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작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면 앞산에 가렸던 햇살이 마당에 들기 시작한다. 낮엔 덥고 밤엔 시원하기를 반복하니 밤사이 추웠던 파충류들은 햇살 드는 시각이 되면 몸을 데우려 슬슬 바깥 구경을 나온다.

데크 아래 살고 있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사 가지 않았을까 궁금해 하다 그냥 잊혀졌다. 처음엔 혹시나 밟을까 그곳을 지날 때 조심조심했지만 며칠 그러다 말았다. 마주친 적 없는 식구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만 개들이 데크 주변에서 귀를 세우고 뭔가에 집중하며 경계하는 모습을 취하면 혹시나? 하고 숨죽인 채로 살피게 되었다. 가끔 벌레나 뭔지 모를 땅속 짐승에 대한 개들의 관심의 표현이기도 할 텐데, 뱀의 움직임도 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개들은 꿰뚫고 있을 텐데 도통 말이 안 통하니 느낌과 촉만으로 ‘그래 이 발아래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지’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공교롭게 아침 등교 하는 작은 아이 눈에 뱀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 꺅!” 작은아이가 내지른 음파에 놀라 나랑 재회도 못하고 누룩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건드려도 겨우 나무늘보 속도로 움직이던 뱀이 웬일로 빛의 속도로 쪼르륵 들어갔단다. 먼저 내가 만난 그님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아직도 ‘배암’이라는 손님이 그곳에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그런데 걔가, 혹시나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나 자손을 퍼뜨리려는 행위를 한다면? 그 생각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일을 하려고 마당 수도로 향하는데 호수 말아놓은 통 위에 얼룩얼룩한 지렁이 크기의 뭔가가 눈에 띄었다. ‘지’ ‘렁?’ 까지 생각하기도 전에 벌써 그 생명체가 아기 뱀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존재를 인식한 똘똘한 아기 뱀은 스르르 조금 옆으로 옮기려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통에 난 작은 구멍으로 들어간다. ‘어 뱀이다! 앙증맞은? 뱀.’ 난 늦잠에 빠져있는 큰아이를 불렀다. 뱀이 나타나면 자기를 불러 달라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아기 뱀이 있는데 볼래?” 평소엔 일어나라 깨워도 출발 5분 전에나 겨우 일어나는 큰애가 벌떡 일어나 잠옷차림으로 내려와 찾는다. 호들갑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바깥을 살피던 아기 뱀의 머리가 다시 쏙 들어갔다. 체구가 작어서 그런지 꽤나 민첩하다.

놀라 들어간 아기 뱀은 성격이 급한지 5분도 못되어 다시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밖의 상태를 살폈다. 일단 얘가 더 커지기 전에 잡아서 먼 데 풀어 놓으려 집게와 적당한 통을 찾는데 큰아이가 ‘엄마 잡았어!’ 라며 그냥 오란다. 뒤돌아보니 세상에! 맨손으로 아기 뱀을 잡아서 요리 조리 손을 돌리고 있었다.

“야 안 물어?” 좀 놀랐지만 큰아이는 재미있는지 나보고도 얹어 보란다. 정말 아기 뱀은 악의 없이 이손 저손으로 옮겨 다니며 빨리 자기 보금자리로 갈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잡은 김에 냇가나 풀숲에 풀어주자며 가는데 얼마 전 백로 한 마리가 딱 요만한 크기의 뱀을 부리에 물고 날아가던 기억이 났다. 다시 산에 풀어줄까 하다가 아기 뱀 잡아먹는 포유류가 더 많을 것 같아 우왕좌왕, 그래도 여기가 낫겠다며 다시 수돗가에 풀어줬다. 날래게 수돗가 풀 사이로 도망가는 폼이 죽을 뻔하다 살아서 도망치는 모양새다. 그렇게 위험을 감수 했으니 알아서 멀리 갔으려니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수돗가 통 위에서 일주일 넘게 몸 말리며 출퇴근하는 모습을 봤다. 나중엔 깊이 잠이 들었는지 가까이 가도 모른 채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그래 너도 크느라 잠이 많겠지…’ 거의 매일 눈도장을 찍다시피 하더니 요 며칠 안 보인다. 잠시 접촉한 기억 때문인지 잘 있는지 궁금하다.

까만 눈망울에 호기심 가득한 아기 뱀은 모습 그대로 어린 아기다. 왜 징그러움의 대상이 되었는지 좀 안됐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친숙해지고 그 만큼 또 보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나보다. 하지만 큰일이다. 가족계획하진 않았을 테고. 어느 날 여러 마리의 누룩뱀이 마당에서 선탠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지는 않을 런지. 놀라는 우리가족과 개들과는 또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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