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칼럼>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

필자의 수업 중에 <대중매체와 윤리>라는 과목이 있다. 언론이나 방송분야 취업을 원하는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에게 직업윤리를 가르치는 과목이다. 언론의 취재와 편집, 미디어의 판매와 광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윤리적 문제점을 인지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지식과 안목을 기르는 수업이다.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지만 직업윤리를 가르쳐야 하는 분야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부모와 초등학교 수준에서 배운 윤리적 가르침으로 충분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속이지 말고, 훔치지 말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규칙을 지키라는 가르침만 따르면 어떤 직업이나 직장에서나 큰 어려움 없이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채용과정에서 지원자의 자질이나 성격 등은 세밀하게 검증하지만 윤리적 자질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들도 직업윤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직업윤리를 따지는 분야가 고위공직분야다. 그들에게 윤리적 판단력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업무상 비윤리적 결정을 할 경우 그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최근 판검사들의 공직비리나 대우조선해양 비리에서 드러나듯,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국민들에게 회복하기 힘든 고통과 피해를 가중시키고, 결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국가 기강이 흔들린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공직자들에게 기대하는 윤리적 수준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탈세, 음주운전 등 불법행위는 물론이고 각종 특혜와 특권,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사람들이 버젓이 고위 공직자로 임명되고 있다. 청문회 석상에서 잠깐 유감이다, 반성한다고 하면 그만이다. 청문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윤리적 수준도 고만고만하다. 청문회 후보자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던 의원들도 친인척을 보좌관으로 채용하는 등 각종 특권을 남용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한국사회는 윤리부재의 사회, 원칙 없는 사회로 정착해 가고 있다. 탈세나 도박이나 음주운전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연예인들이라도 잠깐 자숙의 기간을 지나고 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TV화면을 활보한다. 승부를 조작한 프로구단 감독이나 선수들이 늘고 있지만 구단이나 협회 차원의 사과나 재발방지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각종 평가나 생존을 핑계로 비윤리적, 비교육적인 행위들이 버젓이 일어난다. 교수들이 연구비를 횡령하고 논문을 표절하고 조작해도 오래된 관행이라며 어물쩍 넘어간다.

한국 사회가 윤리부재 사회로 변한 원인 중에는 언론과 미디어가 있다. 소위 사회지도층의 비윤리적 행위를 발본색원하는 언론의 비판·감시 기능이 무력화된 탓이다. 일반 서민들은 사회지도층과 접할 기회가 없다. 재벌총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고위 판검사를 만나볼 수도 없고,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혜택과 특권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은 오로지 언론의 몫이다. 그런데 쓰라고 언론자유라는 것을 헌법에 보장해 준다.

하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권력집단의 윤리적 책임을 담보하는 장치로서 언론의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국내 최대 발행부수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간지 주필과 수조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조선사 경영진 간의 은밀한 부당거래가 단적인 사례다. 언론과 기업과 권력 간의 비윤리적 결탁을 고발한 영화 ‘내부자들’을 국민들은 더 이상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9월28일부터 시행된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한국 언론의 안타까운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은 공직자와 언론인들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접대가 금지되고, 3만원 이상의 식사대접,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 비용을 받지 못하게 했다. 2012년 정부가 발의한 김영란법이 시행되는데 4년이나 걸린 이유는 언론 탓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인들이 김영란법에 포함된 것이 언론자유 침해라며 헌법소송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임박해지자 김영란법 때문에 관청주변 식당이나 한우 축산농가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서민경제를 걱정하는 언론보도가 갑자기 늘어났다. 언론과 국민정서가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고위 공직자나 재벌총수들의 비리와 부패를 접하면 늘 자조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썩은 윗물을 맑게 할 것인가이다. 그 수단 중 하나가 언론이다. 언론이 맑아야 윗물이 맑다는 점을 모두가 되새기고, 언론을 맑게 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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