 100만원을 내신 분도 있고 했지만 집 보증금으로는 너무 부족하잖아요. 결국 살던 아파트를 빼서 학교 보증금을 대고 월세 200으로 시작한 게 8년 전이네요. 처음엔 학생이 5명밖에 안 되니까 임대료도, 월급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주말에는 학교를 펜션으로 운영했어요. 주말이 되면 책상을 싹 치우고 손님을 받아 고기도 구워주고 술도 마시고 했죠. 그렇게 한 여름을 보내고 나니 교사들이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두더군요. 저도 기미에 다크서클이 내려오고(웃음)…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곳곳을 다니며 앵벌이를 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진짜 웃긴데… 진짜 힘들었어요. 집을 빼서 왔으니 교무실이 저희 방이었는데 제가 자는 매트를 사람들이 막 밟고 다니고 그랬죠. 남편은 직장이 충남 부여라 주말부부였는데 주말에 오면 손님들 고기 구워주는 게 일이었어요.”

슈타이너학교 학생들이 학급여행으로 전남 장흥군 천관산 정상에 올라 해냈다는 성취감에 기뻐하고 있다.

- 학교에서 발도르프 교육을 받는데 정작 가정에서 뒷받침이 안 되거나, 반대로 공교육을 받으면서 부모가 발도르프 교육을 시킬 수도 있나요?

“저는 발도르프 교육을 소비하는 사람이 있고 발도르프 교육을 생산하는 사람이 있다고 봐요. 전자는 누군가가 심어놓은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사람인데 저는 그렇게라도 먹으면 좋다고 봐요. 대체로 비장애 부모들은 부모가 철저히 준비해서 오는데 우리학교 같은 경우는 특수학교를 보내기는 그렇고 선택을 할 수 없어서 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부모가 꾸준히 공부해야 하죠. 그런데 설령 부모가 교육을 쭉 받지 않는다 해도 부모로서의 상식이 있으면 된다고 봐요.”

- 짧게 연수를 받고 발도르프 교육을 앞세우며 가르치는 기관이나 교사들도 많은데요. 발도르프 교육이 짧은 기간 내 습득 가능한가요?

“저희도 계속 교사를 뽑고 양성하는데요. 교사를 뽑을 때 가장 먼저 ‘좋은 사람’인지를 봅니다. 그 다음 ‘좋은 교사’인지를 보고 마지막으로 발도르프 교육을 했는지 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교사가 되고 좋은 교사는 좋은 특수학교 교사가 되더라고요. 저희는 계속 공부를 해요. 일주일에 한 번 길게 회의를 하면서 한주간의 행사를 점검하고 공부도 하죠. 방학 때 일주일씩 내부교육을 하고 강도 높은 교육을 합니다. 꼭 발도르프 교육만 하지는 않고요. 특수교육을 계속 공부해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해요. 대개 발도르프를 하면 미친 듯이 발도르프만 해요. 그런데 교육이란 큰 틀 안에서 보면 저희야 이 교육을 했으니 이게 최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좋은 교사는 좋은 발도르프 교사가 되더군요. 기간으로 보증하긴 어려운 거 같아요. 그 전에 그 사람의 자질이 중요해요.”

가을 국화꽃이 예쁘게 핀 슈타이너학교 앞마당에서 사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

- 발도르프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공교육을 받은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다들 교육의 성과를 궁금해 하시는데요. 저금 저희 학교에 고3이 된 아이들 3명이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굉장히 자기 주도적이에요. 전 세계 발도르프 학교 아이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자기주도학습 훈련이 되어 있어서 적극적이고 자유로워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잘 하나 못 하나 비교하지 않아요. 자아가 강한 거죠. 자기 컨트롤을 하고 자기를 자기답게 사는 힘이 있는 거죠. 실제 교육 목표가 그렇기도 하고요. (발도르프 학교 내에서는 허용되지만 사회에 나가서는 문제가 없을까요?) 적응을 못 할까 걱정되면 안 보내면 되죠. 발도르프는 선택하는 사람이 주인이에요. 그렇게 살겠다고 결정하는 거죠. 그러니 그것도 다 제 몫이죠. 혹 상처를 입을까봐 갑옷으로 무장을 시켜 내보내서 상처를 안 입으면 그게 행복할까요? 흥하면 흥한 대로 고난은 고난대로 배우는 게 있다고 봅니다.”

- 15년간 특수아동 교사를 하다가 마흔에 남편과 아들을 두고 유학을 떠나셨는데요. 다른 아이를 위해 내 아이를 희생(?)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나요?

“저는 직업의식이 투철했던 거 같아요. 유학 가기 전 특수학교에 근무했는데 제가 교실에 들어가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자폐성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기회가 있어 1개월간 인지학 본부가 있는 스위스 도르나흐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와 아이들에게 라이어(루돌프 슈타이너의 음악이론에 따라 1920년대에 새롭게 고안된 악기)를 연주해줬는데 아이들이 절 쳐다보더군요. 그렇게 시작해 아이들에게 그림도 가르치고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발도르프 매력에 빠진 거죠. 한 달 연수라 1년 지나니 약발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발도르프가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선생을 그만두고 독일로 유학을 갔죠. 9·11테러 다음 날이었어요. 제가 장애아들을 돌보는 동안 우리 애는 세상이 키워줬어요. 우리 엄마가 키워주시고 한 동안 열심히 다녔던 성당 대모님이 키워주시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 애를 키워줬어요. 대학을 안 갔지만 잘 컸어요. 이런저런 도전을 하다가 베를린에서 1년 반만 있더니 비폭력에 관심을 갖고 생명사상까지 가서 몸무게가 20㎏이나 빠지고 채식주의자가 돼서 돌아왔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삼겹살을 끊더라고요. 지금은 친구들이랑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이태원 술집에서 일해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인간이 되었어요. 아이는 나에게 잠깐 맡겨진 존재인 거 같아요.”

- 옥천에 새로운 생활공동체를 만든다고 들었어요. 독일서 공부를 마치고 자원 봉사한 캠프힐(장애인을 위해 만든 생활공동체로 House(캠프힐의 가정공동체 단위), 작업장(농장, 목공소, 숍 등), 발도르프 학교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곳인가요?

“아이들이 중2부터 성인이 됐을 때 일할 수 있는 직업훈련을 하는데 현재 용천리 작업장이 너무 좁아서 신복리로 이사를 가는 거예요. 제가 개인적으로 캠프힐이라는 되게 좋은 공동체를 경험하기도 했고 제가 우리 아이들을 보며 꿈꾸던 것들이 실현되고 있는 곳을 본 거죠. 우리나라에도 캠프힐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마을에 있는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캠프힐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거죠. 그런데 바라기만 하는 건 망상이잖아요. 우선은 용천리에 있는 학교를 이전하는 게 목표예요.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매년 1억씩 3년간 지원해주기로 했는데 올해가 2년차예요. 건물 리모델링과 신축 건물 시공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닦아놓은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인 거 같아요. 개인이 하기는(물론 나는 400명의 후원자와 부모님, 교사, 특수교육 계통의 지지자가 있지만) 정말 버거운 일이라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하지만 너무 많은 부모들이 기다리고 계세요. 감사한 건 마을주민들이 협조적이고 잘해주세요. 신복리도 좋아질 거예요. 양평이 참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양평에서 사는 프라이드가 있어요. 뭐랄까 프랑스 같아요. 좀 느리고, 먹고 사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 않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일주일 내내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좋아요. 강하게 자아실현을 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고 사람 사는 맛이 나요.”

슈타이너학교 학생들의 목공수업 장면

- 지역주민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양평이 환경이 좋잖아요. 양평에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공공재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사람들 인식 속에 사회복지시설이 많아지면 더 가난해진다 그런 논리가 있어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캠프힐 식당을 이용하고 멀리서 온 사람들이 ‘양평에 왔는데 거기 공동체 정원이 참 좋아!’ 이렇게 다닐 수 있으면 좋잖아요. 그런 면에서 긍정적으로 봐라봤으면 좋겠어요. 여긴 노인인구도 많고 우린 모두 다 잠정적 장애인이잖아요.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는 거죠. 그래도 인허가 받고 하는데 공무원들이 많이 도와주려고 했어요. 1년을 끌다보니 담당자가 바뀌어서 그렇긴 하지만요.”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의 소원이 자식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러기 위해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는 아파도 아프면 안 되고 그 누구보다 단단한 투사가 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홀로서기 연습을 시키고 싶지만 집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 일할 곳도 없다. 성인이 되어도 아이처럼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캠프힐 같은 따뜻하고 열린 공동체가 생긴다면 장애인들도 충분히 일하며 제 몫을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다. 더디 가도 여럿이 함께 가는 꿈결 같은 세상, 김은영 대표교사에게 다 떠넘기지 말고 마음이든 물질이든 십시일반 보태면 어떨까 싶다. 우린 모두 잠정적 장애인이니까!!

캠프힐공동체: www.camphill.or.kr
슈타이너학교: www.steiner.or.kr
후원: 농협 301-1346-0002-01 캠프힐 마을

이경희 객원기자는 소싯적 의상디자이너, 출판기획편집자, NGO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경남 산청 시골 출신이라 서울서 늘 흙을 그리워했다. 5년 전 양평으로 이사해 놀멍쉴멍 글도 쓰고 책도 만들며 남편과 두 딸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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