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만난 사람-이유순 대양세탁소 사장>

“충성~ 안녕하셨어요?”

세탁물 사이에서 얼굴부터 빠져나오며 이유순 사장이 반갑게 맞는다. “어~ 나훈아가 온줄 알았어. 벌써 일주일 됐어요? 호호호.” 얇은 비닐을 둘러쓴 세탁물이 미로처럼 걸려 있고 사장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재봉틀과 재단가위, 다닥다닥 붙은 메모지, 겉표지가 닳은 장부책, 책상달력 만한 텔레비전, 국군방송채널 하나 달랑 잡히는 라디오… 양근리 대양세탁소에 들르면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이 사장이 목젖이 드러나도록 까르르하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순간 바로 무장해제다. 다림질판 위에 손놀림이 뜸한 틈을 비집고 말을 건넨다.

‘일감이 많아 오늘 돈 많이 버시겠네요?’ “하루 종일 종종거리지만 돈은 별로 안돼요. 이젠 돈 욕심도 없고 사람 만나는 재미로 하는 거죠. 그래도 가끔 복권은 하나씩 사는데… 호호호. 이 나이에 놀고 앉아있으면 뭐해 여기 나와서 돈도 벌고 사람들하고 만나 장난도 치고 그러는 게 좋죠.”

재밌는 일이 많다는 듯 그가 말을 잇는다. “요샌 학생들이 먼저 장난을 걸어요. 교복을 다려주는 삯이 한 장에 3천원인데 애들은 천원만 주고 ‘3천원이요’ 그러면서 당당하게 옷을 받아가요 어차피 깎아 줄 걸 아니… 이러구 놀아요 호호호. 근데 어떤 점잖은 손님이 수선하고 다림질을 맡겨 1만5천원이 나왔는데 ‘15만원이요’라고 했더니 진짜 5만원짜리 3장을 주시더라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싹싹 빌었죠. 동네에서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장난치다가 임자 만나면 깜빵간다고, 호호호.”

손님 중에는 얌체도 있는 모양이다. “어떤 손님은 옷을 건네주니까 ‘지난번에 돈 드렸죠’ 그러면서 그냥 나가더라고요. 장부 뒤지고 어리버리하는 순간에 튄 거야. 그럼 뒤통수에 대고 ‘그래 잘 먹고 떨어져라’ 그래요.”

이 사장은 잠시 회상에 잠겼다. “여기 와서 30년 했죠. 경찰서도 가깝고 공무원들도 많이 와요. 자주 보이던 양반이 뜸하다가 몇 년 만에 나타나면 다시 양평으로 발령받았다고 오는 거야. 그럼 참 반갑더라고요. 또 어떤 손님은 계절마다 옷을 한차씩 싣고 오는데 일산인가 어디로 이사 갔는데 일부러 여기까지 오시는 분이 있어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죠. 자주 보던 할머니가 한참 안 보여 나중에 듣고 보니 돌아가셨다지 뭐에요. 그런 사람도 벌써 여럿이에요.”

“마흔에 남편 잃고 애 셋 키우면서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살아 온 게 내가 생각해도 용해. 한때는 네 집 살림까지 해봤어요. 애들 서울서 다들 자취하고 나는 저 구석에 방 하나 들여서 살았죠. 근데 대학 다니던 큰딸이 친구를 데리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애들은 방에 재우고 나는 여기 문간에서 박스 깔고 잤어요. 그 나이에 창피했을 텐데… 딸아이 친구가 아직도 얘기한데요. 그날 밤 꿀 같은 잠을 잤다고. 그 인연으로 지금도 연락이 와요. 덕분에 딸 하나 더 얻었죠 뭐. 큰애는 지금 학교 선생이야. 사위도 그렇고. 둘째도 결혼해서 잘 살아 이만하면 된 거죠? 돈이 없어 그렇지… 근데 나도 꼭 하고 싶은 소원이 있는데… 으음, 지금은 말 못 해요, 호호호.”

그녀의 경쾌한 웃음소리 너머로 라디오에서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간간이 너를 그리워하지만 어쩌다 너를 잊기도 하지. 때때로 너를 미워도 하지만 간간이 눈시울 젖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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